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위안화 기축통화’ 최종 목표… 일본, 엔화 경쟁력 믿고 방관…
한국, 중·일 중간 입장

중국의 차세대 지도자는 시진핑(習近平)과 리커창(李克强) 상무위원이다. 이들은 2007년 중국 ‘권력의 핵’인 상무위원에 선출되면서 2012년 중국 최고지도자가 되기 위한 치열한 경쟁관계에 돌입했다.

시진핑 상무위원은 칭화대(淸華大) 출신으로 모교에서 법학 박사 학위를, 리커창은 베이징대(北京大)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2007년 당시 리커창의 베이징대 동문들은 “공학(工學)으로 유명한 칭화대에서 법학 박사가 무슨 의미인가”라고 시진핑을 에둘러 깎아내렸다. 시진핑의 동문들은 “경영 금융시스템이 낙후된 국가에서 경제학 박사가 무슨 의미인가”라고 공격했다. 국내 언론에도 소개돼 화제가 된 일화다.

이명박 대통령(외쪽에서 여섯번째)이 지난해 10월 태국 후아힌 두삿타니 호텔에서 열린 아세안(Asean+3) 정상회의에 참석해 정상들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중국은 세계 선진국에 비해 경영 금융시스템이 상대적으로 낙후된 국가다. 그러나 앞으론 그런 지적은 적절하지 않을 것 같다. 매년 국제 금융도시로 용트림하는 상하이(上海)-선전(深川)-홍콩 등을 보면 알 수 있다. 중국의 주요 도시가 ‘세계의 공장’에서 ‘세계의 금융 중심’ 지역으로 부상할 날이 무섭게 다가오는 느낌이다.

중국의 자본은 지금 세계 금융의 중심으로 들어오려고 한다. 세계 2위의 경제 규모와 막대한 외환보유고(2조5000억 달러, 한국은 2700억 달러), 지칠 줄 모르는 경제성장률을 무기로 자본 게임을 준비하는 것이다. 상대는 물론 달러다. 그런 자신감으로 ‘동아시아 통화동맹(화폐동맹)’ 과 ‘위안화의 기축통화’를 거론하는 것이다.

동아시아(A3) 통화동맹은 한·중·일 세 나라의 화폐를 단일화하자는 의미다. 단일화폐를 가지고 중국과 일본에 가서 물건을 구입할 수 있는 동아시아판 유로존(Eurozone)인 셈이다. 통화공동체는 각국 국민들에게 화폐 사용의 편의성을 제공할 수 있고, 동아시아 경제 블록의 강화를 가져올 수도 있다. 또한 큰 형님격인 달러에 의해 초래되는 금융 위기에 대비할 수 있는 위험 분산 효과도 있다.

亞통화동맹 한 때 힘 받다 잠잠

동아시아 통화동맹론보다 먼저 선보인 것이 아시아 통화동맹론이다. 1990년대 말레이시아 마하티르 총리가 언급한 이후 98년 아시아 금융 위기 때 힘을 받는 듯하다가 잠잠해졌다.

2003년 12월 한국에 온 가와이 마사히로 (河合正弘) 아시아개발은행연구소(ADBI) 소장도 “한국, 일본,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등 일부 국가들은 통화동맹체제로 전환할 수 있는 경제적 요건을 상당히 충족하고 있다”고 언급했다. 그는 동아시아 경제통합을 집중적으로 연구해온 일본의 대표적 국제경제학자다.

8월20일 일본에서 열린 한 세미나에서도 “단일통화 문제에서 일본과 중국이 서로 자국 통화를 먼저 내세운다”며 “한국이 적절한 아이디어를 제시한다면 역내 통합은 현실이 될 것”이라고 통화동맹 권역을 동아시아로 좁히는 발언을 했다.

2005년 1월엔 유력 투자은행인 JP모건이 중국 위안화를 중심으로 한국 원화, 홍콩달러 등 아시아 각국 통화를 하나로 묶는 통화동맹 방안을 제시하기도 했다. JP모건은 또 아시아 통화동맹은 세계 경제 불균형을 해소하고, 아시아 각국이 경쟁력 상실 없이 통화 절상에 나설 수 있는 길이라고 설명했다. 특징적인 것은 일본 엔화를 제외한 점이다.

같은 해 2월 미 시사주간지 〈뉴스위크〉도 `서서히 태동하는 통합 움직임`이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아시아 단일통화로 `엔민비(yenminbi)가 부상하고 있다”고 게재했다. 엔민비는 일본의 엔화와 중국의 위안화(人民幣·런민비라고 부른다)의 합성어. 한중일 3국에서도 생소한 단어다.

결국 아시아 통화동맹론은 실현 과정의 복잡성과 가능성 여부는 숙제로 남겨놓고 우선 달러 중심의 세계경제판을 구조조정해야 된다는 각국의 이해관계에서 나온 경제 논리에 가깝다.

이후 동아시아 중심의 단일통화에 대한 논의도 험난한 여정을 거쳐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면서 수면 밑으로 가라앉았다. 험난한 여정이란 유로화 출범까지 30년 이상이 걸린 점, 한·중·일 간 역사·정치적 갈등으로 인한 통화 주도권 싸움, 세계 금융시장이 달러·유로·아시아권으로 분류되는 과정에서 나타날 수 있는 미국의 견제 등이다.

잠잠하던 아시아 통화동맹론이 올 6월 동아시아(A3) 화폐연맹이란 타이틀로 다시 중국 언론에서 쏟아지기 시작했다. 칭화대 국제문제연구소가 내놓은 ‘A3화폐연맹보고서’ 내용을 각 언론들이 보도한 것이다. 이 보고서의 내용은 한중일 3국이 먼저 단일화폐 사용으로 통화동맹을 이루고 아세안(ASEAN· 동남아국가연합)을 끌어들여 명실상부한 ‘아시아 통화공동체’를 건설하자는 주장이다.

中, G20회의 앞두고 동맹론 재점화

옌쉐퉁(閻學通) 칭화대 국제문제연구소장은 “달러 위주의 기축통화 정책은 금융 위기가 올 때마다 한·중·일의 경제가 흔들리는 구조”라며 “동아시아 3국의 통화동맹은 달러에 대한 의존에서 벗어나게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또 “통화동맹의 가장 큰 걸림돌은 미국을 중심으로 한 정치적 문제”라며 “논의 구조를 개방형이 아닌 3국 간의 폐쇄적 형태로 만들어 미국의 간섭을 피해야 한다”고 방법까지 제시했다.


일부 중국 언론에서는 “중국의 막강한 경제력이 한국과 일본을 협상의 테이블로 불러들일 수 있는 원동력”이라며 “동아시아 통화동맹이야말로 중국에 대한 서방의 환율 압박을 분산시키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전망하기도 했다. 이런 주장은 위안화의 기축통화 전략보다 동아시아 통화동맹이 우선 선행돼야 한다는 의미로 해석돼 논란이 예상된다.

그러나 ‘동아시아 통화동맹’이란 불씨를 다시 지핀 옌쉐퉁 소장의 주장도 다시 수면 아래로 잠복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역시 이론적으로만 가능한 화폐동맹 논의, 위안화의 기축통화 우선론, 6월 G20회의를 앞두고 발표한 의도 등 부정적인 여론에 부딪힌 것이다. 실제로 7월 이후 중국 언론에서 ‘동아시아 통화동맹’이란 기사는 찾아보기 힘들다.

3국 동상이몽… 현 단계선 실현 불가

통화동맹을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전문가들의 이유는 다양하다. 미국의 반대를 염두에 둔 정치적 어려움, 3국이 상대국들을 쿨(Cool)하게 바라보지 못하는 역사적 배경, 탈아입구(脫亞入毆)론에서 아직 벗어나지 못한 일본, 위안화의 기축통화가 최종 목표인 중국 등이다.

올 6월 중국에서 오랜만에 ‘동아시아 통화동맹’이란 이슈가 터졌지만 부정적인 견해도 역시 중국 언론을 통해 나왔다. 장위옌(張宇燕) 중국 사회과학원 세계경제정치연구소 소장은 “중국은 현재 아시아 통화협력 추진과 위안화의 기축통화 만들기란 두 가지 문제에 직면해 있다. A3 통화동맹은 정치적으로 걸림돌이 많고, 경제적 실익을 따질 때 일본과 협력이 순탄치 않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장위옌 소장은 위안화의 기축통화 만들기 전략이 우선순위란 입장이다.

자오허핑(曹和平) 베이징대 교수는 “북미자유무역지대(NAFTA)처럼 차프타(CAFTA, 중국·아세안 자유무역협정) 체결국 간의 통화동맹이 더 현실적인 방안”이라고 제시했다. 탄아링(譚雅玲) 중국 외화투자연구원장도 마찬가지 의견을 가지고 있다. 그는 “A3의 통화동맹을 논하는 것보다 중국-홍콩-싱가포르의 노선을 생각하는 게 더 빠를 것”이라고 주장했다.

뿐만 아니다. 판정옌(潘正彦) 상하이 사회과학원 금융연구센터 부주임은 “한·중·일 사이의 정치적 견해 일치는 유럽의 수십 개 국가 간 합의를 보는 것보다 훨씬 어렵다”며 고개를 아예 돌려버렸다.

이렇듯 칭화대 국제문제연구소가 내놓은 동아시아 통화동맹 논의는 한국과 일본으로 확산되지 못하고 자국 내 회의적인 여론에 밀려 스스로 덮어버린 형국이 돼버렸다.

동아시아 통화동맹은 경제적 주권을 일부 포기해야 하는 정치적 의지가 중요하기 때문에 현 단계에선 실현되기 어렵다. 한·중·일 3국의 경제 규모나 질적인 발전 단계가 상이하며, 각국이 통화동맹을 바라보는 관점도 동상이몽이다.

일본은 이미 1970년대부터 G7 회원국에 가입된 선진국이며, 엔화의 경쟁력도 상당해 기축통화로서 3위를 기록하고 있다. 굳이 A3 통화동맹에 대해 서두를 필요가 없는 위치다.

중국도 마찬가지다. 공룡처럼 커 버린 경제 규모나 외화·채권을 블랙홀처럼 빨아들이는 모습은 경제대국이지만 내부 금융시스템은 개방적이지 않다. 게다가 중국은 위안화의 기축통화 달성으로 달러와 맞장 모드로 가는 것이 최종 목표다. 통화 스왑 강화, 위안화 대외무역 결제, 한국·일본 국채 매입 등이 기축통화로 가는 전략의 일환이다. 동아시아 통화동맹론이 확 당기지 않는 이유다.

韓 캐스팅 보트역… “중재 땐 풀릴 수도”

샹송줘(向松祚) 인민대학 국제통화연구소 부소장도 “중국이 국제통화시스템 개혁에 참여할 수 있는 유일하고 명확한 방법은 위안화의 기축통화”라고 결정지은 점도 이런 이유다.

이쯤 되면 가와이 마사히로(河合正弘) 소장이 “한국에서 먼저 적절한 아이디어를 제시하면 쉽게 풀릴 수도 있을 것”이란 말이 현 상황을 읽을 수 있는 적절한 표현 같다. 두 나라는 급할 것이 없으니 한국이 중간적 입장에서 조절하면서 논의 구조를 확대 했으면 하는 바람인 셈이다.

사실 한국 입장도 급할 것은 없다. 두 나라에 대한 내수시장 확대, 달러에 의한 외환위기 위험의 감소 등 긍정적인 측면이 있으니 실익이 되는 구도를 짜면서 장기전에 대비하면 된다.

오히려 중국과 일본의 중간에서 캐스팅 보트 역할을 한다면 세계 경제의 주도권역으로 진입하는 기회가 될 수 있다. 매번 강조하지만 우리의 절묘한 경제 지정학적 위치는 어떤 경우가 닥치더라도 활용의 기회가 있다는 자체가 큰 행운일 수 있다.

강준완 편집위원 napoli2003@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