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솔직한 이들은 재능과 상관없이 그 탓에 결정적 순간에 ‘실족’

“The honesty is the best policy(정직이 가장 좋은 정책이다).” 이 말은 반은 옳고 반은 틀리다. 많은 사람들이 정직과 솔직함을 착각한다.

그래서 상대의 감정은 고려하지 않은 채 ‘나의 솔직함’만을 순진하게 내세우다 상처를 입히기도 하고, 걷잡을 수 없이 관계를 악화시키기도 한다.

자신의 감정에 솔직한 감정적 리더는 상대를 남으로 만들고, 남에게 정직하되 감정을 통제하는 감성적 리더는 상대를 님으로 만든다.

남과 님은 이처럼 자신의 희로애락, 감정을 얼마나 통제하느냐 하는 사회성에서 비롯된다. 지나친 솔직은 오히려 민폐다.

어느 날 세미나 뒤풀이자리에서 지인들끼리 사회 적응 미숙형에 대해 대화를 나눴는데, 기피형 1위가 솔직담백형이었다.

“내 단점은 너무 솔직한 거야”라고 말하는 이들은 꼭 재능과 상관없이 바로 그 솔직함 때문에 사회생활에서 결정적 순간에 실족하더란 얘기였다.

일행들은 그 말을 듣고 ‘조직에 한 명씩은 반드시 있는 이들 솔직담백형의 폐해’에 대해 모두 고개를 끄덕거리며 동감을 표했다. 솔직담백형은 마치 자신의 단점을 너무나 자신 있게 장점처럼 얘기해서 주위를 썰렁하게 만든다는 것이었다.

솔직함이란 상대야 어떻든 일찍이 죄책감을 털어버리고 벗어나고자 하는 이기심의 발로일 수 있다. 아니면 솔직함을 빙자한 ‘배 째라 식 선전포고’이거나.

어느 병원에서 있었던 일이다. 암에 걸린 40대 중년 부인 환자가 찾아왔고, 병명을 묻는 그녀에게 의사는 “당신은 현재 암 3기로 앞으로 6개월밖에 못 삽니다”라고 너무나 솔직하게 직선적으로 대답했다.

부인은 크게 상심했고, 그 사실을 알게 된 남편은 곧이곧대로 말한 의사를 탓하며 소동을 부려 병원에 일대소동이 벌어졌다. 만일 당신이 그 의사라면 어떻게 하겠는가? 이에 대해 한 의사는 이런 해답을 내놓았다.

‘선량한 거짓말’은 삶의 지혜·상대 존중

“모든 걸 규정에 의거해 근거 조항만 들이댄다면 사람이 할 필요 있나요? 지나치게 정직한 것이야말로 가장 위험하다는 말도 있답니다.

진실과 거짓말, 그사이의 위험한 중용이라면 사실에는 침묵하되 조금의 가능성에라도 힘을 싣는 것이지요. 저라면 아마 ‘조금 어렵습니다. 하지만 아직 희망은 얼마든지 있습니다’라고 말했을 것 같군요.”

이처럼 방어용이든 공격용이든 선의의 거짓말을 비롯해 사람들은 하루에 거짓말을 몇 번이나 할까? 일반인들은 하루 평균 3회 정도 거짓말을 한다고 한다.

다시 말해 세월의 연륜이 쌓일수록 거짓말 수도 늘어난다는 결론이다. 천국의 질서가 통하는 평화시대에는 곧이곧대로 말해도 곤란할 상황이 없어 정직과 솔직함을 굳이 구분할 필요가 없을지 모른다.

하지만 ‘소돔과 고모라의 혼란이 횡행하는’ 전쟁의 시대를 사는 우리에게 ‘정직’은 지켜져야 하지만 ‘솔직함’은 에둘러가는 것이 삶의 지혜이고 상대에 대한 존중일 수 있다. 인간관계를 원활하게 하는 ‘선량한 거짓말’은 생활의 지혜이기 때문이다.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디오게네스는 자신을 찾아온 알렉산더 대왕에게 “그늘이 지니 폐하의 그림자를 치워 주시겠습니까?”라고 말한 인물이다.

일화에서 짐작할 수 있듯 그는 세상과 타협하지 않은 대쪽 같은 사람이었다. 그 솔직함이 잔인할 정도였다니 사람됨을 대강 짐작할 수 있다.

그는 자신이 믿는 솔직함을 강력하게 지지했고, 철학자와 친구는 무엇보다 우선해 꾸밈없는 진실을 말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래서 그는 친구들에게 사랑과 지지를 받았을까? 그렇지 않다. 그는 결국 적은 물론 친구들에게도 달가운 사람이 되지 못했다.

자신의 감정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것을 곧 미덕이라고 생각하지 말라. 남들은 진심을 진실성 그 자체보다 단순한 순진함으로 받아들일 가능성이 높다.

적절한 거짓말은 자기 관리를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 사회생활의 윤활유이자 남의 상처를 치료하는 머큐로크롬의 역할도 한다.

김성회 리더십 칼럼니스트
연세대학교와 동 대학원에서 국문학을 전공했으며 서울과학종합대학원에서 경영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세계일보>에서 활동한 기자 출신의 리더십 전문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