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바닥을 쳤던 해운 경기가 올해 반등하면서 3분기까지 호조를 보이고 있다. 그러나 컨테이너선은 10월부터 운임 하락이 예상되고, 벌크선도 별다른 호재가 없어 해운업체들은 포트폴리오 다변화 등 사업 다각화로 위험을 분산시키고 있다.


2009년 결코 잊을 수 없는 ‘생지옥’을 경험했던 해운업계가 올 들어 미소를 머금기 시작했다.

‘지난해 바닥을 찍은 게 맞느냐’는 의문이 들 정도로 3분기까지는 기분 좋은 순항을 이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어떻게 해운업황이 1년 만에 급격히 개선될 수 있었을까? 여러 가지 요인들이 함께 작용했다. 우선 경기가 점차 회복하면서 해운업황 반등의 기반을 다져줬다. 여기에 글로벌 금융 위기 여파로 잔뜩 움츠렸던 소비 심리가 살아나면서 제품들이 팔려나가기 시작했고, 재고가 바닥을 드러내자 적정 재고를 유지하기 위해 업체들이 물건을 사고팔면서 운송해야 할 물동량도 늘어났다.

이는 곧바로 운임 상승으로 이어져 해운업계로 하여금 ‘숨통’을 트게 만든 계기가 됐다고 볼 수 있다.

선사, 계선·감속 운항으로 위기 극복

하지만 뭐니 뭐니 해도 올해 해운업황의 반등에는 선사들의 숨은 노력이 가장 큰 원동력으로 작용했다. 심각한 위기에 처한 선사들의 ‘절박함’이 이들을 단단히 뭉치게 한 것.

선사들이 내놓은 특단의 대책은 선박 과잉 공급을 줄이기 위한 적극적 ‘계선’과 ‘감속 운항’이었다. 계선이란 해운 경기가 악화될 때 선박의 운항을 중지하고 항구에 정박시키는 것으로 일반 기업들이 제품 생산량을 줄이는 ‘감산’과 같은 개념이다.

2008년 이전에는 컨테이너선에 대한 계선 데이터가 없었고, 2008년 말부터 데이터를 구축하기 시작했는데 2009년 상반기 계선 비율은 무려 12%였다. 전체 컨테이너 선박의 12%를 항구에 정박시켜 놀린 셈이다.

선사들이 선박 공급을 줄이고, 경기가 저점을 찍고 회복하면서 물동량도 늘어났고, 재고 효과마저 발생하면서 운임이 올라가는 결과를 가져왔다.

1년 전부터 ‘컨’선 운임 반등 원동력

선사들은 이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감속 운항으로 놀고 있던 배들을 한 척, 두 척 다시 투입하면서 해운 경기 회복에 속도를 붙였다. 이는 2009년 7월부터 본격적으로 효과를 발휘하기 시작해 컨테이너 운임은 반등하기 시작했고, 평균 운임도 2배로 껑충 뛰었다.

2009년 4분기부터 재고 효과도 가시화하면서 올 1분기 말에는 유럽노선 운임이 정상화됐고, 2분기에는 미주라인 운임도 제자리를 찾았다. 운임이 정상화되면서 유럽노선에 강한 업체들은 1분기부터 실적이 호전되기 시작했고, 미주노선에 강한 우리나라는 2분기부터 실적이 좋아졌다.

이로써 컨테이너선 운임은 반 년 이라는 짧은 기간에 정상으로 되돌아 왔다.특히 3분기의 경우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물동량이 늘어나는 컨테이너선의 계절적 성수기로 운임이 꾸준히 상승세를 타고 있다.

9월부터는 할증료도 붙는 등 컨테이너선 전체 이익의 50%를 3분기에 벌 정도다. 상반기에 12%였던 계선 비율도 8월로 접어들면서 1%대까지 줄어들었다. 그러나 방심은 금물이다. 컨테이너선 성수기가 끝난 10월부터 내년 2월까지는 운임이 떨어질 것이란 게 전문가들의 판단이다.

물론 선사들이 다시 계선에 나설 수는 있지만 2009년 같은 최악의 상황은 닥치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당시만큼의 결속력을 보일지는 미지수다. 올해 돈을 많이 번 대형 선사를 중심으로 영업을 확대하면서 운임 인하 등의 차별화 전략을 펼칠 경우 선사들의 공조는 깨질 수밖에 없다.

또 내년에는 규모가 큰 대형 선박들이 집중적으로 인도되는 해여서 공급 과잉 우려도 나오고 있다. 이에 따라 내년에는 올해 돈을 번 선사와 벌지 못한 선사들의 양극화가 심해지고, 평균 이익 규모도 떨어져 10% 이상을 기록했던 영업이익률도 한 자리로 떨어질 것이란 분석이다.

‘컨’선 운임 하락 예고 자구책 마련 절실

반면 선사들의 공조 체계가 붕괴되면 시장 폭락은 두말 할 필요가 없기 때문에 이런 상황을 뻔히 알고도 선사들이 공조를 깨지는 않을 것이고, 오히려 공동 운항으로 대응할 것이란 지적도 있다.

결론적으로 내년 해운 시장에 잠재적 불안 요소들이 숨어 있어 안심할 수는 없다는 얘기다. 벌크선 시장도 당분간 눈에 띄는 호재를 찾기는 힘들 것으로 보인다. 특히 벌크선은 4분기가 성수기임에도 운임이 오르지 않고 있다.

중국이 전체 벌크선 시장에서 철광석 18%, 석탄 16%, 곡물 7%의 비율을 각각 차지하고 있는데 중국 철강사들이 감산하면서 9월 들어 운임이 오르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다른 편에서는 중국 철강석이 벌크선 시장에 미치는 영향력은 25% 정도로, 그 중 18%가 철광석인데 감산을 하더라도 5억t 정도로 전체 벌크 물동량의 1~2%에 불과해 운임에는 큰 자극을 주지 못할 것이란 의견도 있다.

벌크선에 대한 의견은 엇갈리지만 해운업계의 전반적인 상황은 지금보다 크게 나빠지지는 않고 자유로운 조정을 통한 연착륙이 가능할 것이란 게 전문가들의 공통적 견해다.

최근 국내 해운업체들이 잇따라 포트폴리오 다변화 등 사업 다각화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것도 이런 상황들에 대한 불안감 때문이다. 실제로 한진해운은 전체 매출의 80%를 차지하고 있는 컨테이너 운송 비율을 낮추고, 장기수송 계약을 확대할 방침이다.

STX팬오션은 매출의 80%를 차지하고 있는 벌크선 운송 비율을 줄이고, 자동차 및 중량물 운반선을 통한 수입 규모를 늘릴 계획이다. 대한해운은 에쓰오일과 5년 동안 1250만t 이상의 원유 수송 계약을 체결해 현재 5%인 원유 수송 비율을 점차 확대키로 했다.

현대상선은 올 초 조직 개편을 단행해 지난 22년 간 유지해온 4본부 42개팀 조직을 4부문 11본부 42개팀으로 개편, 급변하는 해운 시황에 유연하면서도 적극적으로 대처키로 했다.

신민석 대우증권 수석연구원은 “국내 해운업체들의 사업 다각화는 국제통화기금(IMF) 사태 당시부터 해야 했는데 기회를 놓쳤고 글로벌 금융 위기로 또 한 번 기회를 놓쳤다. 상당히 안타깝다”며 “어떻게 보면 늦은 감이 있지만 지금부터라도 해야 한다. 내년에 머스크 등 외국 대형 선사들이 치고 나갈텐데 이에 대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은경 삼성증권 선임연구원은 “국내 선사들이 투자 사이클을 놓치고 있다”면서도 “경기 민감주들은 어려울 때 투자해서 좋을 때 벌어야 선순환 사이클이 된다. 지금이 가장 투자하기 좋은 때다. 앞으로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승국 기자 inklee@asia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