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국 이해관계 푸는 게 관건… 제3의 기축통화 필요성에도 가능성은 ‘글쎄’

“최근 일각에서 거론되고 있는 한국과 중국, 그리고 일본이 중심이 되는 ‘A3(Asia3) 통화(화폐)동맹’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풀어야 할 난제가 많습니다. 하지만 언젠가는 현실화할 가능성도 없지 않습니다. 이에 대비한 체계적인 대책도 미리 강구해야 합니다. 현실화 하면 세계 경제 구도가 송두리째 바뀔 정도로 큰 이슈가 될 겁니다.”

국제금융전문가인 양범직(48) 대한생명경제연구원 금융팀장은 최근 논란이 일고 있는 한·중·일 통화동맹에 대해 “현재로서는 불가능해보이지만 시시각각 변화하는 세계 정세를 고려할 때 (한·중·일 통화동맹) 가능성도 있다”며 이같이 강조했다.

양 팀장은 한·중·일 3국의 이해관계 등을 고려할 때 풀기 쉽지 않은 문제지만 언젠가는 현실로 다가올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우리나라는 지정학적으로 중국·일본 양국과 오버랩 (Overlap)되는 부분이 많다”면서 “최근 중국과 일본 간 벌어지고 있는 경제 패권전략에서 우리가 캐스팅 보트 역할만 잘 하면 오히려 주도권을 잡을 수 있다”고 내다봤다.


최근 중국 내에서 한·중·일 3국이 참여하는 ‘A3(Asia 3) 통화동맹’을 맺자는 주장이 고개를 들고 있습니다. 하지만 한 경제전문가는 적어도 향후 20년 안에는 불가능 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습니다. ‘A3 통화동맹’ 과연 현실성 있는 얘기입니까.
“현재로서는 단언하기 힘들지만 불가능한 일도 아닙니다. 물론 적잖은 진통도 예상됩니다. ‘A3 통화동맹’의 핵심은 동아시아 지역에서 경제력이 가장 앞서 있는 한·중·일 3국의 주도로 ‘아시아판 유로존(Eurozone)’을 만들자는 것입니다. 현실화하려면 선결 과제도 적지 않습니다. 당사국 간 이해관계 등을 충족시키는 공통분모가 마련되어야 하는데 생각처럼 쉽지만은 않습니다.”

A3 통화동맹에 가장 적극적인 국가는 중국입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가장 큰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중국은 장기적으로 미국 달러화에서 벗어나려는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특히 위안화의 기축통화도 적극 추진하고 있습니다. 물론 한편에서는 A3 통화동맹에 관심을 쏟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중국이) 적극 나서는 이유는 중국의 비약적인 발전 때문입니다. 실제로 중국은 외환보유고가 넘쳐납니다.

중국은 올해 일본을 제치고 세계 2위 경제대국 자리에 오를 것으로 보입니다. 실제로 중국은 2분기(4∼6월) 국내총생산(GDP)에서 일본을 486억 달러 앞질렀고 연간으로는 약 3000억 달러 앞설 것으로 전망됩니다.

중국이 개혁 개방정책을 내건 지 30여 년 만에 경제 규모를 90배 키우면서 경제, 외교 등 여러 면에서 미국과 함께 주요 2개국(G2)의 반열에 확실히 등극했습니다. 결국 중국은 G2로서 위상을 강화하려고 합니다. 하지만 중국은 정치·외교 분야에서는 미국과 대등하지만 경제적인 측면에서 아직 미국과 상대가 되지 않습니다. 따라서 중국은 정치·외교력에 걸맞는 협상력을 확보하기 위해 A3 통화동맹을 강력하게 추진할 것으로 보입니다.”

미국·유럽 수출을 주로 하는 한·중·일 3국이 금융 위기 때마다 최대의 피해자가 되고 있다는 인식이 깔려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지만 단순히 피해라고 단정지을 수는 없습니다. 오히려 수출의 경우 환율이 하락해 경쟁력을 갖기도 했습니다. 물론 외환시장이 불안해지면서 자산가치가 떨어지기도 했습니다. 선의의 피해를 보았다는 생각이 큽니다. 전체적으로 어느 정도 반발심리도 작용한 것으로 보입니다.”

과거 유로존 구축은 어떤 과정으로 진행됐나요.
“유럽은 기준통화체제를 만든 후 11개국이 먼저 1991년 1월부터 통화를 단일화했습니다. 그 이전에는 화폐는 아니지만 ECU(유럽통화단위·European Cu rrency Unit)라는 단일통화를 먼저 통화 단위로 공동 사용하며 통합 과정을 거쳤습니다. 아마 아시아판 유로존 구축도 이런 형태로 이뤄질 것으로 예상됩니다.”

아시아판 유로존이 이뤄질 경우 많은 변화가 있을 것 같습니다.
“그렇습니다. 가능성에 대해 장담할 수 없지만 가장 큰 변화는 아시아판 유로존 내에서 환전할 필요 없이 단일화폐를 사용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현실화하면 우리나라 여행객이 일본 도쿄에 가서 아시아판 유로존 화폐(단일통화)로 물건을 살 수 있습니다. 환전에 따른 불편함이 없습니다.

또 역내 시장의 활성화입니다. 각국 간 무역장벽이 사실상 사라지고 수출시장이 역내시장이 됩니다. 결국 우리나라는 물론 아시아 각국의 내수 경쟁력이 강화됩니다. 실제로 아사아시장은 성장 속도가 매우 빠릅니다. 또한 미래도 밝습니다. 당연히 공동시장이 구축됐을 때 아시아 각국이 얻는 이익은 매우 큽니다. 또 하나 효과는 외환금융시장이 비교적 안정될 것으로 보입니다. 달러화, 유로화와 함께 3개 통화가 어느 정도 견제와 균형을 이루기 때문입니다.”

‘A3 통화동맹’의 핵심은 동아시아 지역에서
경제력이 가장 앞서 있는 한·중·일 3국의 주도로
아시아판 유로존(Eurozone)을 만들자는 것입니다.

중국 못지않게 일본도 아시아판 유로존 구축에 큰 관심을 기울였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사실은 일본이 가장 먼저 관심을 기울였습니다. 이미 일본은 1990년대 엔화의 국제화를 시도한 적이 있습니다. 일본은 경제적인 효과도 중요하지만 외교적인 부분이 더 큽니다. 아시아를 대표하는 리딩 국가로 위상을 강화하려는 측면이 있습니다.

이 같은 배경에는 최근 일본 방위성 산하 기관인 세계평화연구소가 내놓은 보고서에서 잘 나타납니다. 이 연구소는 2030년대 이후에 아시아 공동 통화를 도입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연구소는 아시아의 경쟁력 강화를 위해서는 달러나 유로화에 버금가는 공동 통화를 도입해 세계 경제 안정에 공헌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하지만 상당수 전문가들은 아시아판 유로존 구축이 실현되기 어렵다는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현실화 하려면 넘어야 할 산이 많을 것 같습니다.
“그렇습니다. 이론상으로는 가능합니다. 하지만 현실적인 부분에서 해결해야 할 과제가 많습니다. 한국과 중국, 일본은 역사·영토문제 등 풀어야 할 문제가 많습니다. 유럽 국가들과 상황이 다릅니다.

특히 중국과 일본의 이해관계는 풀기 어려운 부분이 많습니다. 이들 양국은 세계 2, 3위를 다투는 경제대국의 주도권을 서로 놓지 않으려 합니다. 주도권 싸움에서 양보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무엇보가 각국의 통화정책 통합은 물론 경제 발전 속도도 비슷해야 합니다. 격차가 크면 통합에 큰 걸림돌이 됩니다. 유럽의 경우 일정 수준에 미달하는 국가를 포함시켰다가 톡톡히 대가를 치렀습니다.”

당장 현실화하기 어렵지만 그래도 우리도 손 놓고 있을 순 없을 것 같습니다. 대책을 마련해야 하지 않나요.
“아직까지는 각국의 오피니언 리더들 차원에서 제안하는 수준이지만 달러화가 기축통화로 불안해지면 불안해질수록 이러한 통화동맹 주장이 설득력을 넓히게 될 것입니다. 당장의 일은 아니지만 언젠가는 실현될 가능성도 적지 않습니다. 따라서 우리도 필요하다면 정부 차원의 적절한 기구를 구성해 분야별로 체계적이고 심도 있는 중장기적인 준비를 해야 합니다.”

김재홍 기자 atom@asia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