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그룹, 미래성장성·시너지 효과·경제적 관점에서 접근할 듯
현대그룹, 적통성 명분 내세워 인수 후 ‘미래 청사진’ 제시 ‘배수진’

현대건설 인수전이 지난 1일 참가의향서(LOI) 제출 마감으로 본격 점화됐다. 11월 본 입찰을 앞두고 있는 이 ‘M&A 대전’은 예상대로 현대차그룹과 현대그룹 간 2파전으로 치뤄지게 됐다.

앞으로의 문제는 인수 이후 현대건설을 어떤 기업이 더 키울 수 있을까 하는 점이다. 과거 금호그룹의 대우건설 인수 실패와 같은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해선 채권단의 철저한 검증이 필요하다. 경제적 관점의 객관적 기준이 현대건설, 더 나아가 국가 경쟁력 제고에도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이코노믹리뷰>는 이런 점에 주목, 현대건설 인수전과 관련해 경제적 관점에서 접근해 봤다. <편집자 주>


‘미래 성장동력이 필요하다. 현대건설을 인수하라.’ 현대차그룹은 이번 인수전에 냉철한 시각으로 임하고 있다. 그룹 승계 등 주변 분위기를 철저히 배제한다는 원칙을 세웠다. 현대차그룹의 움직임에 대해 주변에서는 철저히 계산된 포석이라는 분석이다. 현대건설을 미래성장 발판으로 삼겠다는 게 현대차의 복안이다.

과거 금호그룹의 대우건설 인수 실패란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한 보다 면밀한 준비 작업을 했다. 현대차그룹 입장에선 현대건설은 그저 내실 있는 건설회사, 미래의 성장동력이 될 회사일 뿐이다. 주변 평가처럼 가문의 영광을 재건하기 위한 행보가 아니다. 현대차는 이미 세계 최고의 자동차그룹, 일관제철소를 거느린 그룹으로 성장했다. 단순히 옛 추억에 잠겨 수조 원의 돈을 쏟아 부을 필요가 없다는 얘기다.

채권단이 매각할 예정인 현대건설의 주식은 3887만주(지분율 35%)다. 지분가치는 (9월 30일 종가 기준) 2조8000억 원을 웃돈다. 여기에 경영권 프리미엄과 성장성 등을 감안할 경우 매각 가격은 최소 3조5000억 원에서 4조 원을 넘어설 전망이다.

현대차그룹이 현대건설 인수를 선언한 것은 철저한 계산에 의한 미래 신성장 동력 마련을 위한 투자인 셈이다. 현대차는 인수자금으로 올 상반기 기준으로 보유한 유동자산만 순현금 5조4000억 원을 포함 7조5000억 원을 마련할 예정이다.
현대차그룹 관계자는 “미래성장동력을 마련하기 위한 것”이라며 “인수를 위해 총력을 다할 뿐”이라고 말했다.

현대그룹 “M+W그룹을 투자자로 유치”

실제 현대가의 적통성이란 명분을 내세우고 있는 쪽은 현대그룹이다. ‘잃어버렸던 것을 찾는 것’이라고 할 정도로 확실한 명분 쌓기에 나섰다. 고 정몽헌 전 회장이 2000년 경영난에 빠진 현대건설 회생을 위해 4400억 원의 사재를 출연했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특히 현대차의 인수 결정에 대해 부정적 시각을 내비쳤다.

현대그룹은 “현대차그룹은 (현대건설이) 어려웠을 때 지원을 외면하다가 경영 정상화가 이뤄지자 인수 의사를 밝힌 것은 유감”이라고 밝혔다. 배수의 진을 치고 현대차와 현대건설 인수를 놓고 한판 승부를 벌이겠다는 의지도 불태웠다. 오래 전부터 인수 준비를 해온 만큼 일정에 따라 차분히 대응해 나갈 예정이라고 했다.

문제는 현대그룹이 인수자금을 어떻게 마련하는가 하는 점이다. 현대그룹의 보유자금은 1조5000억 원 정도. 4조 원이 넘는 현대건설을 인수하기 위해선 대략 3조 원의 자금이 필요하다. 부족한 자금은 해외의 전략적 투자자를 통해 조달할 예정이다. 현대그룹은 지난 1일 인수의향서(LOI) 제출에 앞서 독일의 하이테크 전문 엔지니어링 기업인 M+W그룹을 전략적 투자자로 유치했다고 밝혔다.

현대그룹은 이를 바탕으로 자금력을 보완, 현대차와 치열한 승부를 벌인다는 계획이다. 그런데 상황이 녹록치만은 않아 보인다. 채권단이 인수자금 외에도 인수 이후 미래 청사진을 어떻게 제시하느냐에 높은 배점을 할 것으로 전해진다. 현대그룹 입장에선 재무적 투자자가 참여하고 있어 과도한 경영권 및 수익률 요구의 부담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단점이 있다.

현대그룹은 이 같은 평가에 대해 자금력에 있어 전혀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현대그룹 관계자는 "해외 재무적 투자자를 확보한 만큼 인수비용 마련에 전혀 문제가 없다"며 단호한 입장을 취했다.

현대그룹은 독일의 M+W 그룹을 전략적 투자자로 유치함으로써 현대건설이 부족한 부분을 보완하고 글로벌 시장을 개척할 수 있게 됐다고 자평하고 있다. 현대건설이 세계적 엔지니어링 기업으로 한 단계 발전시킬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됐다는 것.

M+W 그룹은 세계적으로 하이테크 엔지니어링 등에서 최고의 기술력을 인정받는 곳이라고 강조했다. M+W 그룹의 조지 스툼프 회장은 26세에 비엔나 최고층 빌딩(50층)을 건설한 기업가로 오스트리아의 정주영 회장으로 알려져 있다.

주된 사업영역은 첨단전자산업, 생명과학, 태양광발전, 화학, 자동차, IT 등이다. 지금까지 200개 이상의 반도체 공장들과 총 7700 MW 이상의 태양광 발전소들 및 다수의 대규모 R&D센터들을 건설했으며 유럽과 미국 및 아시아에 걸친 그 임직원들의 수는 현재 총 약 5000여 명에 이른다.


현대차그룹의 현대건설 인수 참여설은 꾸준히 제기돼 왔다. 그러나 공식적으론 ‘관여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피력해 왔다. 집안싸움으로 비춰지는 것도 싫었지만 무엇보다 성공적인 인수합병을 위해선 철저한 위장이 필요했다. 과도한 경쟁으로 비춰질 경우 매각대금이 터무니없이 오르는 일을 방지할 요량에서다. 허허실실 전략을 사용했다고 이해하면 쉽다. 현대차는 현대건설 인수 이후 발생하게 될 경제적 효과를 수년 간 계산해 왔다.

현대차, 치밀한 계산 아래 ‘과감한 베팅’

현대건설의 풍부한 유동자산과 종합엔지니어링 회사로서의 건설 기술력을 눈여겨 봤던 것. 하지만 당장 눈앞의 이익만을 쫓는 것은 아닌 듯하다. 현대차그룹은 현대건설 인수에 거는 기대가 크다. 국내 건설업계의 진출 발판을 마련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더 큰 그림을 그리고 있다.

그룹 내 연계 시너지 효과, 글로벌 건설사로의 육성을 계획하고 있다. 현대건설 인수 이후 현대차그룹의 세계적 네트워크를 활용해 미래 성장동력으로 키우기 위해서다.
현대차그룹은 확실한 인수를 위해 외국계 투자은행인 골드만삭스를 인수자문사로, 삼일회계법인과 HMC투자증권을 회계자문사로, 김&장을 법률 자문사로 각각 선정해 현대건설 인수의 경제적·법적 타당성을 검토해 왔다.

그런데 외부의 시선이 곱지만은 않다. 현대그룹과의 대결구도를 두고 집안싸움이라고 평가하고 있다. 현대그룹의 명분과 현대차그룹의 자금력 대결이 골자다. 현대차그룹은 “사실과 다르다”고 항변하고 있지만 외부의 평가는 좀처럼 사그라지지 않는다.

그런데 현대차그룹은 이런 평가에 일희일비 하지 않는다. 외부의 평가에도 인수 준비에만 열중하는 모습이다. 여기에서 생각해 봐야 할 점이 있다. 과연 현대건설 입장에선 어느 쪽으로 인수되기를 희망하는가 하는 점이다. 대형 인수합병의 핵심은 인수 이후의 모습이다. 어떤 곳에 인수되느냐에 따라 성장의 범위가 결정된다.

이런 의미에서 경제적 관점의 접근은 인수합병에 있어 중요한 요소다. 전문가들은 일단 현대차 쪽의 손을 들어주는 듯 한 모습이다. 풍부한 그룹 건설물량의 지속적인 공급과 풍부한 자금력은 향후 현대건설의 성장에 엄청난 효과를 안겨줄 수 있다는 분석이다.

현대차그룹의 사업 확장은 항상 결과를 예측하고 움직여왔다. 예컨대 큰 그림을 그린 뒤 작은 그림으로 채워나가는 식이다. 실수를 줄이고 급작스레 발생하는 돌발변수를 최소화하기 위한 전략이다. 이는 현대건설 인수에도 그대로 적용됐다. 인수에 성공하더라도 치밀한 계획 없이는 낭패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눈앞의 이익만 쫓다간 승자의 저주에 빠질 가능성이 크다. 과거 금호그룹의 대우건설 인수 실패가 좋은 선례다.

그래서일까. 현대차그룹의 현대건설 인수에 대한 주요 입장은 인수 이후에 맞춰져 있다. ‘어떻게 인수를 할 것인가’보다는 ‘어떻게 키워나갈 것인가’라는 점을 명분으로 내세운다.

“그룹 숙원사업이던 현대제철 일관제철소를 성공적으로 완공했고, 자동차사업도 글로벌 시장에서 안정적인 궤도에 올랐기 때문에 미래성장을 위한 그룹의 사업 포트폴리오를 강화하기 위한 차원이다. 동시에 원전 등의 친환경 발전 사업은 물론 주택용 충전시스템과 연계된 주택건설 등 장래에 직면하게 될 친환경 시장을 공략하겠다는 의도가 담겨 있다.”

인수 이후 ‘어떻게 키우나’ 최대 초점

그룹의 주력인 자동차 부문이 향후 전기차나 하이브리드 차량 등 친환경성에 매진할 수밖에 없다는 것과 맥을 같이 한다.


현대건설의 기술력과 세계 150여 국가, 8000여 곳에 글로벌 생산 설비와 판매 거점을 확보하고 있는 현대차그룹의 해외 네트워크가 합쳐질 경우 시너지 효과에 대한 기대감이 높다.

해외 고속철 및 철도차량 사업과 연계가 가능하고 현대제철과 현대하이스코로부터 안정적인 건설 자재 조달도 가능하다. 그룹의 사업 역량이 합쳐질 경우 현대건설을 세계적 브랜드로 키워 낼 수 있다는 자신감이다.

전기차 등 사업 연계 ‘친환경 시장’ 매진

현대차그룹 관계자는 “국내 브랜드 중 세계적 브랜드는 많지만 건설의 경우는 다르다”며 “진입 장벽이 높지만 그만큼 성장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미래 성장동력은 곧 현대건설이 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실제 국내 건설사의 시공능력은 세계적으로 인정을 받고 있다. 1980년대 중동, 중앙아시아 등에 진출해 명성을 쌓은 업체가 많다. 최근 한전의 아랍에미레이트의 원전 시공도 국내에서 맡았다. 건설 능력을 높이 인정받아 가능했던 일이다.

그런데 세계적인 브랜드의 건설사는 단 한 곳도 없다. 자재 수급 등의 문제가 발목을 잡았던 것으로 전해진다. 건설업계 한 관계자는 “해외시장에서 국내 건설사의 최대 단점으로 자재 수급 등의 문제가 꼽히고 있다”고 말했다.

현대차그룹는 이런 점을 주목한 듯 하다. 현대건설을 미래 신성장 동력으로 만들겠다는 의지가 강하다. 현대제철과 현대건설의 시너지 효과가 발생할 경우 세계적 건설사 브랜드를 만들 수 있을 것이란 기대감도 크다.

현대제철은 포스코에 이어 제2의 일관제철소로 안정적인 자재조달이 가능하다. 제1고로는 연간 400만t을 생산할 수 있으며 제2고로가 가동될 경우 연간 800만t의 쇳물 생산이 가능하다. 이렇게 되면 연간 열연강판 650만t과 후판 150만t을 생산할 수 있게 된다.

국내 건설업체들은 시공 능력을 높이 평가 받고 있지만 글로벌 브랜드로 자리매김 하지 못했다. 국내 최고 건설사로 꼽히는 현대건설이 인수전을 통해 글로벌 브랜드로 성장할 수 있을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진정한 승부는 “사실상 이제부터 시작”

현대차그룹이 2008년부터 급성장을 한 데는 미래를 대비하는 경영전략이 주요했다. 당장의 이익보다는 앞으로 발생하게 될 경제적 효과에 맞춰 움직인 것. 여기서 시계추를 돌려 보자.

2002년 중국 베이징. 중국의 개혁 움직임이 조금씩 시작됐다. 과거 공산주의 체제의 빈자리를 자본주의가 메우고 있을 무렵, 현대차는 중국에 진출했다. 현대차는 중국이 WTO에 가입한 후 처음으로 중앙정부의 정식 비준을 받은 자동차기업으로 북경현대차를 설립했다. 현대차와 중국의 북경기차가 5대5로 합작 투자한 회사다. 공산주의 국가의 잔재가 남아 있다는 이유로 기업의 투자가 미비했던 때다.

북경현대차의 판매량은 2003년 5만대를 시작으로 2009년 57만대를 넘어섰다. 2008년 제 2공장 준공을 통해 대량 공급이 가능해 진 것. 최근엔 중국 제 3공장 건설을 추진하기로 결정, 중국 정부와 사업계약을 체결했다.

북경현대차는 중국 진출 7년 만인 지난해 업계 4위에 오르는 쾌거를 이룩했고 지난 4월에는 누계 200만대의 생산, 판매고를 올렸다. 중국은 현재 단일국가로는 세계 최대의 자동차 시장으로 성장했다.

미래성장 경영 능력 발휘 절호의 기회

현대차의 미래를 대비한 성공 경영의 사례는 또 있다. 1997년 현대차의 기아차 인수. 당시 전문가들은 기아차의 경영 정상화에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현대차의 동반 부실까지 걱정했다. 그러나 현대차는 모두의 예상을 깨고 기아차의 성장을 이끌어 냈다. 인수 1년 만인 1999년 1824억 원의 흑자를 냈고, 2000년에는 창립 이후 최대 규모인 3307억 원의 흑자를 냈다.

특히 IMF의 단초가 됐던 기아차와 한보철강을 인수, 빠른 시일내에 경영정상화를 이루고 더욱 발전 시킨 점은 주목할 만 하다. 실제 기아차는 최근 새로운 디자인을 앞세운 K7, K5, 쏘울 등을 선보이며 현대기아차그룹의 글로벌 입지를 강화시키고 있다.
당장의 이익보다는 미래를 대비한 정몽구 현대차 회장의 과감한 투자가 맺은 결실이다.

정 회장의 취임 이후 현대차는 많이 변했다. 무엇보다 경영 성적표가 향상됐다. 미래에 대한 투자의 결과다. 취임 해인 2000년 36조 1360억 원이던 자산총액은 2009년 100조7000억 원으로 3배 이상 성장했다. 매출액은 94조6520억 원, 계열사 수도 42개로 2000년 대비 각각 2.5배 증가했다(표-참조).

현대건설을 인수하기 위해선 인수 이후의 계획이 중요하다. 거기에 정 회장의 미래지향적인 경영철학과 능력, 충분한 자금력이 어떻게 조화를 이루는 지를 따져볼 필요가 있다.

채권단은 대우건설의 매각시 발생했던 ‘승자의 저주’와 같은 일이 되풀이 되지 않기 위해 객관적인 기준을 마련, 매각절차를 진행해야 한다.

현대그룹과 현대차그룹의 현대건설 인수전. 주사위는 이미 던져졌다. 양사 모두 경제적 논리에 입각해 인수전에 뛰어들기로 한 이상 가문을 내세운 명분을 내걸고 싸우기보다 11월 본 입찰을 앞두고 자금 운용과 인수 후 운영계획의 철저한 준비가 필요하다.

김세형 기자 fax123@asia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