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경제 위기설 전면해부 / 유종일 교수-리처드 전 이원분석

원·달러 환율이 요동을 치면서 다시 ‘위기설’이 비등하다. 지난해 ‘9월 위기설’로 첫 실체를 드러낸 ‘한국경제 좌초론’은 주기적으로 수면 위로 떠오르며 외환시장을 출렁이게 하고, 경제주체들의 불안감 또한 증폭시키고 있다.

지난 2007년 제2의 외환위기를 경고한 바 있는 유종일 KDI정책대학원 교수, 미국계 헤지펀드에 근무하는 리처드 전(가명) 매니저를 만나 위기설의 실체를 이원분석했다. <편집자 주>

유종일 KDI 교수
"최악의 시나리오를 항상 염두에 두고, 한미 통화 스와프(SWAP) 규모 확대 등으로 금융 시장의 불확실성을 해소해야 한다".


리처드 전 헤지펀드 매니저
"한국 정부 시장개입의 약발이 떨어지고 있다. 하지만 원·달러 환율은 장기적으로 1200~1250원대에서 안정될 것으로 본다".

“제가 뭐 대단한 사람이라고 찾아오셨어요. 당시 단기외채 규모를비롯한 경제지표만 분석해 봐도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는 점을 알 수 있었어요” 유종일 KDI 정책대학원 교수는 동네 아저씨처럼 푸근한 인상이다. 구수한 말투가 거리감을 일순간에 지워버린다.

서울대를 나와 하버드대에서 경제학을 수학한 그는 예리한 현실 진단으로 명망이 높다. 지난 2007년 <이코노믹 리뷰>와 인터뷰에서 한국 경제의 ‘제2 외환위기 가능성’을 예고해 화제를 모았다. 사실 당시만 해도 외환위기 경고는 백면서생의 ‘뜬금없는 발언’ 정도로 여기는 분위기였다.

원화 강세는 우려를 잠재웠다. 한국 기업들은 해외 인수합병(M&A) 시장에서 대어 낚기에 한창이었고, 부유층들도 홍콩이나 일본 등을 돌며 해외쇼핑에 열중하고 있었다.

같은해 미 ‘뉴센추리 캐피털’의 파산보호신청은 돌이켜보면 버블 경제의 종언을 알리는 나비의 날갯짓이었다. 하지만 ‘비이성적 과열’을 눈치챈 이들은 많지 않았다.

최근 원·달러 환율 급등, 끊임없는 위기설의 확산은 유 교수의 경고가 기우(杞憂)가 아님을 방증한다. 지난 5일 오전, 여의도에 위치한 하나대투경영연구소. 이 연구소 자문위원으로 활동 중인 그는 유리벽으로 내부가 훤히 보이는 사무실에서 작업에 열중하고 있었다.

그는 당초 약속한 인터뷰 시간 30분을 훌쩍 넘기며 ‘답답한 속내’를 속사포처럼 쏟아냈다. MB정부가 지난해 ‘촛불 사태’를 겪은 이후 오기 정치로 일관하고 있어 걱정이라고 했다.

‘실용정부’라는 호칭이 무색할 정도로 이념 지향적인 점도 또 다른 문제다.
원·달러 환율은 지난 4일 1600원선을 위협했다. “이 정도면 가히 외환위기 수준”이라는 게 유 교수의 진단이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 도쿄 지국발 기사 한 줄이 위기감에 기름을 부었다. 한국 정부가 2000억달러 이상 외환보유고를 운용중이나, 단기외채 비중이 높아 외형의 건전성에도 불구하고 위기가 재연될 수 있다는 논리가 핵심이다.

유종일 교수는 신뢰의 위기를 말한다. “작년 9월 위기설 당시 외신들이 이 문제를 집중 거론했을 때 정부는 외신 전문 담당관을 영입하겠다고 했어요. 문제가 소통 부재에 있다고 본 것이죠. 하지만 아직까지 아무런 소식이 없지 않습니까.”

정작 정부는 미네르바를 구속하고 인터넷 여론에 재갈을 물리는 쪽으로 방향을 선회했으며, 한미 통화스와프 계약을 체결한 고위관료의 영웅담을 퍼뜨리기에 급급했다.

유 교수는 미 금융기관의 부실자산 규모가 예상보다 더 커질 수 있다는 버냉키의 발언을 복기해볼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버냉키 의장의 발언으로 미 다우지수 7000선이 붕괴되지 않았습니까. 한국 관료들은 그가 왜 이런 발언을 했는지 곰곰이 생각해 봐야 합니다. 꽁꽁 감추기보다 실상을 공개하는 것이 장기적으로 시장의 신뢰를 높일 수 있습니다.”

유 교수는 외신 기사가 단기 부채의 ‘롤오버(Rollover, 만기연장)’가 불가능하다는 극단적 논리에 따른 것이라는 금융 당국의 주장에 의문을 표시했다.

금융 시장의 불안확산으로 ‘제 코가 석자’인 해외 채권 은행들이 만기 연장을 해줄 것이라고 장담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는 반론이다.

미국 월가를 초토화시킨 서브프라임 금융위기는 동유럽 국가들을 뒤흔들며 최근 런던, 파리, 마드리드, 리스본 등 서유럽으로 위기를 실어나르고 있다. 미 상업은행의 부실로 ‘2차 쇼크’가 본격화되고 있다.

상환 기간이 1년이 채 안 되는 단기외채를 들여와 해외에서 장기로 운용해 수급상에 문제가 생기는 이른바 ‘미스매칭(Mismatching)’도 또 다른 우려대상이다. 유 교수는 한미 통화스와프 규모를 확대하고 금융시장의 불확실성을 해소해야 위기설을 진화할 수 있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정책 당국은 늘 최악의 시나리오를 염두에 두어야 한다는 조언이다. 원화 환율은 한국 경제의 실력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으며, 현 정부의 정책실기가 금융 시장 불안을 부채질하고 있다며 비판의 칼날을 세웠다.

지난 1997년 “한국 경제에 비상벨이 울리고 있다”는 보고서로 한국 시장을 뒤흔들어 놓는 노무라 증권은 한국 경제가 외환위기 때보다 더 어렵다고 진단했다.

리처드 전, 원화 매입 ‘OK’
리처드 전(가명) 헤지펀드 매니저는 ‘동병상련(同病相憐)’의 정을 표시했다. 한인 교포 중 실업자 신세로 전락한 이들이 적지 않다.

과도한 레버리지에 의존하던 헤지펀드들은 금융위기의 쓰나미에 휩쓸려 떠내려갔다. 아이비리그 대학을 나와 미국 주류 사회 편입을 꿈꾸던 한국인 운용자들도 ‘해일’을 비껴가지는 못했다.

리처드 전이 근무하는 헤지펀드는 하지만 보수적인 투자로 손실 폭을 줄이며 선전을 했다. 지난해 서브프라임 금융위기에서 생존한 헤지펀드들은 대부분 ‘변칙’보다 ‘정공법’을 선호하는 실력파들이다.

앞으로 “피터 린치식 투자전략이 각광을 받을 것”이라는 그는 헤지펀드의 움직임을 손금처럼 꿰고 있었다.

이 헤지펀드도 투자 포트폴리오에서 현금을 비롯한 안전자산 비중을 50%대로 대폭 늘리고, 20%는 국채, 그리고 10%는 금, 나머지는 스위스 통화인 프랑을 운용하고 있다고 그는 귀띔한다.

그가 눈독을 들이는 한국 내 투자대상은 없을까. “원화가 다른 나라 통화에 비해 지나치게 저평가된 감이 있다며 미국·유럽의 헤지펀드들이 원화에 상당한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리처드 전은 원화 투자를 망설이고 있다고 고백한다. 최근 정부의 시장개입에도 환율이 불과 20여원 정도 하락한 상황이 발목을 잡았다.

지난해 정부 개입으로 원·달러 환율이 하루에 200원가량이 떨어진 것을 감안하면 상전벽해식 변화인 셈이다. “작년과 달리 정부의 시장개입이 잘 먹히지 않고 있다”며 그 배경을 분석중이라고 덧붙였다.

한국 정부가 달러를 써가며 외환 시장에 개입하고도 환율안정 효과를 거두지 못하고 시장의 불안감만 오히려 키우고 있다는 아쉬움으로 읽혔다. MB경제팀의 정책 실기로 실력에 비해 원화가 저평가 받고 있다는 유종일 교수의 진단과 일치하는 대목이다.

하지만 그는 “장기적으로 원화를 보유하는 쪽으로 갈 것”이라고 말해, 주기적으로 터져나오는 시중의 위기설에 흔들리지 않고 있음을 내비쳤다. 리처드 전은 작년 말 이후 위기설의 진앙지 역할을 해온 한국의 은행산업에 대해서도 비교적 우호적이었다.

서브프라임 위기로 풍비박산이 난 미국·유럽은행에 비해 상대적으로 형편이 낫다는 뉘앙스로 읽혔다.

그는 또 오바마 행정부 집권과 북한의 대포동 미사일 발사 위협 등 한반도를 둘러싼 대외 환경이 변화의 급물살을 타고 있지만, 원화 매입 결정을 철회할 의사는 없다고 강조했다.

클린턴 행정부 3기로도 불리는 오바마 정부가 지금은 북한과 치열한 ‘수 싸움’을 하고 있지만 장기적으로 김정일 정권과 대결 구도를 피할 것이라는 분석에 따른 것으로 풀이된다. 그가 “1200~1250원대에서 원·달러 환율이 ‘롱텀’으로 안정된다”고 보는 것도 이러한 맥락에서다.

〈파이낸셜타임스〉, 〈이코노미스트〉 등 영국 언론들의 위기설 타전에 대해 “소속사(헤지펀드)에서 분석한 자료만을 신뢰한다”며 투자 결정에 별다른 변수가 되지 않는다고 단언했다.

다만 내년 중 미국 ‘프라이빗 이쿼티(사모펀드, Private Equity Fund)’의 위기를 점치며 지난해 금융위기로 촉발된 실물경제의 침체가 내년 중 통화(달러)위기로 치달을 소지가 있다고 경고했다.

두 사람은 각론에 약간 차이가 있었지만, 총론은 비슷했다.
유종일 교수는 경제팀이 미국발 금융위기가 통제 불가능한 상황으로 치닫는최악의 시나리오를 배제해서는 안 된다고 조언했다.

단기부채 만기 연장이 어려워져 ‘외환 부족 사태’가 터지는 ‘시나리오’ 또한 염두에 두어야 한다는 것.

반면 리처드 전은 장기적으로 원화를 사들이겠다고 말해 ‘한국 경제 위기설’에 동의하지 않았다. 두 사람 모두 현 경제팀의 금융 시장 정책에 대해서는 헛발질을 거듭하고 있다며 비판적인 입장을 보여주었다.

박영환 기자 blade@ermedia.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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