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익 내기 사실상 어려워… 지속 가능 따뜻한 가치 창출에 ‘무한 도전’
바우처제 도입 시급… 경영 노하우 갖춘 ‘기업’이 도와야 선순환 가능

기업도 착해야 한다(?). ‘흥부 경영’이 뜨고 있다. 특히 올해 말엔 사회적 책임에 대한 국제표준(ISO26000)이 도입된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은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된다는 얘기다. 최근 ‘착한 기업’인 사회적기업이 주목받는 연유도 같은 맥락이다.

이윤 추구와 사회적 가치 창출을 동시에 목표로 하는 사회적기업의 설립·지원·육성은 기존의 기업의 사회적책임(CSR) 활동과는 분명히 대비된다. 수혜자들이 생산적 주체로 나갈 수 있도록 기반을 마련해준다는 점에서 보다 근원적이다. 돈도 벌면서 취약계층에게 보람 있는 일자리와 사회적 서비스를 제공하는 ‘따뜻한 비즈니스 모델’인 것이다.

우리나라에 사회적기업 제도가 도입된 지도 벌써 3년째다. 2007년 50개였던 사회적기업은 지난 8월 기준 353개로 크게 늘었다. 그러나 자생력을 갖춘 곳은 그리 많지 않다. 대부분은 정부 지원에 의존하고 있는 실정이다. 올해로 세 돌을 맞은 사회적기업의 현주소를 현장의 목소리를 통해 짚어봤다. 전문가의 의견을 통해 개선점도 찾아봤다. <편집자주>

'위캔'의 작업장에서 지적장애 근로인이 수제 쿠키를 전수검사하고 있다.


#경기도 고양시의 한 쿠키 생산업체. 작업장에 들어가는 절차는 까다로웠다. 위생모와 작업복을 제대로 갖춰 입고 에어샤워기(공기순환살균기)까지 통과했다. 30여 명의 근로인이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는 모습이 한눈에 들어왔다.

반죽, 성형, 굽기, 검수, 포장에 이르기까지 쿠키를 만드는 각 공정은 모두 수작업으로 이뤄졌다. 밀가루 반죽을 모양대로 찍어내거나 불빛 아래에서 불량품 검사를 하는 손길은 세심하면서도 빈틈이 없었다. 코를 찌르는 달콤한 버터향 만큼이나 그들의 표정은 웃음과 활기에 넘쳤다.

현장에 있던 근로인의 대부분은 지적장애인이다. 우리밀 과자를 만들어 판매하는 이곳 사회복지법인 위캔은 이들과 함께 숨 쉬고 성장하고 있는 사회적기업이다. 전체 직원 58명 중 37명이 지적장애인이다.

2001년 장애인 생활시설 ‘애덕의 집’의 원장수녀는 쿠키를 만들던 장애인 작업 재활 시설을 어엿한 생산 사업장으로 변신시켰다. 당시로선 혁신적이었다. 인지 기능의 제약으로 가장 일자리를 구하기 힘든 지적장애인이 스스로 자립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해 주기 위해선 이 길 뿐이란 생각이었다.

동정심 기댄 매출은 지속 가능성 없어

위캔이 만드는 과자는 일명 ‘건강한 쿠키’다. 100% 우리밀에 유기농 설탕, 국산 버터, 유정란 등 고급 식재료만이 엄선된다. 방부제·색소도 일체 넣지 않기에 안심하고 먹을 수 있다. 어쩔 수 없이 수입산을 써야 하는 커피, 시나몬, 초코칩 같은 부재료의 경우 공정무역 거래를 통해 들여온 제품만 사용한다.

위생관리도 철저하다. 미세 쇳가루까지 걸러내기 위해 마지막 공정에선 금속검출기를 거친다. 작업하기 전 먼지 흡입과 손 소독은 필수다. 이 같은 노력으로 2008년 식품안전경영시스템인 ISO22000을 인증 받았다.

처음부터 좋은 품질의 쿠키를 만들어내기란 쉽지 않았다고 송향숙 원장(아가다 수녀)은 말한다. 또 쿠키를 생산해도 판로가 마땅치 않아 재고가 쌓이기 일쑤였단다.
“처음엔 직접 쿠키를 들고 다니며 팔았습니다. 그랬더니 반응은 두 가지였습니다.

장애인이 만들었다는 말에 그냥 사주거나, 뒤도 안돌아 보고 그냥 외면해 버리더군요. 그래서 내린 결론이 ‘품질’과 ‘안전성’으로 승부해야 한다는 것이었죠.”

주변에선 값이 비싼 고급 재료를 써서 타산이 맞느냐고 반문하기도 한다. ‘장사가 뭔지 모르는 미친 짓’이라는 말도 들었다. 물론 위캔에겐 ‘이윤 창출’도 절실한 문제다. 돈을 많이 벌수록 더 많은 장애인에게 일자리를 줄 수 있어서다. 최저임금 수준인 근로인들의 급여도 더 올려주고 싶은 것도 송 원장의 꿈이다.

그러나 원가 절감을 위해 질은 떨어지지만 값이 싼 재료를 선택하고 싶은 강렬한 ‘유혹’을 꿋꿋이 물리쳤다. ‘최고급 수제쿠키’를 만든다는 근로인들의 자부심과 사명감, 위캔의 쿠키를 믿고 구입하는 고객들을 저버릴 수 없었기 때문이란다.

‘정직’에 대한 신념은 2008년 멜라민 파동과 함께 웰빙 트렌드를 타면서 점유율 상승으로 이어졌다. 2007년 10월 고용노동부로부터 받은 사회적기업 인증 역시 큰 도약의 밑거름이 됐다. 매년 20% 정도였던 매출 증가율은 인증 다음해인 2008년 40%대로 껑충 뛰면서 처음으로 흑자로 돌아서게 됐다.

이뿐 아니다. 지적장애인 고용에 따른 인건비 지원으로 생산량이 크게 늘었다. 제빵·마케팅 전문인력, 경영컨설팅 지원은 사회복지사, 직업재활사, 수도자가 꾸려가던 이곳엔 특히 ‘단비’와 같았다.

현재 위캔쿠키는 생협, 한 살림, 올가 등 친환경매장을 통해 주로 판매되고 있다. 자체 쇼핑몰을 통해 찾는 소비자들도 많다. 그러나 아직까지 안정적인 판로 확보는 쉽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생협 매장에서 자체적으로 만든 쿠키를 판매하면서 설 자리는 더욱 좁아지고 있다.

송 원장은 “지적장애인을 고용해 사업을 한다는 것 자체로도 구조적인 취약성을 떠안고 있다”고 토로했다. 공정을 자동화하면 생산성이 더욱 높아지겠지만, 이는 ‘장애인 고용 창출’이라는 근본적 취지에 위배된다.

또 취업이 힘든 정신지체 장애인에게 일자리를 하나라도 더 마련해 주어야 하기에 ‘구조조정’은 꿈도 못 꾼다. ‘인건비’에 대한 부담은 위캔이 지속적으로 안고 가야 할 숙원 과제다. 그는 “이윤 창출과 사회적 목적 간에 조화를 이뤄내기란 생각만큼 쉽지 않다”며 “그래도 사회적기업이 일반기업과 차별화되려면 사회적 목적 실현에 우선적 가치를 두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진정으로 가치·철학 담아야 자생 가능

#필리핀 세부의 파밀라칸 섬 인근. 넓은 바다 위를 돌고래가 자유롭게 헤엄치고 있다. 이곳은 다름아닌 ‘돌고래 투어’ 프로그램 현장이다. 돌고래를 잡아 시장에 내다 팔던 현지 주민들은 환경단체의 조언으로 바다에서 사는 돌고래의 모습을 그대로 관광자원화 했다. 이후 그들은 많은 긍정적 변화를 경험했다.

우선 돌고래를 사냥하는 ‘생태파괴자’에서 돌고래 보호에 앞장서는 ‘생태지킴이’로 변신했다. 마을에선 관광객들을 위한 먹을거리를 팔아 부가수익을 올렸다. 지역투어 가이드로서의 자부심도 생겼다.

이것이 바로 ‘공정여행의 힘’이라고 나효우 착한여행 대표는 말한다. 공정여행은 참가자들과 방문지역의 사람들과 역사 환경, 경제, 문화에 대한 존중과 배려가 있는 ‘책임여행’, 감동과 재미 그리고 체험과 경험을 ‘나누고 배우는 여행’, 여행을 통해 맺은 관계를 소중히 여기는 ‘지속가능한 여행’을 말한다.

착한여행은 이러한 책임여행 전문 여행사다. 메콩강, 섬나라, 세계 문화 및 자연유산 시리즈 등 테마가 있는 다양한 여행 프로그램을 통해 보다 많은 여행자들이 생각의 전환과 깨달음을 얻을 수 있도록 돕고 있다. 더불어 환경파괴를 최소화 하기 위한 탄소상쇄 캠페인과 여행 문화 개선을 위한 착한 휴가 캠페인 등 다양한 활동도 펼치고 있다.

착한여행은 ‘지역 기반 여행(community based tourism)’을 지향한다. 나 대표는 외국인의 국내 여행을 위한 인바운드 상품에도 이를 충분히 적용할 수 있다고 말한다. 외국인들이 우리나라 시골마을에서 홈스테이를 하거나 필리핀·캄보디아 등 이주 여성들이 투어 가이드를 하는 식으로다.

실제 착한여행은 지난해 국내 생태여행 가이드로 40여 명의 이주민 여성을 고용했다. 이를 통해 고용 창출과 소외받는 이웃에게 자부심과 긍정적 마인드를 심어주는 ‘사회적 가치’ 실현을 동시에 이뤄냈다.

착한여행의 목표는 ‘전문 중소기업’이 되는 것이다. 물론 차별화된 문화 관광 콘텐츠로 사회적 서비스를 제공하는 혁신적인 사회적기업으로서 말이다. 이를 위해 선택과 집중 전략으로 프로그램을 개발할 계획이다. 여행 관련 상품의 온라인 판매 등 확장성 있는 비즈니스 모델도 준비 중이다.

착한여행은 지난해와 올해엔 BAT코리아와 함께일하는재단으로부터, 지난 2월엔 서울시로부터 예비사회적 기업으로 선정됐다. 얼마 전에는 고용노동부의 사회적기업 인증을 받기 위한 서류 제출을 마치고 발표를 기다리고 있다.

나 대표는 결과에 대해선 희망적이지만, 장담할 순 없다고 얘기한다. 정부가 예산 문제에 봉착하면서 초기 80%에 달하던 인증 획득률이 절반으로 줄었기 때문이다. 최근 몇 년 간 사회적기업 인증 신청 기업은 크게 늘고 있지만 지원 예산은 제자리에 머물고 있는 실정이다.

무형의 가치 인증 기준도 마련돼야

착한여행의 경우 인증을 받게 된다면 ‘기타형’으로 분류된다. 사회적목적이 ‘저소득층에 대한 일자리 또는 사회적 서비스 제공’이라는 요건에 정확히 들어맞지 않는다는 이유에서다.

나 대표는 “사회적기업의 업태가 다양화될 필요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서비스의 종류를 ‘사회적 서비스’에 국한 시킨다면 부가가치 및 고용 창출 효과가 높은 문화·예술·관광 분야의 사회적기업 육성은 뒤쳐질 수밖에 없다는 것.

실제 착한여행은 그 특성상 시장의 니즈를 만들어내면서 상품을 판매해야 하는 이중고를 겪고 있다. 이젠 관행처럼 굳어진 현지 가이드에 의한 상품 구매 프로그램조차 운영하지 않아 대형 여행업체와 같은 대폭의 상품 가격인하 서비스도 현실적으로 힘들다. 상품 판매 시 마진율은 10~15%에 불과하다. 가격 경쟁력에선 태생적 한계를 안고 갈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는 사회적기업이 기업으로서 제대로 된 면모를 갖춰나가려면 일반 기업의 지원이 많아져야 한다고 강조한다. 경영 노하우는 물론, 변화무쌍한 경영 환경에 따른 리스크에 대한 대처 능력까지 조언해 줄 수 있는 곳은 바로 ‘기업’이라는 것.

특히 대기업과 중소 사회적기업의 파트너십은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내며 시너지 효과를 창출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수혜를 받은 중소기업은 대기업의 제품을 구매할 것이며, 도움을 준 대기업은 소비자들로부터 사회공헌에 대한 진정성을 인정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나 대표 역시 BAT코리아로부터 2년째 지원금과 노하우를 지원받은 것이 안정적 성장의 기반을 마련하는데 많은 도움이 됐다고 귀띔했다. 공정여행으로 올 초 사회적기업 인증을 받은 트래블러스맵의 변형석 대표도 이 같은 문화·관광분야 사회적기업의 현실에 동감한다.

변 대표는 “사회적기업 상품에 대한 바우처 제도 시행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정부 구매 물품에 중소기업 제품 구입 비율을 의무화하듯, 사회적기업의 생산품도 일정 부분 구입하도록 하는 것이야말로 자립을 위한 충분한 안전장치가 될 수 있단 의미다.

그는 또 “보이지 않은 무형의 사회적 가치 평가까지 제대로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사회적 가치 실현은 단순히 ‘숫자’로만 평가할 순 없다고 그는 주장한다. 취약 계층의 고용 규모를 따지는 정량적인 기준이 아닌, 무형의 혁신적인 가치를 인정할 수 있는 정성적 기준 마련이 절실한 것도 이 때문이다.

전문인력에 대한 지원 금액도 현실화될 필요가 있다는 조언도 했다. 대졸 초봉도 되지 않은 월 150만 원의 인건비 지원으로는 전문인력을 확보하기란 ‘그림의 떡’일 뿐이란 게 현장에서 느끼는 한계였다.

전민정 기자 puri21@asia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