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지 적벽대전에서 제갈량은 절묘한 계략으로 조조의 대군으로부터 화살 10만 개를 걷어온다. 일명 초선차전(草船借箭·배에 짚단을 싣고 화살을 얻다)이다. 제갈량은 허수아비와 짚단을 태운 배에 타고 안개 자욱한 장강(長江)을 건너 조조 진영으로 다가간다.

기습공격이라고 오해한 조조군은 짙은 안개와 지형 때문에 출병하지 못하고 화살만 엄청나게 쏟아 붓는다. 짚단과 허수아비에 박힌 화살은 무려 10만여 개. 상대방의 무기 아이템이 순식간에 제갈량 측의 강력한 무기로 변신했다.

중국 관영 신화통신은 뉴스채널 CNC(중국신화뉴스TV)를 통해 지난 7월부터 영어 뉴스 방송을 시작했다.


‘외부의 힘에 의거해 자아 발전을 도모한다’는 의미의 ‘초선차전’을 연상하게 하는 사건이 중국 미디어시장에 나타났다. 언론 황제 루퍼트 머독이 중국에서 2001년부터 추진해온 미디어사업을 지난 8월 사실상 포기했다.

그가 소유한 뉴스코퍼레이션은 중국 국영 사모펀드인 차이나미디어캐피털(CMC)에 3개의 중국 TV 채널을 매각했다. 매각 대상 채널은 ‘스타TV 중국어 채널’ ‘스타TV 영어 채널’ 음악채널인 ‘채널V’이다.

공격적 글로벌 사세 확장 CC-TV도 가세

중국 진출이 오랜 염원이었던 머독은 그 동안 중국시장에 쏟아 부은 자금과 시간 그리고 언론 경영의 노하우 등을 중국 측에 넘겨준 셈이다. 어떤 과정을 거쳐 중국 측으로 넘어갔는지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단지 뉴스코퍼레이션측은 “중국의 미디어사업은 현지인이 관리하는 것이 가장 좋은 성장과 수익을 가져온다”는 이유만 공개했다. 중국 언론계에선 앞이 보이지 않는 중국의 언론시장 환경, 벽에 가까운 정치 지형적 환경을 경험하면서 내린 판단이라고 추측한다.

어쨌든 이번 중국 CMC의 뉴스코퍼레이션 채널 인수는 시기적으로 중국 정부의 미디어 국제화라는 전략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CMC가 인수한 채널에는 세계적으로 지명도가 높은 성룡 (成龍)의 영화 같은 콘텐츠가 포함돼 있기 때문에, 주인이 바뀐 화살(스타TV 등)을 잘 다듬어 글로벌 미디어로 성장시키는 일만 남은 셈이다.

중국 정부가 관영 미디어를 정치적으로 통제하면서도 글로벌 미디어그룹으로 성장시키는 작업을 시작했다. 글로벌 미디어로 키우기 위해 작년에 450억 위안(약 8조원)의 자금을 투자했고, 매년 비슷한 규모의 자금이 투자된다는 소식이 국내 언론을 통해 알려졌다.

류빈제(柳斌杰) 중국국가신문출판총서(中國國家新聞出版總署) 서장은 지난 8월25일 기자간담회에서 “중국 미디어산업은 외국 투자자의 참여를 환영하며, M&A 등 국제적인 합작을 기대한다”고 밝혔다.

이에 신화통신, CC-TV, 인민일보 등 신문·방송 매체들의 움직임이 활발하다. 우선 중국의 대표적인 관영 통신사인 신화통신이 ‘중국판 CNN’을 만드는 야심찬 도전을 시작했다. 신화통신은 24시간 뉴스채널 CNC(중국신화뉴스TV)를 출범시켰으며 7월엔 영어 TV 뉴스방송도 정식으로 시작했다.

신화통신의 북미 본부도 아예 뉴욕 맨해튼 타임스 스퀘어의 고층건물로 확장 이전했다. 세계적인 미디어로 성장하면서 중국에 우호적인 여론을 형성시키기 위한 역할을 담당하겠다는 전략이다. 신화사의 해외지사는 현재 131개, 2020년엔 200개로 늘릴 전망이다.

류빈제(柳斌杰) 서장은 지난 8월 “중국 신화사는 글로벌 미디어산업의 중요한 참여자”라며 신화사의 국제적 역할을 언급하기도 했다. 관영방송인 CC-TV의 발걸음도 재빠르다. 서울과 평양에 지국을 개설하는 등 세계 각국에 100여 개가 넘는 지국 설치를 계획 중이다.

또한 국제방송 다국어 채널을 3년 안에 7개 언어, 7개 채널로 늘리기로 결정했다. CCTV의 인터넷판인 CNTV(중국네트워크TV)도 340억 원을 투자해 출범시켰다.
그러나 해외에서 CNN 시청이 10억 명, BBC가 2억9500만 명 정도인 반면 CC-TV는 고작 9000만 명가량으로 알려졌기 때문에 중국 방송이 세계 여론을 리드하기엔 아직 갈 길이 멀다.

중국 언론의 국제화는 중국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도 마찬가지다. 현재 24면 발행 체제를 향후 2~3년 안에 40면으로 대폭 증면할 계획도 갖고 있으며, 해외 지국을 파격적으로 늘려 뉴스의 현지 취재 시스템을 강화할 예정이다.

자국의 우호적 국제여론 형성이 주 목적

특히 인민일보 자매지 환구시보의 최근 움직임이 눈에 띈다. 중국에 대한 우호적인 국제 여론 형성을 위해 중국 측의 입장을 적극 대변하고 있다. 이 신문은 이달 9일 “미국은 중국에 대해 환율 조작국이라고 주장하지만 작년에 중국을 통해 얻은 수입이 1500억 달러”라고 보도하면서 “미국에게 중국은 여전히 중요한 무역국이며 원만한 관계가 미국에 유리할 것”이라며 은근히 미국을 압박했다.

또한 “중·일 간 영유권 분쟁과 관련한 중국의 보복이 더욱 강화될 것”이라고 일본에 경고하기도 했다. 중국이 이처럼 자국의 미디어를 글로벌화시키는 배경은 역시 미국 등 서구의 언론 관점에서 벗어나 중국 시각의 보도를 통해 우호적인 국제 여론 형성에 있다.

지난 2008년 베이징올림픽에 대한 부정적인 여론-금융 위기와 환율전쟁 등에 대한 중국의 입장이 제대로 반영되지 못하는 상황을 더 이상 방관해선 안 되겠다는 결의가 보인다.

중국 정치인들도 한 목소리로 슈퍼미디어의 필요성을 언급하고 나섰다. 후진타오 주석이 ‘국가 위상에 걸맞게 언론매체의 세계화 역량을 강화하라’고 언급하자, 작년엔 중국 언론 정책의 총사령탑인 리창춘(李長春) 상무위원이 ‘세계적인 일류 미디어 구축’을 주장했다.

중국 언론들이 세상 밖으로 나오고 있다. 글로벌 경기 침체로 매물로 나온 미디어그룹들의 거취, 언론사 인수합병(M&A), 언론합작 등 다양한 이슈들이 터질 것으로 예상된다. 중국의 미디어가 기축통화-기축언어에 이은 또 하나의 기축 시리즈를 실현시키기 위한 바닥 다지기에 들어간 것은 자명하다.

강준완 편집위원 napoli2003@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