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상물림들을 일깨우는 ‘걷기’ 철학서

<걷기, 두 발로 사유하는 철학>

프레데리크 그로 지음. 이재형 옮김, 책세상 펴냄

 

철학교수인 저자는 ‘걷기’에 대한 철학적 사색을 보여준다. 그러고는 걷기가 몸과 마음에 어떤 작용을 하는지, 삶에 얼마나 의미 있는 역할을 하는지, 제대로 걸으려면 어떤 마음가짐을 가져야 하는지 살핀다. 이어 걷기를 통해 통찰력과 감수성, 영감을 얻고, 독창적 사상과 작품 세계를 형성한 철학자와 작가들의 일화를 들려준다.

걷기의 형태는 다양하다. 장소이동을 위한 일상적 걷기가 있다. 대자연이나 도시 속을 거닐며 주변 풍경을 오감으로 받아들이는 산책과 소요(逍遙)가 있고, 도심에서 종종 벌어지는 정치적 행위도 있다. 순례자의 걷기는 고행이다.

어떠한 형태이든 걷기는 철학적 행위이자 정신적 경험일 수 있다. 단지 한쪽 발을 다른 쪽 발 앞에 내딛는 기계적 행위에 그치지 않고, 자연과 하나가 되는 데서 오는 일치감과 충만함을 준다. 온몸의 감각을 두루 자극하고 머릿속을 신선하게 일깨워준다. 희열, 고통, 고독, 우울 등 갖가지 감정도 불러일으킨다.

실제로 니체는 걷기를 통해 사유하며 사상 체계를 구축했다. 알프스의 산과 호숫가 등지를 걸으며 사상을 발전시켜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즐거운 학문>등 대표작들을 집필했다. 건강악화로 대자연 속을 걷기가 힘들게 되자 이탈리아 토리노로 거처를 옮겨 강변을 걸으며 집필을 이어갔다. 극도로 쇠약해진 말년에도 늦은 오후 산책을 하며 몸과 마음의 고통을 달래곤 했다.

루소도 걷기를 중시했다. 그는 저서 <고백>에서 “나만의 도보 여행에서만큼 많이 생각하고 많이 존재하고 많이 체험한 적은 결코 없었다”고 술회할 정도였다.

그는 평생 세 번의 위대한 걷기를 체험했다. 청춘기에는 유럽 전역을 떠돌며 견문을 쌓았다. 절정기에는 걷기를 통해 문명과 허위에서 벗어난 원초적 인간을 다룬 <인간 불평등 기원론>, <에밀> 등 대작의 영감을 얻었다. 파격적인 사상 탓에 박해받고 쫓겨 다니던 루소는 인생의 황혼기에 숲 속을 산책하고 식물을 채집하며 위안을 얻었다. 당시의 심정은 유고작 <고독한 산책자의 몽상>에 드러나 있다.

간디는 저항과 평화를 상징하는 정치적 걷기를 실행했다. 그는 대영제국이 소금 수확권을 독점하려고 부과한 ‘소금세’에 맞서 ‘소금행진’을 조직했다. 당시의 평화적인 불복종운동은 전 세계의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힌두교 광신도에게 암살당하기 전까지 그는 독립 후에도 여전히 종교 갈등으로 분열된 인도의 곳곳을 걸어 다니며 사랑과 평화의 메시지를 전했다.‘바람구두를 신은 인간’이라 불린 시인 랭보는 마르세유와 아프리카 사막 등지를 쉴 새 없이 오가며 창작열을 불태웠다. 시인 제라르 드 네르발은 걷다가 <불의 딸들>, <산책과 추억>같은 작품의 영감을 얻었다. 헨리 데이비드 소로는 매일 산책하며 자연 문학가이자 실천적 지식인으로 자신을 키웠다. 거슬러 올라가면, 디오게네스 등 고대 그리스의 견유학파 철학자들은 유복함에 안주하지 않고 ‘개처럼’ 바깥을 떠돌며 ‘날것’의 사유를 펼쳤다. 

저자는 “걸으면서 구상하는 사람은 얽매인 데가 없어 자유롭다. 그의 사유는 다른 책의 노예가 되지도 않고 다른 사람들의 사유에 의해 무거워지지도 않는다”고 말한다. 도서관에 틀어박힌 채 연구하는 ‘책상물림’ 학자들을 겨냥한 말이다.

하지만 학자가 아니더라도 걸을 필요가 있다. 우리는 머릿속이 온갖 상념으로 가득 차 있고,너무 오래 TV와 컴퓨터 앞에 앉아 있다. <이코노믹리뷰 편집인. 숙명여대 글로벌서비스학부 객원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