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비표식

기억하지 않으면 잊혀지기 마련인 역사의 속성. 오늘은 제주에서 그 역사의 속성을 대표적으로 나타내는 공간 중 하나인 이덕구산전을 찾았다. 사려니 숲길 윗목 이덕구산전을 찾아 아직 지지 않은 애기동백꽃의 노래를 이야기 한다. 66년의 시간을 놓쳐버린 그 노래의 시작은 1948년 3월 6일 조천지서에서 시작된다. 이곳에서 3·1사건 피의자로 유치중이던 조천중학원 2학년(당시 21세)이던 김용철 고문치사 사건이 발생했고 약 한달 뒤인 4월 3일과 4일 이틀에 걸쳐 무장대가 조천지서를 습격했다. 4·3사건의 도화선이 되기도 한 김용철 고문치사 사건이 제주 4.3의 시작이다. 현장에서 만날 수 있었던 노란색 나비의 형상이 오버랩 된다.

'관덕정 광장에 읍민이 운집한 가운데 전시된 그의 주검은 카키색 허름한 일군복 차림의 초라한 모습이었다. 그런데 집행인의 실수였는지 장난이었는지 그 시신이 예수 수난의 상징인 십자가에 높이 올려져 있었다. 그 때문에 더욱 그랬던지 구경하는 어른들의 표정은 만감이 교차하는 듯 심란해 보였다. 두 팔을 벌린 채 옆으로 기울어진 얼굴, 한쪽 입귀에서 흘러내리다 만 핏물 줄기가 엉겨 있었지만 표정은 잠자는 듯 평온했다. 그리고 집행인이 앞가슴 주머니에 일부러 꽂아놓은 숟가락 하나, 그 숟가락이 시신을 조롱하고 있었으나 그것을 보고 웃는 사람은 없었다.’ 이상은 제주를 대표하는 소설가 현기영의 ‘지상의 숟가락 하나’의 일부분이다. 당시 이덕구는 김달삼에 이은 무장대의 상징적 존재였던 사람이다. 1949년 6월 7일 제주경찰서 화북지서 김영주 경사가 지휘하는 경찰부대에 의해 사살되었다. 다음날인 8일 관덕정 광장 십자형틀에 묶인 그의 시체가 전시되었다 한다. 도민들은 침묵으로 이를 지켜보았고 실질적으로 4.3의 끝이 되었다. 틀림없이 산전을 지키고 있는 하얀색 나비일테다. 노란색, 하얀색 종이 나비들은 모두 4.3의 영혼들이 아니었을까.

이덕구산전은 원래 봉개리 주민들이 마소를 들판에 풀어 놓으며 잠시 들르던 곳, 시안모루라고 불리던 곳을 말한다. 그리고 제주 4.3 당시 군부대의 대토벌을 피하며 응전했던 무장대 사령관 이덕구의 부대가 움막을 지으며 생활했던 `북받친밭` 일대 등을 일컫는 산속 깊은 곳을 말한다. 이곳들은 곳곳에 움막을 지었던 흔적이 아직까지 뚜렷하다. 북받친곳 일대에는 1948년 겨울부터 1949년 봄까지 수 백명의 피난민들이 이곳에서 생활하며 피신했다고 한다. 영화 지슬의 배경이다. 이덕구의 죽음의 장소에 대해서서는 확실히 밝혀진 바는 없으나 거의 `봉개 윗 지경`, `절물 근처`, `작은 가오리오름 근처` 등으로 나타나는 걸 보았을 때 시안모루와 북받친밧 일대 이덕구산전이 그 장소임을 추측할 수 있게 한다.

산전 움막터

사려니숲길 입구에 도달하기 500m 전 이덕구산전을 향해 큰 길안 숲으로 들어서면 천미천의 지류인 밧삿모루(박새왓내)로 불리는 내를 넘게 되고 좀 더 걸으면 안삿모루((안새왓내)와 북받친밧과 만나게 된다. 천미천은 한라산 해발 1400m 어후오름 일원에서 발원하여 물장올, 물찻오름 등을 거쳐 표선면 하천리까지 이어지는 하천으로 그 길이가 무려 25.7km로 제주도에서는 가장 긴 하천이다. 산전을 오르내리는 동안 박새군락지와 조릿대를 만나기도 하고 제주휘파람새의 처연한 울음소리와 제주까마귀의 커다란 날개짓에 소름이 돋는다.

나비와 표식

제주에서 생활한지 2년 아직도 관찰자의 입장으로 살고 있으니 여전히 제주 4.3은 내게 아픔이다. 그 아픔을 치유하는 길은 흘러간 과거, 즉 역사를 현재 진행형으로 이어 가는 일. 결국은 과거의 매듭을 풀어 가는 일이 아닌가 생각한다. 그것이 온전히 제주만의 몫이라 할 수 있겠는가? 시인 이산하는 "제주4·3은 이념 대립의 산물이 아닌 '통일'의 아이콘이라 할 수 있다"며 "아우슈비츠가 나치의 만행과 더불어 유태인들의 존재와 저항의 상징이 된 것처럼 '제주4·3'도 충분히 그럴 가치가 있다"고 강조했지만 제주 4.3 관계자들의 불소통(不疏通)은 여전히 답답해 보인다. 오히려 점점 해결의 실마리가 미궁으로 헤매고 있는 강정의 문제까지 더해져 아픈 제주의 미래를 보는 것 같아 가슴이 아프다. " '기억의 투쟁'이라는 숙제를 내려놓을 방법이 없다"고 털어놨던 시인의 마음이 청동으로 만든 산전의 제상에 투영된다. 2014년 6월, 아프다고 말할 수 있는 시대가 된듯해 보이지만 시간의 타임머신 안에 남아있는 흔적들을 재조명하고 봉인을 온전하게 풀어내는 작업들은 아직도 요원하다. 제주 여행자들이 상업 관광지만을 탐하지 않고 사려니 숲길과 이덕구산전을 찾아 역사와 시간 속에서 나를 치유할 수 있는 힐링의 도를 발견할 수만 있다면 더할나위 없이 좋겠다. 그럴수만 있다면 보물섬 제주특별자치도의 특별함은 더욱 더 가치있지 않을까.

이덕구산전 순례자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