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정판 중심으로 소장·투자가치 지속 상승… 매년 12% 안정적 수익 가능
숙성기간·희소성 높을 수록 값어치 있어… 와인 대체 재테크 수단 급부상

입술을 적시고 혀를 축인 뒤 목구멍을 타고 흐르는 알싸함, 특유의 강한 풍미, 투명한 잔 속의 황금빛 출렁임, 고급스러운 보틀… 오감(五感)을 유혹하는 위스키만의 매력 요소다.

우리나라 일부 애주가들은 ‘폭탄주’ 베이스로도 유용하게 즐긴다. 여기에 한 가지 매력이 더 있다. 바로 ‘돈이 되는’ 즐거움이다. 최근 국내에서도 위스키가 투자 상품으로 주목받고 있다. 그동안 흔히 볼 수 없었던 초고가 위스키가 속속 등장하면서 콜렉터들의 투자 심리를 자극하고 있는 것.

특히 한정 상품의 경우 소장가치가 더욱 높아 시간이 지날수록 몸값이 오르는 추세다. 와인에만 치중되었던 ‘주(酒)테크’가 위스키 제품을 중심으로 활발해지고 있는 이유다.


#지난해 12월 16일,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 전시 제품을 둘러싼 관람객들의 눈빛이 보석처럼 반짝거렸다. 세계에서 가장 비싼 위스키가 일반인에게 공개된 것. 12병만 한정 생산된 몰트위스키 ‘윈저 다이아몬드 쥬빌리(Windsor Diamond Jubilee)’가 그 주인공이었다.

디아지오코리아가 자체 개발한 이 위스키는 제조원가만 자그마치 1억 4000만원. 1병의 용량은 700㎖로 40㎖짜리 위스키잔 17.5잔을 따를 수 있으며 1억4000만원을 17.5잔으로 나누면 1잔의 원가는 800만 원이나 된다.

# 그로부터 8개월여 후인 지난 8월 13일. 같은 장소에서 또 다른 위스키 한 병이 다시 한 번 사람들의 시선을 집중시켰다. 전세계에서 오직 단 한 병만 생산된 64년 숙성 싱글몰트 위스키 ‘맥캘란 라리끄 서퍼듀(Cire Perdue)’가 바로 그것. 이날은 단 10병만 제작됐다는 100ml 미니어처(1병)에 대한 경매가 진행됐다.

초대된 이들은 롯데호텔과 애비뉴엘 VIP 고객 각각 20명, 국내 위스키 수집가 10명 등 총 50명. 최종 두 명의 입찰자가 한 치의 양보 없이 경합을 벌인 결과, 700만 원이라는 ‘고가’에 낙찰됐다.
희귀한 위스키에 대한 폭발적 관심에 경매 주인공의 ‘몸값’이 천정부지로 끌어올려진 것이다.

미술품, 보석, 금 등 고가의 현물은 값이 비쌀수록 투자 가치가 높아진다. 가격이 상승한 소비재의 수요가 증가하는 일종의 ‘베블린 효과’다. 이들은 값이 내려가면 누구나 구입할 수 있다는 이유로 가치가 떨어진다. 위스키도 비슷한 양상이다. 그러나 위스키의 투자 가치를 치솟게 하는 특별한 ‘동력’은 따로 있다. 바로 ‘희귀성’과 ‘숙성연도’다.

위의 사례 속 위스키 제품들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몸값이 급등하는 위스키는 대부분 희귀 빈티지 이거나 전 세계적으로 한정 판매하는 제품들이다. 누구나 마시는 위스키는 희소성이 없지만 어디서도 구하기 힘든 위스키는 몸값이 올라가기 마련이다.

지난 1월에 국내에 선보인 ‘글렌피딕 50’은 백화점 판매가만 2700만원대에 달했다. 2009년 생산된 단 50병중 2병만이 국내에 수입됐기 때문이다. 수집가들이 선호하는 투자목적 위스키 역시 맥캘란과 아드백, 보모어 등 ‘한정 생산’된 제품들이다.

특별한 출시 배경의 한정판 위스키도 더욱 큰 값어치를 지닌다. 조니워커 브랜드 창시자 존 워커 탄생 200주년을 기념해 제작된 ‘조니워커 블루라벨 애니버서리’은 전세계적으로 4000병만이 생산된 제품으로, 국내 유명 백화점에서 현재 약 600만원에 판매 중이다. ‘200주년’을 기념한다는 상징성과 한정 판매의 희소성을 감안할 때 소장 가치는 판매가의 10~20배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희귀 상품… 경매시장서도 잘나가

한정 생산 위스키는 판매되는 해부터 가격이 비싸지는 것이 특징이다. 연산이 오래돼야만 가격이 오르기 시작하는 와인 보다 재테크 수단으로 더욱 각광받고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지난 2005년도에 국내에 선보였던 싱글몰트 위스키 맥캘란 라리끄 한정판은 당시 판매 가격이 900만원이었으나 현재는 약 1100만원에서 1200만원 사이에 판매가가 형성되고 있다.

‘오래될수록 귀하다’라는 말처럼 위스키도 숙성기간이 길수록 더욱 값어치가 올라간다. 로얄 살루트의 마스터 블렌더 콜린 스캇은 “특히 위스키의 경우 원액을 오크통에 넣어두면 매년 2%씩 증발하기 때문에 숙성 기간이 길수록 남은 원액은 더욱 진귀해져 가치가 높아진다”고 설명한다.

발렌타인 12년, 맥캘란 15년 등과 같이 위스키 이름 뒤에 붙는 ‘00년’의 숫자가 숙성 연수를 뜻한다. 따라서 이름 뒤에 붙는 숫자가 커질수록 값이 비싸다. 여기에도 원칙이 있다. 여러 종류 위스키를 섞어서 만드는 블렌디드 위스키의 경우, 혼합한 위스키 원액 중 최소 숙성 기간을 병에 표기해야 한다.

예를 들어 12년 숙성시킨 위스키에 10년 숙성시킨 위스키를 혼합해 블렌디드 위스키를 만들면 그 위스키는 ‘10년’이란 숫자가 붙게 된다. 위스키는 보통 경매를 통해 몸값이 크게 올라간다. 경매시장에서 잘 나가는 위스키도 단연 희귀한 위스키다.

현재까지 경매를 통해 가장 비싸게 거래된 위스키는 전세계에서 단 한 병 뿐인 ‘맥켈란 라리끄 서퍼듀’의 100ml 용량의 미니어처다. 최근 대만에서 우리나라 돈으로 약 4700만원에 판매됐다.

앞서 종전 최고가를 기록한 위스키는 지난 2007년 12월 뉴욕경매에서 5만 4000달러(약 4964만원)에 낙찰 받은 ‘맥캘란 화인 앤 레어 1926년(750mℓ)’. 1991년 첫 경매에서 6000파운드(약 1130만원)에 낙찰된 이래 위스키 애호가 및 수집가들 사이에 구매 경쟁이 치열해진 위스키다.

이후 2002년 4월 스코틀랜드 글라스고에서 열린 '맥티어스 위스키 옥션'에서는 무려 2만 150파운드(약 4000만원)에 낙찰돼 위스키 역사상 최고의 경매가를 기록하기도 했다. 11년 만에 값이 무려 3배 이상 오른 것. 이 제품은 국내에서 7000만원에 판매되었을 정도로 우리나라 애주가들과 투자가들에게도 큰 관심의 대상이었다.

그러나 현재의 위스키 경매 최고가는 조만간 깨질 것으로 보인다. 맥캘란 라리끄 서퍼듀가 오는 11월 15일 뉴욕 소더비 경매에서 자선경매에 붙여질 예정이기 때문이다. 맥캘란을 수입·판매하는 맥시엄 코리아 김태호 차장은 “이번 제품은 맥캘란의 64년산 원액을 함유하고 있다는 희귀함과 자선경매라는 성격 때문에 경매 시작가만 15만 달러 이상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위스키 재테크’ 트렌드 되나

고가의 한정 상품 위스키를 중심으로 그 가격이 꾸준히 오르면서 국내에서도 위스키 투자에 대한 관심도가 크게 증가하고 있다. 이에 따라 전문가들은 희귀 위스키의 경우 소장 가치는 물론 재테크 수단으로도 많이 활용 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위스키 애호가들과 수집가들을 중심으로 싱글몰트 위스키의 고급 한정판을 구매하는 이들도 늘고 있다. 지난 9월 추석을 맞아 윌리엄그랜트앤선즈코리아가 롯데백화점 본점을 통해 선보인 65병 한정 생산 제품 ‘글렌피딕 빈티지 리저브 1961’은 1900만원대에 예약 판매됐다.

VVIP로 백화점에서 특별 관리하는 고객에게 미리 ‘찜’ 당해 넘어갔다는 얘기다. 앞서 지난 9월엔 2009년 1900만원에 10병을 들여온 ‘맥캘란 라리끄 최상의 컷(The Finest Cut)’ 전 제품이 국내에서 완판되기도 했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일부 마니아들은 진귀한 위스키의 콜렉팅을 위해 직접 해외 경매에 참여하거나 스코틀랜드 등지의 증류소를 방문해 직매하기도 한다”고 전했다.
그렇다면 위스키 투자를 통해서는 어느 정도의 수익을 올릴 수 있을까. WWI(World Whisky Index)를 설립한 마이클 카펜(Michel Kappen)은 ‘위스키는 안정적으로 매년 약 12% 정도의 수익을 기대할 수 있는 투자처’라고 말한다.

유성운 한국위스키협회 사무국장은 “위스키의 경우 와인과 달리 쉽게 상하지 않아 보관이 용이하고, 시간이 갈수록 품질은 변함이 없는 대신 값어치가 늘어나기 때문에 중장기 투자가치품이나 상속 재산으로써 손색이 없다”며 “시시각각 변동하는 위스키의 가격 현황이나 위스키 옥션 사이트에 조금만 관심을 기울인다면 위스키도 유용한 투자처로 충분히 활용할 만 하다”고 말했다.

전민정 기자 puri21@asia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