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술의 진화

의술이 빠른 속도로 발달하면서 인체의 건강을 나이만으로 단정 지을 수 없게 되었다. 지금 100세인들은 1910년대 이전에 출생한 사람들이다. 그들이 출생한 시절엔 감히 기대수명이 100세란 표현은 할 수 없었다. 현재 60~70대가 90대가 되는 2030년 이후가 되면 생명과학기술이 지금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발달해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들이 출생한 1940~50년대에 기대수명이 얼마였는지는 모르나 많은 사람의 수명이 어쩌면 예상하지 못했던 수준까지 연장될 수 있다. 생명기술의 변화는 정보통신기술의 발달속도보다 훨씬 더 빠르게 진행 중이다. 생명의 묘약은 훨씬 더 오랫동안 인간에게 일할 기회를 부여해줄 것만 같다.

주변을 돌아보면 90세 이상이 되어서도 매우 건강한 초고령인들이 눈에 많이 띈다. 예전 같으면 바깥 거동하시기 힘든 연세인데도 혼자서 경노당을 출입하시는 걸 보면 예사롭게 보이지 않는다. 해가 갈수록 초고령인들의 건강이 눈에 띄게 좋아지고 있다. 우리나라는 아니지만 최근에 덴마크 학자들이 발표한 한 연구내용에 의하면 후대로 갈수록 체력과 인지능력이 향상된다고 한다. 이 연구에선 1905년생 2262명이 93세가 된 시점과 1915년생 1584명이 95세가 된 시점을 기준으로 간단한 정신분석과 신체기능시험을 실시해서 90세 이후의 체력과 인지력을 비교했다. 그 결과 10년 후에 태어난 쪽이 체력이나 인지능력이 훨씬 좋았다. 흥미로운 것은 1915년생들의 경우는 2살이나 더 먹은 시점에 조사했지만 1905년생보다 인지능력이나 체력이 더 좋았다는 점이다. 나중에 태어난 모집단일수록 건강상태가 더 향상되었다는 의미다.

통계청이 사용하는 기대수명이라 함은 신생아가 향후 몇 년까지 살 것인지를 추정하는 수치다. 우리나라 여성의 경우 1970년 출생자부터 매 10년 구간으로 기대수명 변화 추세를 보면 65.5, 70.0, 75.5, 79.6, 그리고 2010년 출생자는 84.0세로 10년마다 5년 정도씩 증가했다. 이는 질병과 사고에 의한 사망자도 포함해서 예측한 평균수명을 말한 것이니 사고나 심각한 질병에 걸리지 않으면 100세 이상 사는 사람이 점차 많아진다는 의미다.

100세인은 계속 늘어만 간다유엔 통계에 의하면 2010년 기준으로 전 세계 100세 이상 인구는 31만6600명이나 된다. 가장 많은 나라는 미국으로 5만3364명, 두 번째로 많은 나라는 일본으로 5만1376명이다. 중국엔 4만8921명(2011년), 우리나라엔 1836명이 있다. 이들은 다행히 사는 동안 심각한 질병을 앓지 않았거나 불의의 사고를 겪지 않았음을 대변한다. 세월이 갈수록 사람들의 기대수명이 늘어가는 이유는 질병예방 기술이 발달하고 좀 더 안전한 사회로 변해가면서 사람들이 점차 생체수명을 다할 때까지 살 수 있는 확률이 높아진다는 의미다.

사람이 장수하는 이유는 유전적 형질에 원인이 있다는 설도 있지만 지금까지 장수인들의 유전자 연구에 따르면 그 비중은 25% 이하인 것으로 밝혀졌다. 오히려 사람들이 장수하는 대부분 원인은 식생활, 삶의 방식, 교육수준, 개인 성격 등에 기인한다고 학자들은 설명한다. 예를 들면 결혼하지 않은 여성들이 스트레스를 덜 받아 장수하고, 물고기나 채소로 식생활을 즐기면 불활성산소 발생이 적어 장수할 확률이 높다고 한다. 즐겁게 이웃과 서로 어울리는 생활환경, 높은 신체활동, 위생관념, 절식 등도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한다. 생체수명은 길지만 생활태도가 좋지 않거나 식습관이 나쁘면 주어진 수명을 다하지 못한다는 설명이 가능하다. 그러나 이런 설명들은 정성적이고 관념적이다. 과학적으로 인간의 생체수명이 얼마나 되는지 또 어떤 이유로 수명을 다하게 되는지 근본적인 원리를 밝히는 연구들이 계속될 수밖에 없다.

인간의 생체수명은 얼마나 되나?공식기록에 의하면 지금까지 가장 장수한 사람은 프랑스 여성인 잔 칼망(Jeanne Calment)이다. 1875년 2월에 태어나서 1997년 8월에 사망할 때까지 122년 164일을 살았다. 그다음은 119년 97일을 산 미국 여성 사라 크노스(Sarah Knauss)다. 구태여 2위까지 들먹이는 이유는 지금까지는 120살까지 살기도 힘들었다는 의미다.

인간의 생체수명이 도대체 얼마나 되는지 검토하는 기준은 가장 장수한 사람이 얼마나 생존했었는지 비교하는 일부터 시작하면 좋을 듯하다. 생명력의 이론적인 한계는 몰라도 실존적 근거가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사람이 어떤 삶을 살았는지도 중요하다. 상식적으로 건강한 삶을 유지하기 위해서 어떤 노력을 기울였는지 알아보기 위함이다.

잔 칼망의 가족들은 병이나 사고를 당하지 않았다면 대략 80~90세 이상 살았으니 보편적인 장수 집안이라고 할 수는 있다. 그러나 100세인은 없으니 유전적으로 장수가 보장된 경우는 아니다. 그녀는 집이 부유한 편이라 평생 동안 힘든 일은 하지 않고 테니스, 수영, 롤러스케이트, 피아노, 오페라 등을 즐겼다고 한다. 85세에 펜싱을 했고 100세까지 자전거를 탔다고 하니 건강관리는 잘했다고 본다. 그런데 특이한 점은 그녀는 애연가로 21살부터 117살까지 담배를 피웠다. 매일 두 개 피 정도 피웠다고 전하지만 술과 담배를 즐겨했던 것으로 짐작되는 사진과 영상이 많이 검색된다. 담배뿐만 아니고 술도 알코올 농도가 높은 포트와인을 즐겨 마셨다고 한다. 또 매주 1 kg 정도의 초콜릿을 먹었을 만큼 단것도 즐겼다. 하지만 사망할 때까지 정신 상태는 맑았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런 기록만 봐서는 그녀가 인간에게 부여된 생체수명을 최대한 잘 유지했다고 보기는 힘들다. 그녀가 독한 술과 담배를 삼갔더라면 더 오래 살 수 있었다고 봄이 타당하다.

그렇다면 사람이 수명을 계속 유지할 수 있게 하는 생명 물질이나 조건이 무엇인지 궁금하다. 흔히 사람의 유전자 돌연변이나 오류는 치명적인 질병과 연관된다고 알려져왔다. 100세인들은 암, 심장병, 당뇨병, 알츠하이머병, 파킨스씨병, 장기 파손, 면역계통 질병, 뇌세포 퇴화 등은 물론이고 병이나 뼈 부상, 치매, 거동불편, 인지능력 손상 등 노화와 관련된 질병들에 강한 저항력이 있다고 보고되어왔다. 그래서 건강한 사람이나 초고령자들의 유전자들은 돌연변이가 거의 없을 것이라고 짐작되어왔다.

생명의 종말은 줄기세포 고갈 때문인가?그런데 최근에 눈길을 끄는 한 연구결과가 발표됐다. 지난 2005년에 115세로 사망한 네덜란드의 헨드리케 반 안델 시퍼(Hendrikje Van Andel-Schipper)는 자신의 사체를 연구용으로 기증했다. 그 부인의 혈액을 조사한 연구결과가 최근 <게놈 리서치>지에 발표됐다. 그 내용은 가히 충격적이다. 첨단 유전자분석을 통해 밝혀진 결과에 의하면 그 부인의 백혈구에서 채취한 혈액세포의 DNA에는 400여 개 이상의 돌연변이가 존재했었다는 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사망 직전까지 매우 건강했었다는 사실은 유전자 돌연변이가 결코 질병의 유일한 징후가 될 수 없음을 확인해준다. 백혈구에서 발견한 이 유전자 돌연변이들은 세포분열 과정에서 발생한 것들로 세포분열을 하지 않는 뇌세포들에선 발견되지 않았다. 이런 돌연변이는 후대로 유전되지 않으므로 체세포돌연변이라고 부른다. 이들이 관찰한 체세포 돌연변이들은 이전에 알려진 질병과 연관된 위치에서 발생한 돌연변이들은 아니다. 그런데 핸느 호스테거(Henne Holstege) 등 연구진은 인간의 수명과 연관된 또 다른 중요한 발견을 했다고 발표했다.

놀라운 점은 그녀가 사망할 시점에 그녀의 혈액세포는 단지 두 개의 조혈 줄기세포에서 공급되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보통은 1300여 개의 줄기세포가 동시에 활동해야 정상이다. 또 흥미로운 점은 백혈구 세포의 텔로미어 길이는 뇌세포들의 그것에 비해 매우 짧았다. 대부분 조혈줄기세포들이 소진되었기 때문에 더는 분열할 줄기세포가 없었다고 짐작되는 대목이다. 물론 줄기세포 고갈이 죽음에 이르게 하는 결정적인 원인이 되는지는 더 연구해봐야만 한다. 그러나 만약 조혈능력이 있는 줄기세포를 외부에서 공급해줄 수만 있다면 인공적으로 생명을 연장할 수도 있다는 힌트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