첩첩산중이라는 말은 이런 곳에 쓰는 걸까? 아름다운 파로호에 자리 잡은 오지마을 비수구미는 자연의 숨겨둔 속살과도 같은 곳이다.

원시와 순수가 살아 숨 쉬는 한국의 아마존

북한강 상류 평화의 댐 못미처의 파로호변 산기슭에 자리 잡은 육지 속의 섬마을, 비수구미. 휴대폰도 터지지 않는 깊은 산골이지만, 배를 타고 가면서 둘러보는 자연 그대로의 마을 정경은 그야말로 한 폭의 그림과도 같다. 단 네 가구만 살고 있는 이곳 주민들은 문명의 이기와 담을 쌓고 오직 자연 속으로 숨어들어가 그 아름다움과 벗 삼고 사는 이들이다.

워낙 깊은 산속이다 보니 몇몇 낚시꾼을 빼고 과거 이곳을 아는 여행객은 거의 없었다. 낚시하는 사람들한테 비수구미라는 이름이 조금씩 알려질 때쯤, 손님 중에 낚시 좋아하는 사람이 나에게 참 좋은 곳이 있다며 그곳을 소개했다. 예쁜 이름에 호기심이 생겨 어떻게 가야 하느냐고 물으니 배를 타고 들어가야 하는 마을이라고 했다. 손님들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나는 안전사고에 문제가 있지 않을까 걱정했지만 직접 가보니 전혀 문제될 것이 없었다.

오지마을이었던 이곳이 유명해진 이유

물론 이곳 역시 예전에는 교통이 불편했다. 평화의 댐이 생기면서 도로가 개선되다 보니 접근하기 쉬워진 것이다. 처음에는 수하리라는 동네에서 비수구미 마을까지 모터보트를 이용해서 들어갔다. 육지 속에 달랑 네 채만 있는 마을. 그 고요한 분위기에서 흐르는 계곡물은 그야말로 환상적이었다. 또한 마을주민인 장윤일 씨 집에서 하는 무쇠솥에서 지은 옛날 밥은 먹어본 사람만 아는 감동적인 맛이다.

대부분 여행객이 비수구미를 거쳐 화천으로 넘어가거나 양구를 경유해 서울로 올라오는 코스를 택했을 때, 난 비수구미 계곡길을 걸으며 트레킹을 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화천 해산터널을 통과해서 동촌리 비수구미 마을로 들어가 점심 먹고 놀다가, 모터보트를 타고 평화의 댐 밑 싸릿골로 나오는 코스였다.

해산터널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은 고개에 위치한 터널로 예전에는 최북단(북위 38도 이북), 최고봉(해발 700m), 최장 터널(1986m)이라는 영예를 가지고 있었지만, 지금은 다른 터널에 모든 타이틀을 내준 상태다. 현재 최북단 터널은 돌산령 터널(북위 38.14), 최고봉 터널은 대관령터널(해발 750m), 최장 터널은 서울의 사패산터널(4000m)이다.

1998년 우리 회사가 구상한 이 코스가 중앙일보에 크게 소개되었다. 사람들은 봄에는 봄꽃, 여름에는 들꽃, 가을에는 단풍을 호젓하게 즐길 수 있다며 무척 좋아했다. 그 후에 입소문을 타며 점점 관광객들이 늘어났다. 태풍 루사와 매미 때문에 계곡길이 많이 망가지긴 했지만 오랜 시간 자연이 축적한 아름다움은 명불허전이다. 요즘엔 통나무집을 짓기 위해 길을 넓혀놔서 조금 흉측스러운 면도 있지만, 오지만이 지닌 특유의 색채는 많이 남아 있는 편이다.

거부할 수 없는 비수구미만의 매력

비수구미는 해산터널로 내려가기 전에는 육지와 연결되었다고 보이질 않는다. 이 때문에 자연스럽게 섬 같은 느낌이 든다. 열 명 미만의 마을 사람들은 기본적인 교통수단으로 오토바이, 자전거, 배, 경운기 등을 소유하고 있다. 배 한 척 값이 아무리 못해도 5000~6000만원인 것을 감안하면 부동산보다도 동산이 많은 사람들인 것.비수구미를 제대로 즐기려면 1박을 하는 것이 좋다. 해산터널에서 밑을 내려다보면 물안개가 쫙 내려앉는 모습이 인상적이라서 해산터널에서 비구수미 마을까지 꼭 트레킹을  해보라고 권한다.

비수구미는 자연휴식년제 실시로 출입이 제한되어 있다. 마을로 들어가려면 주민의 배를 타야 하고, 트레킹이나 계곡을 둘러보는 데도 주민의 허가가 필요한 것. 휴식년제는 주민들의 생계 수단인 물고기, 낚시, 버섯을 캐러 오는 사람들을 막기 위한 수단이다.

특이한 점은 오지로 유명한 비수구미가 우리나라에 유일하게 있는 야생난초의 최대 서식지라는 점. 난초에 관심 많은 사람이라면 비수구미가 더 매력적으로 다가올 것이다.

에피소드

비수구미 마을로 처음 손님을 데리고 갔던 날, 점심을 먹는데 반찬으로 멸치가 나왔다. 손님들은 여기까지 와서 흔하디흔한 멸치를 먹느냐며 반찬에 손도 대지 않았다. 식사 끝날 때쯤 아주머니가 나를 불러 왜 저 귀한 반찬을 안 먹느냐고 물었다. 알고 보니 멸치가 아니라 빙어조림이었던 것! 내가 그 사실을 알리자, 밥을 먹고 밖으로 나간 손님들이 다시 들어와 빙어를 먹으며 한바탕 호들갑을 떨었던 추억이 있다.

이 비수구미 마을의 겨울엔 파로호가 꽝꽝 얼어 얼음 위로 차를 몰고 나가며, 아주머니들은 얼음에 구멍을 뚫어 1년 동안 먹을 빙어를 잡는다. 타 지역보다 빙어가 엄청나게 많이 나오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