증권가 “저금리 근거 日과 닮은 꼴” 반면교사 상기 호들갑
전문가 “경제흐름 근본이 다르다” 글로벌 소통 대안 제시

일본과 국내 금융산업은 구조적 차이를 갖고 있어 한일 경제 흐름이 같다는 편견은 깨야한다.


세계적 ‘금융 빙하기’다. 국내 금융계의 성장동력은 꽁꽁 얼어붙은 지 오래다. 외환 위기, 저금리 시대를 겪으며 발전은커녕 오히려 퇴보하고 있다. 특히 증권업은 갈수록 경쟁력을 잃고 있다는 지적이다.

이럴 때일수록 우리는 ‘해법’을 찾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그러나 쉬운 일이 아니다. 증권가에선 현재 금융 상황이 10년 전 일본 금융 상황과 똑같다고 보고 있다. 사례를 통한 해결책 찾기에 한창이다. 그런데 결과는 어떤가. 국내 실정에 딱 맞아 떨어지는 해결책을 찾기란 불가능한 듯 보인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이코노믹리뷰>는 국내 증권업 위기 돌파를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인지, 또 어떻게 해법을 찾을 수 있을 것인지를 모색해 봤다. <편집자주>

지난 10월6일 오후 기획재정부 회의실. 국감 시작 전 ‘와∼’ 하는 탄성이 쏟아졌다.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은 엄지손가락을 치켜 올렸다. 김성식 한나라당 의원이 내놓은 ‘일본 경제 따라하지 않기’란 보고서 때문이다.

“일본 경제 위기에서 한국 경제 위기 극복 방안을 찾을 수 없다.”총 50P에 달하는 김 의원의 보고서는 처음부터 끝까지 국내 실정에 맞는 경제 위기 극복 방안을 만들어야 한다고 했다.

그동안 금융계에선 국내 상황을 10년 전 일본 상황이라며 호들갑을 떨었다. 위기란 말이 나올 때면 해법은 있다는 식의 대응을 할 수 있었던 것도 이 때문. 일본 금융의 사례를 통해 위기를 넘길 수 있는 대안을 마련할 수 있다고 했다. 그런데 웬걸. 위기 극복을 위한 해법은 아직까지 나오지 않고 있다.

시간이 흐른 뒤에도 나오기는 어려워 보인다. 일본과 국내의 금융 산업이 갖고 있는 구조적인 차이 때문이다. 김 의원은 이점을 지적, 국내 금융업 발전을 위한 대책을 새롭게 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동안 일본의 사례를 통해 실마리를 찾아봐야 근본적 해결책을 찾기 어렵다는 설명이다.

일례로 일본 은행권은 단순한 금융업무 외에 기업 경영을 감독하는 역할을 수행해왔다. 국내 은행이 과거 보였던 관치금융과는 정반대다. 일 정부의 은행권 업무 감독 수위도 국내보다 현저히 낮다. 증권업에선 더 큰 차이를 보인다. 일본 증권업계는 제로금리를 맞아 파생 상품을 통해 수익을 만들어 낸다.


반면 국내 증권업계는 개인 주식 거래 수수료를 통해 이윤을 얻는다. 최근 국내 증권가에서 수많은 파생상품을 선보이고 있지만 결과는 신통치 않다. 국내 증권사보다 시스템이 잘 갖춰진 해외 증권사의 파생 상품이 눈에 띈다.

단순히 저금리 시대를 맞아 제로금리 시대를 겪고 있다는 결과만을 놓고 일본 경제에서 해법을 찾을 수 있을까. 없다면 어떻게 해법을 찾을 수 있을까. 갈수록 경쟁력을 잃고 있는 증권업계가 발전하기 위해선 무엇이 필요할까. 일본과 한국의 경제 흐름이 같다는 편견을 깨야 한다. 정확히 말하면 국내 상황에 맞는 경영전략을 만들어 낼 필요가 있다.

경제 전문가들은 ‘자신만의 경쟁력을 길러야 한다’고 강조한다. 짐 오닐 골드만삭스자산운용 회장은 “전 세계 증시는 15개월 전 불마켓(대세상승장)에 진입했고, 아직 버블에는 근접하지도 않은 상황”이라며 “과거보다는 미래를 위한 전략 마련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증권업계가 발전할 시기가 분명 올 것으로 각 증권사가 어떤 경쟁력을 갖고 있는지가 성장과 정체를 결정짓는다는 얘기다. 여기에서 짐 오닐 회장의 이력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그는 브릭스(BRICs)라는 용어의 창시자다.

브릭스 상품을 세상에 처음 소개한 사람도 그다. 불과 6주 전까지 골드만삭스의 수석 이코노미스트로 근무를 했던 만큼 세계 증시의 트렌드를 읽어내는 능력만큼은 최고 수준. 그런 그가 세계 증시에 대한 긍정적인 평가와 경쟁력을 강화해야 한다고 한다.

특히 한국 증시에 대해 긍정적 평가를 내놨다. 그는 “아시아 신흥국가들이 세계 경제의 축으로 자리 잡을 것”이라며 “한국이 가장 높은 성장잠재력을 갖고 있다”고 밝혔다.

따라하기 ‘점령군 전략’은 이제 그만

국내 경제 성장 여력이 높다는 것은 증권업의 발전 가능성이 높은 것을 의미한다. 해외 유수의 증권사가 아시아, 특히 한국 시장 진출에 박차를 가하는 이유다. 그렇다면 국내 증권업계는 어떻게 대처해 나가야 할 것인가. 경쟁에서 충분히 승산을 거둘 만한 경영전략을 만들어야 내는 것이 급선무다.

그동안 국내 증권업계는 ‘점령군 전략’을 활용해 왔다. 점령군 전략이란 누군가 만들어 놓은 시장에 진입, 세력을 장악해 나가는 것을 뜻한다. 예컨대 A증권사에서 ‘A+’라는 상품을 출시해 엄청난 수익을 거두었다고 하자. B, C, D, E증권사는 짧은 시간에 ‘A+’와 유사한 상품을 선보인다. 수수료 할인부터 이벤트 상품까지 지급하며 치열한 경쟁을 벌이는 식이다.

해외 유명 증권사가 선보인 히트 상품에 대해서도 비슷한 양상을 띤다. 최근 가입자 수가 급증하며 증권업의 희망으로 떠올랐던 랩어카운트 상품이 대표적인 사례. 랩어카운트 상품은 1970년 미국에서 최초로 개발, 1987년 10월 블랙먼데이 이후 투자자의 직접 투자가 위축되며 대안으로 활성화 됐다. 이후 1990년부터 투자 환경이 복잡해짐에 따라 미 증권업계의 주력상품으로 자리 잡게 됐다.

국내 증권업계는 금융위기 돌파를 위해 아시아 시장 진출 확대와 경쟁력 강화에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는 지적이다.


랩어카운트 상품이 국내에 처음 도입된 것은 2001년. 1997년 IMF를 겪으며 직접 투자가 위축되자 국내 증권업협회는 1998년부터 해외 사례 등 조사 연구 활동을 시작했다. 국내 자문형 랩어카운트 시장은 2003년 첫 도입 당시 1조 원 규모에서 2010년 36조 원, 2011년 58조 원까지 늘어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현재 출시된 국내 증권업계의 랩어카운트 상품은 세계적 수준에 견줘도 전혀 손색이 없다는 평이다. 일부에선 오히려 더 좋다는 말도 나온다. 이는 국내 산업의 고질적 한계와 맥을 같이 한다. 국내 산업의 경우 시장이 형성된 것을 확대 발전시켜 나가는 전략을 활용, 글로벌 경쟁력을 확보해 나가고 있다.

애플사의 아이폰이 출시되자 삼성전자가 내놓은 갤럭시S를 선보인 것을 떠올리면 이해가 쉽다. 갤럭시S의 일부 기능은 아이폰보다 앞서고 있고, 판매량도 동일 기간 대비 앞서 있다.

그러나 점령군식 경영 전략엔 분명히 한계가 존재한다. 새로운 기술 개발을 통해 시장을 주도해 나가지 못한다. 더욱이 글로벌 시대를 맞아 세계 시장에서 경쟁력을 유지해 나가기도 힘들다. 금융 위기를 겪으며 해외 은행권은 증권업과 보험업 사업 추가를 통해 대형화와 겸업화를 이뤄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국내 증권사가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선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다. 자본 경쟁에선 뒤처지고, 고유 업무의 특성과 권역간 차별성이 약화됨에 따라 금융 서비스 차원에서도 밀릴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국내 증권업계는 현재 이 같은 문제점을 인식하고 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한 노력과 해외 진출 확대를 꾀하는 중이다. 미래에셋증권의 경우 은행, 보험을 포함한 퇴직연금시장을 겨냥한다는 목표를 세웠다. 자본시장법 시행과 근로자퇴직급여보장법 등 개정에 맞춰 특화된 상품을 출시할 계획이다.

최현만 부회장은 “향후 10년 뒤 미래에셋증권의 양대 주력사업은 해외에서는 기업금융(IB), 국내에서는 퇴직연금이 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신한금융투자는 기업금융(IB) 경쟁력 강화를 통해 해외시장 확대에 나설 계획을 세웠다.

IB는 유가증권의 형태로 투자자와 기업을 연결시켜주는 역할을 한다. 자본시장의 중요성이 줄어들지 않는 한 IB의 역할은 커질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중국식품포장의 기업공개(IPO)를 통해 중국 시장을 선점했던 것을 바탕으로 동남아시아 시장 등으로 영역을 넓힌다는 것이다. 우리투자증권도 IB 경쟁력 강화에 힘을 쏟고 있다.


우리투자증권은 LIG생명 인수합병 딜을 성사시킨 바 있다. 우리투자증권 관계자는 “싱가포르IB센터 설립을 기점으로 본격화된 해외진출 전략은 계획대로 차질 없이 진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대우증권, 대신증권, 동양종금 등 일부 증권사들도 IB부분 강화와 성공적인 해외시장 진출 방법을 모색하고 있다. 이를 위해선 외부와 소통하는 법을 먼저 배워야 한다.

세계를 무대로 한 열린 전략 펼칠 때

증권업계는 보수적 성향을 띤 조직 중 하나다. 오랜 시간 쌓아왔던 경험은 개방적 성향을 극도로 경계하게 만들었다. 특히 금융업의 특성을 내세우며 개방과 혁신이란 변화에 거부감을 드러내 왔다.

경쟁사와의 교류는 명백한 배신 행위로 규정했다. 창조경영아카데미 김영한 대표는 “불황을 극복하기 위해선 조직 성향을 아메바처럼 유기적으로 바꿀 수 있어야 한다”고 했다. 과거에 사로잡혀 변화를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성장을 할 수가 없다는 얘기다. 증권업도 마찬가지다. 시대의 흐름에 맞춰 혁신적인 경영전략 마련이 필요하다.

짐 오닐 골드만삭스자산운용 회장

전 세계 증시는 15개월 전 불마켓(대세상승장)에 진입했고,
과거보다는 미래를 위한 전략 마련이 필요하다.

지금은 증권업이 하향세를 걷고 있는 시기다. 이런 상황은 혼자 힘으로 벗어날 수 없다. 협력을 통해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만들어 내는 것이 필요하다. 증권업의 수익모델은 사업과 자금의 공급자인 투자자를 연결시켜주고 이에 따른 브로커리지(수수료)를 기본으로 하고 있다.

위탁매매, 자기자본투자, 자산관리 업무 등도 브로커리지 수입으로 연결된다. 그러나 최근 증권업계는 브로커리지를 통한 수익 창출이 한계에 다다랐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신사업 분야(퇴직연금, CMA 등)와 자산운용 분야의 경쟁력 확보가 무엇보다 필요하다.

금융투자회사의 사업 영역이 확대되고 있는 상황에서 은행의 고유 사업 영역인 지급 결제 기능을 확대한 서비스와 증권업무를 적절히 조화시키는 것도 긍정적인 효과를 거두는데 효과적이다.

최근 세계 증시는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2011년을 기점으로 세계 증권업계가 아시아시장 진출을 발판으로 성장기를 맞을 것이란 전망이다. 이미 해외 유수의 증권업체는 아시아시장 진출에 사활을 걸고 특화된 서비스 제공과 상품 만들기에 힘을 쏟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일본의 경제 위기에서 해법을 찾는 것은 큰 의미가 없다.

개방과 혁신을 뒤로 한 채 남들이 만들어 놓은 시장을 공략해 나가며 2인자로서 머물러 있을 것인가, 선구자적 활동을 통해 시장을 선도 해 나갈 것인가. 답은 이미 정해져 있다.

김세형 기자 fax123@asia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