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경그룹은 2007년 국내 기업 최초로 ‘디자인 부서’를 독립건물에 입주시켰다.


애경, 한샘 등 ‘최우선 가치’로 설정 앞선 투자… 견고한 기업 성장 기반 마련

#‘젊음의 거리’로 통하는 서울 홍대 부근. 멀리서도 눈에 띄는 세련된 외관은 감각적인 거리의 분위기를 닮아 있었다. 간판의 글씨를 읽어보니 익숙한 회사명이다. 이곳은 바로 애경디자인센터다. 애경그룹은 2007년 국내 기업 최초로 ‘디자인 부서’를 독립 건물에 입주시켰다. 지상 5층, 지하 2층의 건물엔 ‘History Musium’, 옥상정원 등 창의적인 공간이 마련돼 있다. 내부 인테리어는 모던하면서도 친환경적인 느낌이 배어나온다.

#서울 원서동 창덕궁 옆. 언뜻 보면 한옥 5채가 층층이 서 있는 모습과 같았다. 지붕엔 기와가 얹혀 있고 처마엔 풍경도 달려 있었다. 5층 건물이지만 주변의 경관과는 절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다. 고즈넉한 분위기의 이곳은 한샘 DBEW 디자인센터다. 고궁의 ‘화계’와 궁궐건축의 ‘가구법’으로부터 추상된 건축 형식을 시도했다. 단순하면서도 절제된 건축 형상으로 한국적 전통미가 물씬 풍겨났다.

‘디자인센터’는 기업 디자인 경영의 산실로 손꼽힌다. 단순히 혁신적이거나 심미성이 높은 제품 디자인을 개발하는 곳이라고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디자인 교육, 디자인 개발 프로세스 관리, 외부 디자이너와의 협업, 미래의 디자인 전략 수립 등 일련의 디자인 경영 활동이 이뤄진다.

그래서일까. 이들 두 디자인센터엔 각자의 회사 디자인 경영 철학이 고스란히 녹아 있었다. 애경디자인센터는 건물 모습만큼이나 그 안에서 이뤄지는 활동도 크리에이티브 하다. ‘이노베이션랩’ 활동이 대표적이다.

디자인 혁신을 위한 브레인스토밍을 일컫는 것으로, 새로운 디자인 아이디어가 샘솟는 원천이다. 올 상반기부터는 소비자 참여를 확대했다. 주부 모니터와 마케팅팀, 엔지니어링팀, 디자인팀이 한데 모여 아이디어를 내고 공유한다.

이를 직접 디자인으로 완성해 제품에도 적용한다. 하반기에는 대학생들과 함께 루나 화장품의 오프라인 진출을 위한 이노베이션랩 활동을 진행 중이다.

애경의 디자인 부서가 구로동 본사에서나와 홍대에 보금자리를 마련한 것은 현재 애경그룹 생활·항공 부문을 총괄하는 안용찬 부회장의 디자인 경영에 대한 의지와 안목에서다.

유니레버와의 결별로 독자 브랜드를 개발하면서 디자인 역량 강화의 필요성을 느낀 안 부회장은 디자인 부서를 독립시켜 최고경영자(CEO) 직속 디자인센터로 만들었다. 또 당시 부장급이었던 구규우 현 상무(CDO)에게 디자인센터장을 맡겼다.

한샘은 ‘동서양 디자인 접목’이라는 디자인 경영이념을 실천하고 있다.


디자인 경영 산실 ‘디자인센터’

애경은 디자인, 마케팅, 엔지니어링을 디자인센터장이 총괄하면서 감성 마케팅, 스피드 디자인, 소비자 편의성을 실현해나갔다. 2004년도부터는 디자인을 통한 부가가치도 창출했다. 2080치약, 케라시스, 마리끌레르 등 디자인을 통한 히트 브랜드도 나왔다.

성과는 국내외 디자인 공모전에서도 나타났다. 우수 디자인(GD) 상품 등 국내 디자인 공모전에서 40건이 선정됐으며 2008 팬타어워드 생활용품 카테고리최고상 등 3건을 수상했다.

한샘의 디자인센터 역시 마찬가지다. 국내 대표 홈인테리어기업 한샘의 디자인 경영 이념은 ‘동서양 디자인의 접목’이다. 슬로건은 ‘동서양의 디자인을 넘어서’(Design Beyond East & West)다. 가장 한국적이면서도 세계적인 디자인 개발에 주력하겠다는 의미다. 그래서 센터명도 슬로건의 글자를 따서 ‘한샘 DBEW 디자인센터’다.

지난 2004년 설립된 이곳은 국내 최초 사립 디자인 진흥기관이기도 하다. 디자인 스튜디오와 디자인 박물관, 디자인 정보센터를 운영하고 있으며 ‘DBEW 국제 디자인 공모전’을 주관한다.

이러한 디자인 경영 이념의 산물이 바로 지난 2006년 선보인 고급 부엌 가구 ‘키친바흐’다. 국내 부엌 가구로는 처음으로 한국적인 디자인과 기능이 접목된 제품이다. 전통적인 문양과 컬러의 가장 한국적인 부엌 가구로 수입 부엌 가구와의 경쟁에 대비할 수 있는 전기를 마련했다는 평가다.

디자인 중심 기업을 표방하는 한샘은 디자인에만 연 평균 약 100억 원을 투자하고 있다. 매출의 약 1.5% 수준이다. 사내 디자이너만 총 100여 명에 이른다. 전체 직원(1200명)의 약 8%에 달하는 숫자다. 한샘은 국내 1위의 종합 홈인테리어 기업으로 성장했다. 지난해엔 업계 최초로 매출 5000억 원을 돌파하기도 했다.

한샘이 40년간 업계의 유행을 주도하며 중견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동양과 서양의 디자인을 접목하는 디자인 경영 이념이 있었기 때문이다. 여기엔 1979년 한샘에 입사해 1994년부터 16년째 대표직을 맡고 있는 최양하 회장의 디자인 경영 의지와 일관적인 노력도 크게 기여했다.

한국도자기도 ‘디자인 제일주의’를 고집한다. 도자기는 재질·품질과 함께 디자인이 가치 평가의 절대적인 비중을 차지한다. 디자인 경영이 ‘체득’될 수밖에 없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이유다.

한국도자기는 1986년 종합디자인센터를 준공했다. 자체 우수 인력 확보와 외부 전문가들과의 교류에도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서울과 청주 공장의 디자인센터에 쉐입(Shape)과 패턴, 그래픽, 전사지 등 총 40여 명의 디자이너들이 매월 수십 가지의 새로운 디자인을 선보이고 있다. 이탈리아의 세계적인 디자이너 ‘알레산드로 멘디니’가 디자인한 도자기 티세트는 ‘2010 서울디자인올림픽’에 전시되어 큰 반향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디자인 제일주의가 만든 도자기 명품

한국도자기 디자이너가 깨알같이 작은 보석을 도자기에 붙이며 신규 디자인 개발에 몰두하고 있는 모습. 실제 제품 제작도 수천개의 보석을 세공하는 같은 과정을 통해 이뤄진다.

한국도자기의 제품 디자인엔 나름의 원칙이 있다. 까다롭고 정교한 제품은 수제 방식을 고집한다. ‘프라우나’가 대표적인 사례다. 프라우나는 정교하고 까다로운 디자인을 완성하기 위해 기존 도자기보다 몇 배의 공정 과정이 소요된다.

사슴과 백조 등의 조각 장식을 도자기에 얹고 크리스털 장식을 붙이는 일이 모두 수작업으로 이뤄진다. 정교하고 복잡한 문양을 도자기에 그리는 작업도 핸드페인팅으로 완성된다. 이렇게 만들어진 제품은 이 회사의 20년 숙련공들도 하루 몇 개 이상 만들지 못할 정도로 오랜 시간과 노력이 소요된다.

프라우나는 미국과 유럽, 중동 등 전 세계 주방 시장에서 고가의 프리미엄 식기로 자리매김 하고 있다. 세계 최고급 백화점으로 정평이 나 있는 영국의 헤롯 백화점에선 주방·도자기 업체 중에서도 가장 명품들만 모아놓은 ‘럭셔리 다이닝’에 매장을 배정받았다. 수백 년 역사의 도자기 명가들이 즐비한 본차이나의 본고장 영국에서도 명품으로서의 가치를 인정받고 있는 것이다.

한국도자기는 세계 각 지역별로 특화된 디자인도 개발하고 있다. 중동에는 금과 보석 장식의 화려한 디자인, 일본에는 단아한 스타일의 소박한 도자기를 선보이는 식이다. 한국도자기 관계자는 “스와로브스키 원석과 금으로 치장한 화려하고 고급스런 디자인은 콧대 높은 중동 바이어들의 눈길을 단번에 사로잡았다”고 말했다.

전민정 기자 puri21@asia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