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 대표 위스키 향·맛·품질은 이들의 손놀림과 미각에서 완성

'김연아’라는 명품 선수 뒤엔 부모의 헌신적인 교육열이 있었다. 명품은 그냥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그 명품을 만드는 사람의 혼이 그 안에 들어있기에 ‘명품’이라는 이름이 붙는다. 위스키도 마찬가지다. 명품으로 손꼽히는 위스키 고유의 맛과 향은 이들 장인의 손과 코, 또 혀 끝에서 탄생한다. 장인의 손놀림과 미각이 최상의 가격을 만들어내고, 고객은 그 가치에 아낌없는 돈을 지불하는 것이다.

위스키를 만드는 장인은 통상 블렌디드 위스키의 경우 ‘마스터 블렌더’, 싱글몰트 위스키의 경우 ‘몰트 마스터’라고 지칭한다. 마스터 블렌더의 주요 임무는 통마다 약간씩 다른 원액을 적절한 비율로 섞어 가장 소비자의 입맛에 어필하는 배합을 만드는 것이다.


몰트 마스터는 좀 더 넓은 범위를 책임진다. 생산할 위스키를 기획하고 그 위스키를 생산하기 위한 전 과정을 설계, 관리, 감독한다. 여기엔 제조 과정, 사용되는 오크통, 숙성 방법 그리고 최종적인 위스키의 향과 맛, 품질까지도 포함돼 있다.

이들의 손에 의해 만들어진 위스키는 명품으로서의 가치가 충분하다. 따라서 마스터 블렌더와 몰트 마스터의 몸값은 당연히 비쌀 수밖에 없다. 그들의 자필 서명이 되어 있느냐 여부에 따라 위스키의 가격이 오르내리기도 한다. 전 세계적인 위스키 제조업체를 대표하는 ‘위스키 장인’들은 과연 어떤 이들일까.

38년 노하우 담아 윈저 맛 보증

윈저 마스터 블렌더 ‘더글라스 머레이’
‘윈저’의 전담 마스터 블렌더인 더글라스 머레이는 38년 경력을 가진 최고의 마스터 블렌더로 평가받는다.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슈퍼 프리미엄급 스카치 위스키 ‘윈저 17년’을 증류 ·혼합하고, 최고급 스카치 위스키 윈저 XR의 최고 등급 원액을 셀렉팅한 주인공이다. 현재 세계 3대 주류 품평회인 IWSC (International Wine and Spirit Competition) 심사위원 대표를 맡고 있다.

대학에서 화학을 전공한 후 디아지오 곡물 증류의 품질 확인 부서에 근무하던 그는 1979년부터 캠버스 증류소에서 품질 관리자로 재직하면서 몰팅, 보관, 증류 등에 대한 지식의 폭을 넓혔다.

30년 넘게 위스키 발전을 위해 지식과 노하우를 쏟아 부은 결과, 디아지오가 주류 사업의 선두 위치로 올라서는 발판을 제공했다. 또 디아지오 그룹 내에서 최고 수준의 실력을 갖춘 술을 증류하고 혼합하는 장인으로 손꼽히게 됐다.

5대째 블렌딩 전통·역사 계승

발렌타인 마스터 블렌더 ‘샌디 히슬롭’
발렌타인의 마스터 블렌더인 샌디 히슬롭은 발렌타인의 다섯 번째 마스터 블렌더다. 그는 두 명의 선대 마스터 블렌더와 함께 일하는 기회를 잡은 행운아다.

발렌타인의 마스터 블렌더는 200여 년이 넘는 발렌타인의 역사상 현재까지 오직 5명만이 존재해왔다. 히슬롭은 발렌타인 위스키 고유의 스타일을 유지하는 블렌딩 비법을 전수 받은 유일한 사람으로, 그 전통과 역사를 보존하고 계승하는 발렌타인의 살아 있는 수호자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는 마스터 블렌더가 갖추어야 할 조건으로 스카치 위스키에 대한 열정, 경험과 직관을 꼽는다. 마스터 블렌더는 방금 수확된 원료의 품질 테스트에서부터 길게는 수십 년에 걸친 위스키의 증류, 숙성, 블렌딩 과정을 헌신과 끈기로 지켜봐야 하며, 위스키가 술잔에 담기기까지 날카로운 후각과 위스키 제조 비법의 지혜를 발휘해야 한다는 것.

그는 또 마스터 블렌더의 가장 중요한 소임을 ‘위스키 맛의 일관성을 유지하는 것’이라 말한다. 마스터 블렌더는 몇 십 년 전에 블렌딩 된 발렌타인 위스키와 오늘 블렌딩 한 위스키가 동일한 맛과 향을 낼 수 있도록, 제조 과정의 모든 단계를 일관되게 관리하고 책임져야 하기 때문이다.

위스키의 왕이라 불린 사나이

킹덤 마스터 블렌더 ‘존 램지’
위스키 ‘킹덤(Kingdom)’의 마스터 블렌더 존 램지는 140년 전통의 스코틀랜드 위스키 명가 에드링턴 그룹의 최고 위스키 장인으로 손꼽힌다. 전 세계에 30명 정도로 희박해 말 그대로 ‘인간문화재’격인 마스터 블렌더 중에서도, ‘위스키의 왕’으로 불린다.

1949년 스코틀랜드에서 태어난 그가 위스키와 인연을 맺은 건 17세 때다. 1966년 스트래스클라이드 주 디스틸러스(Distillers) 연구소에 입사해 화학자가 되기 위해 일과 학업을 병행했다. 당시 이 회사는 위스키와 관련된 일을 하던 회사였다. 1971년에는 로손 디스틸러스 (Lawson Distillers)에 입사해 10년 후 블렌더로 인정을 받은 후 위스키 생산관리를 맡았다.

이후 1991년에는 에드링턴 그룹으로부터 마스터 블렌더로 ‘위스키의 왕’으로 인정을 받았으며, 은퇴 전에는 그의 마지막 유작으로 위스키 ‘킹덤(Kingdom)’을 블렌딩 했다. 국내에서 하이트-진로그룹 계열의 하이스코트를 통해 출시되고 있는 킹덤은 깔끔한 맛과 함께 그가 은퇴 전 마지막으로 블렌딩 한 작품으로 알려지면서 큰 관심을 끌고 있다.

발베니 역작 탄생시킨 혁신가

글렌피딕 몰트 마스터 ‘데이비드 스튜어트’
데이비드 스튜어트는 싱글몰트 위스키 ‘글렌피딕’의 성공과 그 궤를 같이하는 사람이다. 1945년 스코틀랜드에서 태어난 그는 1962년 17세의 나이에 윌리엄 그랜트 앤 선즈사의 수습사원으로 입사했다. 이후 1974년 마스터 블렌더이자 몰트 마스터가 되어 현재까지 근무하고 있다.

그는 위스키 업계에서 존경 받는 인물 중 한 명으로, 항상 새로운 시도를 많이 하는 혁신가로 평가받는다. 업계 최초로 글렌피딕 15년에 사용된 와인 숙성 방법 중 하나인 솔레라 시스템, 매우 피트한 오크통을 사용하는 글렌피딕 카오란 시리즈 등을 개발해 위스키 업계에 많은 영향을 줬다.

특히 100% 수제 싱글 몰트 위스키 발베니 더블우드 12년산의 경우는 위스키의 마지막 숙성을 다른 오크통에서 하는 파격적인 실험을 통해 탄생한 역작으로 손꼽힌다.
지난 2008년에 윌리엄 그랜트 앤 선즈사는 그의 근무 45년을 기려 ‘발베니 시그니처 12년’을 출시했으며 지난해 위스키 매거진은 그의 46년 위스키 인생을 기념해 ‘Icon of Whisky 2009’를 통해 ‘Lifetime Achievement Award(평생공로상)’을 수여했다.

전민정 기자 puri21@asia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