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벅시’, ‘라스베이거스를 떠나며’, ‘오션스 일레븐’ 등 수많은 영화에서 라스베이거스는 우리에게 도박과 섹스 같은 어두운 이미지를 떠올리게 한다. 하지만 오늘날의 라스베이거스는 각종 전시회와 신제품 발표회, 협회 세미나와 비즈니스 모임이 열리는 미국 최대 컨벤션 도시로 변모했다. 이렇듯 유흥문화가 도시 발전에 미치는 영향도 만만치 않다.

경북 구미지역에 아파트 시장조사 일로 지방 출장을 갈 일이 생겼다. 필자는 주로 아파트 사업지의 가치를 객관적으로 평가하는 일을 한다. 현장 방문에 앞서 보통 해당 도시를 이해하기 위해 부동산 가격동향, 편의시설 특성, 놀이문화 특성 등을 인터넷을 통해 사전 조사한다. 요즘 웬만한 정보는 인터넷을 통해 거의 찾을 수 있다. 짧은 출장에서 도시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최대한 많은 정보를 사전에 얻고 가야 한다. 현장 방문 때는 그 정보가 맞는지 확인하고 눈으로 검증하는 절차를 거친다.

구미지역은 국가 산업단지가 입지해 있는 곳으로 산업단지 인근 개발을 근간으로 해서 도시가 발달했다. 이곳은 반도체 산업을 중심으로 LG전자 구미공장, 삼성탈레스 등 대기업 공장들이 빼곡이 들어서 있다. 입주기업이 2000여 개, 구미시의 인구는 대략 40만 명인데 이 중 산업단지에서 일하는 인력이 약 10만 명에 달한다. 산업단지를 근간으로 해서 도시의 주거, 상업, 문화, 경제가 발전 성장하고 있는 대표적인 도시로, 고(故) 박정희 전 대통령의 생가가 있는 곳이기도 하다.

구미시 구도심 중심에 위치한 금오시장은 기업을 근간으로 발달한 도시임을 잘 보여준다. 구미를 대표하는 재래시장이기도 하지만 시장의 기능보다는 밤 문화로 외부지역에 많이 알려진 곳이다. 금오시장 중심도로를 중심으로 관광나이트, 노래방, 주점이 이면도로까지 빼곡히 들어서 있었다. 시장 중심에는 관광나이트 클럽이 들어서 있고 주변에는 연계시설로는 모텔, 소규모 식당들이 위치해 있었다. 식당은 음식 고유의 맛과 풍미를 가지고 고객을 모으는 형태라기보다는 유흥시설의 부대기능에 충실한 상권 발달로 생각된다.

1970년대부터 들어서기 시작한 산업공단은 국가의 성장과 관련된 전략사업인 동시에 놀 거리 문화 발전의 배경이기도 하다. 사전조사에 의하면 현재의 노래방 문화는 이곳에서 시작돼 전국으로 퍼졌다고 했다. 특히 4~5개쯤 되는 구미지역의 나이트클럽은 놀기 좋아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유명한 곳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오후 10시쯤 다시 찾은 금오시장 밤거리는 생각과 달리 황량했다. 주점의 네온사인만이 밤거리를 밝히고 있을 뿐 가로등 하나 없는 어둠의 거리였다. 거리를 돌아다니는 사람들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술에 취한 취객 한두 명 정도가 길거리를 배회할 뿐이어서 상권이 유지될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들 정도였다.

유동인구가 없으니 상권이 쇠퇴하는 단계로 그 빈자리를 구미식 노래방이 그득히 메우고 있는 것이다. 그 근처에서 한 끼의 식사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어두운 거리를 지나가야 한다. 사람이 없으니 음식의 질도 떨어지게 되게 되고 고객을 모을 유인책이 없어지는 악순환이 지속되는 상권으로 보였다.

◆여자가 있어 성장하는 문화의 거리

같은 상황을 두고라도 여자와 남자는 인식의 차이가 많다. 예컨대 친구끼리의 대화 중 ‘나 어제 미팅했어’, ‘여동생 있어?’, ‘애인 생겼어’라는 대화가 주를 이뤘다면 여자친구끼리는 ‘남자 차는 있어?’, ‘맨날 싸우겠다’, ‘그래 잘됐네’ 등 다양한 답변이 나온다. 반면, 남자의 경우 ‘여자 예쁘냐’라는 답변 하나로 귀결된다. 이렇듯 남자들의 관심은 여자들이다. 정확히 말하면 예쁜 여자다.

구미시 금오시장 서쪽으로 도로를 건너 위치한 문화로는 금오시장과 완전히 상반되는 느낌이었다. 구미시가 추진한 문화로 디자인 거리 조성사업 때문이다. 구미시는 원평동 일대 문화로 560m 구간에 친환경 황토벽돌을 이용한 노면패턴 정비와 대형 홍보전광판, 입구 상징조형물 설치, 바닥LED 경관조명을 설치했다. 가로등 하나 없는 어두운 금오시장과 달리 형형색색의 조명은 서울의 인사동 같은 느낌을 줬다. 1층 상가는 대부분 여성 옷을 파는 점포들이 위치해 지나가는 사람들의 발길을 붙잡았다. 젊은 사람들의 왕래도 많고 먹거리도 풍성했다.

여자가 있으면 남자들은 자연스레 따라서 이동한다. 원평동 문화로에는 젊은 여성들이 선호하는 걷기 좋은 구조로 거리를 공유했다. 그 결과 젊은이들이 모였다. 상권이 살아났고 인근 부동산 가치도 올랐다.

구미의 나이트가 전국적으로 유명했던 이유도 여자의 밀도와 관련이 깊은 것으로 보인다. 우스갯소리일지 모르겠지만 산업단지의 야근이 없는 날은 아파트 단지에서 방송으로 공지를 한다는 말이 돌기도 했다. 아마 산업단지가 밤낮없이 돌아갈 때 가구의 소득도 높아지고 나이트를 찾는 미시족이 늘어나는 상황을 빗댄 표현일 것이다.

그러나 구미지역의 흐름도 바뀌고 있다. 젊은 여성들이 나이트보다는 클럽을 선호하면서 구미 나이트의 명성이 시들해지고 있다. 때에 따라 성장하는 지역이 있는가 하면 인기를 잃어가는 지역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떡 하나 더 가지려고 다투는 이해집단

필자는 쌍둥이 아들을 둔아빠다. 두 아들은 요즘 아이답지 않게 심성이 착하고 형제간의 우애도 좋은 편이지만 게임기, 장난감 등의 선물을 받았을 때에 평화가 깨진다. 같은 물건을 두 개 사서 나눠주면 싸울 일이 없지만 같은 물건을 두 개 사는 것은 낭비라는 생각이 들어 함께 쓰라며 한 개의 고가 선물을 사주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러나 결과는 항상 서로 더 가지고 놀겠다고 주장하며 치고받고 싸운다. 주로 어린이날, 생일, 크리스마스 등의 기념일에 주는 선물이 오히려 가정의 평화를 해치는 것이다. 마음이 약한 엄마는 똑같은 것을 하나 더 사주는 경우도 있지만 나는 힘으로 제압해 장난감을 없애버린다. 그런데 특이한 것은 두 녀석 모두 장난감을 갖지 못하는 것에 대해 동의한다는 점이다. 경제적으로 볼 때 둘이 번갈아 장난감 등을 가지고 놀면 없는 것보다 이득이 될 텐데 아예 둘 다 선물을 못 받는 합리적이지 못한 선택을 한다는 사실이다.

도시를 재생하는 데 앞서 가장 큰 장애물은 도로인 경우가 많다. 그래서 도로는 개인 혼자 쓰는 것이 아닌 여러 사람이 공유하는 도시계획시설로 분류된다. 그런데 도시가 성장을 하게 되면 도로를 넓혀야 한다. 확장이 안 되면 도로는 정체되고 유동인구의 확대에도 한계가 생겨 상권은 쇠퇴한다.

만약 금오시장 일대를 원평동 디자인 거리와 같이 조성하기 위해 도로를 넓힌다고 가정하면, 도로건설에 수용되는 건물 주인은 장기적으로 득을 볼까, 실을 볼까?

단기적으로는 자신의 재산이 줄어들어 손실처럼 보이지만 상권의 활성화 등을 기대한다면 장기적으로 득이 될 가능성이 높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합리적인 선택을 하는 상가주나 건물주는 찾아보기 힘들다.

그래서 한 도시의 성장이 한계에 이르면 새로운 도시를 계획적으로 만드는 작업이 시작된다. 구미시의 경우 제4, 5국가산업단지가 조성되고 있으며 배후 주거지로 옥계지구 등이 조성되고 있다. 낡은 구도심을 개발하기보다는 젊은 도시를 새롭게 만드는 것이 경제적이기 때문이다. 지금은 아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젊은 도시로 문화 경제시설 등이 제자리를 찾아갈 것으로 생각된다.

리얼투데이 김광석 실장(www.Realtoday.co.kr)

리얼투데이 김광석 센터장은 현재 영암, 해남 관광레저형 기업도시 자문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김 센터장은 주택과 산업단지, 계량분석 전문가로 부동산 정보업계에서 호평을 받고 있다. 닥터아파트 정보분석팀장, 유니에셋 리서치센터 팀장, 스피드뱅크 리서치센터장을 역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