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일 서울시 안암동 고려대학교에서 칼리 피오리나 전 HP CEO가 특강을 진행하는 모습. 사진=이코노믹리뷰 이미화 기자.

'칼리 피오리나(Carleton S.Fiorina).' 이름이 곧 첫 역사임을 대변하는 사람은 몇 되지 않는다. 그러나 칼리 피오리나 전 HP(휴렛팩커드) CEO이자 칼리 피오리나 엔터프라이즈(Carly Fiorina Enterprises) 회장은 '위미노믹스(Womenomics)'로 대변되는 여성 CEO사에 큰 족적을 남긴 인물로 기억되고 있다.

피오리나 회장은 1999년부터 2005년까지 HP를 진두지휘하면서, 아직까지 미국 CEO사회서  3%만이 차지하고 있는 '유리천장'을 뚫은 인물로 평가받고 있다. 이뿐만이 아니다. HP가 선택한 최초의 외부 출신 회장, 대형 컴퓨터 업계 최초의 여성 회장, 세계 상위 20대 기업 최초의 여성 회장 등 그에게 붙은 '최초' 수식어는 다채롭다.

'얼굴 마담'격으로 내세운 HP의 마케팅 전략이 아니였냐는 세간의 의혹도 극복했다. 그간 정체돼 있던 수익성을 극복하기 위해 '컴팩'과의 합병을 성공적으로 성사시켰으며, 내부 조직 관리로 HP가 도약하는 밑거름을 발판했다는 평을 받았다.

그런 피오리나 회장이 지난달 30일 방한, 서울시 안암동 고려대학교 인촌기념관에서 '위미노믹스(Womenomics)시대와 성공하는 리더의 조건'이란 주제로 특강을 펼쳤다. 한 시간이 조금 넘는 시간이었지만 피오리나가 훌륭한(Great) 리더로 상기되는 이유를 알 수 있었던 자리였다.

칼리 피오리나는 하늘색 투피스를 입고 피치톤의 힐(Hill)을 신고 청중 앞에 나섰다. 차분한 검정색이나 그레이톤 정장을 선호하는 CEO들의 평균적인 모습과는 남달랐다. 그만의 개성과 소신, 철학이 뚜렷했기에 가능한 선택이라고 느껴질 정도였다. 그는 먼저 성공적인 리더, CEO의 조건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했다.

피오리나 회장은 "리더는 사람을 관리(Management)하는 역할을 맡고 있지 않다"며 일반 대중 인식에 일침을 가했다. 이어 "관리는 제품의 질을 향상시키고, 잘 만드는 것에 관한 이야기고 진정한 리더와 리더십은 회사의 힘과 역량을 잘 분배하는 것"이라고 정의했다. 같이 일하는 동료들의 잠재력을 꿰뚫어 보고, 회사의 비전과 변화의 밑그림을 함께 공유해야한다고도 덧붙였다.

그러면서도 리더의 단호한 결정에 대해서도 역설했다. 그는 "긍정적인 변화와 이전과 다른 새로운 것(사업 등)을 실현하기 위해선 리더가 앞을 내다볼 수 있어야 한다"며 "직원들이 결정을 내리거나 선택할 수 없는 사안이기 때문에 때론 CEO는 끊임없이 다른 CEO들의 모습을 '타산지석'으로 삼고 끊임없이 공부해야 하는 자리"라고 덧붙였다.

피오리나는 리더의 가장 큰 덕목으로 도태되지 않고 끊임없이 배우는 자세와 도전(Challenges)을 두려워하지 않으며, 남들의 이야기를 경철할 수 있는 자세가 꼭 필요하다고 당부했다. 그는 "나는 기회가 많고 두려움이 없기 때문에 젊은 당신들(학생)이 부럽다"면서도 "아직 나도 도전을 사랑한다"며 당당함을 내비치기도 했다.

하지만 피오리나 회장이 긍정적인 마음가짐으로 도전과 변화를 즐겼던 것만은 아니었다. 역경은 '수백만 가지'라고 했고, 어려웠던 일은 수도없이 많았다고 전했다. 처음은 23세의 나이로 로스쿨을 중퇴했다는 때였다. 그는 "전공을 바꿀까 생각했던 3개월 동안은 잠을 한숨도 잘 수 없었다"며 "운명이라고 생각할 나이가 아닌 젊은 세대들은 자신이 갖고 있는 '재능(Gift)'를 지금 위치에서 최선을 다해 발휘해 좋은 기회를 만들거나 가지는 포부가 필요하다"고 전했다.

두 번째 겪었던 일은 그가 처음으로 입사한 AT&T했던 1980년에 일어났다. 당시만해도 젊은 여성을 동료로 삼기 싫어했던 문화가 잔존했었다. 피오리나 회장보다 나이가 많은 늙은 남성 동료는 영업사와의 미팅 자리를 '스트리트 클럽(Street club)'으로 선택했다고 했다. 나체의 여성의 춤을 보며 술을 먹는 자리서 해야했던 영업, 그에겐 고역이었다. 피오리나는 "갈까 말까를 굉장히 고민했었다. 창피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나는 그 자리에 나가는 것을 선택했다"며 "후에 알고 보니 내가 이 회사에 꼭 다녀야 하나 등의 의지를 테스트하려는 것이었다"며 "그와는 후에 좋은 팀을 이뤘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이런 에피소드를 통해 칼리 피오리나 회장이 전달하고 싶었던 것은 리더가 맞부딪힐 수 있는 위기와 저항을 극복하는 방법이었을 게다. 피오리나 회장은 HP의 내부 구조를 정리하면서 반발을 가져 오기도 했고, 그가 퇴진할 당시에는 제시하는 사업 방향이 틀렸다는 이사진의 거센 저항도 있었다.

그는 "변화에 저항(Resist)하는 직원들은 늘 존재한다. 리더는 이들을 다 가려내기도 힘들다. 그들을 독려하며, 동기 부여를 계속 제시하며 함께 가야 한다"고 했다. 이어 "리더부터가 직원들의 이야기를 경청해야 하며, 오픈 마인드와 방향에 대한 투명한 제시 등으로 극복해야 할 부분"이라고 했다. 피오리나는 말미에는 "나를 반대했던 이사진들은 결국 해고된 것으로 알고 있다"며 웃음을 짓기도 했다. 우리사회에 고정관념처럼 그려진 '경청하지 않는 회장' '맘에 들지 않으면 직원을 내치는 사장'과 거리가 멀어 내심 장내가 숙연해지기도 했다.

그를 부르는 지위에 대해서도 완강히 거부하는 뜻을 비치며, 혁신적인 CEO의 모습을 내비쳤다. 피오리나 회장은 "나를 부르는 지위는 많다. 하지만 이것이 나를 설명하진 않는다"며 "도전을 좋아하는 사람, 동료들과 일하는 것을 즐기는 사람 등으로 불러달라"면서 패널의 질문에 애정어린 조언을 아끼지 않으며 특강을 마쳤다.

이날 자리에 함께 참석한 이두희 고려대학교 경영대학장은 "지난해 세계적인 투자 전문가 짐 로저스 회장의 특강에 이어 야심차게 준비한 강좌"라며 "짧은 시간 안에도 칼리 피오리나의 개인사뿐만 아니라 그간 경험한 노하우를 배울 수 있는 자리"였다고 소감을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