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원은 '삶의 질' 기업은 '인재 확보'

“서울이 무조건 좋아? 이유는 있다”

한국은 그야말로 서울공화국이다. 인구 4분의 1이 서울에 거주하고 인천과 경기를 포함하면 절반이 넘는다. 수도권에 기업이나 연구시설도 많다 보니 당연히 연구인력들은 수도권으로 향한다. 비싼 생활비, 거주문제 등 단점이 많지만 문화체육시설, 교통, 지인이나 친구 등 인적 네트워크를 포기할 수 없어서다. 서울이 마냥 좋지만은 않다. 자연환경이 좋고 여유로운 생활을 꿈꾸기도 하지만 선택의 폭이 넓지 않다. 연구인력들의 자유로운 의견을 통해 수도권 중심 생활의 고충과 이유를 들어본다.

 

<이코노믹리뷰>가 석박사 학위를 보유하고 기업 혹은 공공기관 연구인력으로 근무하고 있거나, 취업을 준비 중인 30여 명을 무작위로 조사한 결과 근무지로 서울과 수도권을 단연 선호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이 서울과 수도권을 선호하는 이유는 미혼일 경우 문화예술을 즐길 수 있고 기혼자는 자녀의 교육문제 등 주거환경이 주된 요인이라고 밝혔다. 특히 현재 서울 및 수도권에서 근무하는 연구인력들은 직장이 지방으로 이전할 경우, 이직하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제주와 같이 자연환경이 좋고 근무조건이 맞는다면 고려해볼 수 있다는 의견도 있었으나 이마저도 장기근무보다는 단기 프로젝트 위주로 ‘한 번 살아보고 싶다’는 정도의 생각을 피력했을 뿐이다.

연구인력들이 서울과 수도권을 선호하는 이유를 면밀히 들여다보면, 이 지역 출신이거나 성인이 된 대학시절 이후 계속 거주해왔기 때문에 지인과 친구 등 인적 네트워크가 형성돼 있다는 이유가 가장 많았다.이와 함께 서울과 수도권에 기업 등 근무지가 많아서 취업과 이직의 기회가 많다고 판단한 사람이 다수였다.

이와 함께 기업이 아닌 연구소 등에서 근무하는 연구인력들은 비정규직이나 계약직으로 근무하면서 신분상의 불안함을 크게 느껴, 근무지나 거주지를 선택하는 데 어려움을 호소했다. 석사학위 소지자들인 이들은 박사학위 취득 후 안정적인 근무지를 찾아 거주하면서 가정을 꾸리고 생활하기를 희망했다. 물론 이들도 지방 혹은 고향에서 근무할 수 있다는 의사가 없지 않으나 취업 선택권이 많지 않아 서울 등 인근 수도권에서 자취하며 생활하고 있다. 기업 등에서 정규직으로 근무하는 연구인력들도 업종의 특성상 장기적으로 근무할 수 있는 직업이나 회사를 찾고 있었다.

40대 IT 중견기업 책임연구원으로 활동하는 A씨는 “연구직은 다른 직군보다 근무연한이 짧고, 빠르게 변하는 기술 상황 때문에 50대 이후의 삶이 불안하다”면서 “한국보다 근무조건이 좋은 다른 나라로의 이민을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두 자녀가 아직 어려 당장은 힘들겠지만 꾸준히 준비해서 상대적으로 여유로운 삶을 살 수 있는 나라로 가고 싶다”고 덧붙였다.

서울이나 수도권에서의 생활이 전부 만족스럽지만은 않다. 20대 B씨는 “지방에서 올라와 서울에서 대학을 다니고 석사학위까지 받았는데, 월세로 살다 보니 생활이 불안하고 생활비도 많이 들어 고향으로 가고 싶지만 일자리 때문에 울며 겨자 먹기로 그냥 살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근무지와 거주지는 어차피 같이 가야 하는 것 아니냐”며 “박봉에 월세와 생활비를 빼면 노후 대책이나 결혼 준비는 그리 녹록지 않다”고 하소연했다. 안정적인 근무지만 있으면 지방으로 내려가겠다는 뜻이다.

근무지를 지방으로 선택할 때 조건은 연봉이나 복지조건 등이 추가되어야 한다는 의견도 많았다. 서울에서 근무 중인 C씨는 “고향이 아닌 지방생활은 친구도 없고 문화체육시설 등도 많지 않은 만큼 서울보다 더 많은 인센티브를 제공해야 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말했다. 그는 “기업도 여러 가지 경비 절감 차원에서 지방에 근무지를 만드는 것 아니냐”며 “그만큼 직원들 복지로 돌려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최근 제주도에 R&D센터를 설립하고 이전한 한 기업은 한바탕 홍역을 치렀다. 연구소가 제주로 이전한다는 발표가 난 후 수십 명이 단체로 이직이나 퇴직을 하겠다는 의사를 밝혔기 때문이다. 이 기업 인사 책임자는 “회사에서 수차례 설문 및 의견수렴을 거쳐 직원들에게 설명했지만 정작 이전 날짜가 다가오자 그만두겠다는 직원들이 늘어나서 이전 시기까지 연기하며 의견을 추가 수렴했다”고 귀띔했다.

기업 관계자는 “이전에 가장 어려웠던 것은 기혼자들이었다”며 “배후자가 지방 생활을 거부하거나 자녀 교육환경 등이 중요 이슈로 다가왔다”고 설명했다. 그는 “회사 차원에서 거주지 지원, 서울 이동 교통비 지원, 자녀 교육비 지원, 문화예술 체험 지원 등 서울 근무보다 파격적이고 다양한 지원을 추가하고 이에 동의하는 추가 인력을 채용해 숫자를 맞출 수 있었다”고 밝혔다.

물론 제주도처럼 최근 젊은 층이 선호하는 지역에서의 근무를 희망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 이들은 “연구직이라는 것이 야근이나 주말 근무도 많고 이직을 해도 경기가 어려워 현재와 같은 수준의 급여를 받기 쉽지 않은 상황에서 회사 이전을 핑계로 환경이 좋고 여유로운 생활을 할 수 있다면 좋은 경험이 될 것 같다”고 밝혔다. 회사 근처에서 가족과 생활하면서 주말에는 낚시나 등산 등 레저활동도 누릴 수 있다고 기대해서다.

연구인력들의 서울 및 수도권 선호 추세를 탓할 수만도 없다. 이 지역에 기업이나 연구시설 숫자뿐만 이니라 지방자치단체 등 지역의 연구개발비도 편중되어 있기 때문이다. 최근 미래창조과학부 KISTER 통계 브리프를 보면 우리나라는 서울과 인천, 경기 등 3개 지역을 포함하는 수도권에 전체 연구개발비 67.1%가 집중되어 있는 것으로 나타난다. 그에 따라 연구개발을 수행하는 연구원도 수도권 집중현상을 보이고 있는 것. 서울과 인천, 경기 지역에 근무하는 연구원은 전체 연구원의 64.3%에 이르고 대전(7.0%)을 포함할 경우 71.4%에 달한다.

조사를 담당한 KISTER 안병민 연구위원은 “정부 차원에서 지역적 특성을 감안한 지역 특성화 과학기술분야에 대한 전략적인 육성과 더불어 지역 주도의 R&D센터 활동을 강화하기 위한 노력이 지속적으로 요구된다”라고 지적했다.

연구인력들이 여러 가지 이유로 서울과 수도권을 선호하다 보니 기업도 같은 고민을 하고 있다. 우수한 연구인력을 확보하는 것이 중요한데 이들이 지방보다는 서울을 근무조건으로 제시하기 때문이다. 한 대기업 인사 담당자는 “기업의 지속성은 우수한 기술에서 나오고 기술은 인재에서 나오니 인재확보를 위해 서울에 R&D센터를 건립하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라며 “부지확보 비용 등을 떠나 동종기업이나 유관기관 등 모든 인프라가 서울에 몰려 있어 가장 경쟁력 있는 근무지가 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