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상으로 골프채 놓으니 바보가 된 기분”… 체계적 선수관리 멘탈사업 ‘제2인생’


"막상 골프채를 내려놓으니 바보가 된 기분이었어요.” 어디서 많이 본 듯한 드라마 같은 이야기다. 전도유망했던 골프선수가 치명적인 부상으로 골프를 포기할 수밖에 없었고, 그 이후 긴 방황의 시간들이 이어졌다.

자살까지 시도할 정도로 정말 심각했다. 하지만 이제는 아픈 과거를 딛고 일어섰다. ‘멘탈트레이너’로 변신해 새로운 삶을 설계하고 있는 권오연(35) 멘탈골프클리닉 대표를 지난 9일 서울 리츠칼튼 호텔에서 만났다.

수식어가 수도 없이 많았던 권오연이었다. 초등학교 4학년 때 골프를 시작해 중학교 1학년 당시 한국주니어선수권 타이틀을 따냈고 상비군을 거치지 않은 역대 가장 어린 나이에 국가대표로 발탁됐다. 아마추어시절 30승을 수확하는 화려한 이력을 앞세워 1998년에는 드디어 프로세계에도 데뷔했다.

당연히 꿈이 컸다. 국내에서 겨우 3개 대회를 치렀지만 이듬해 박세리와 김미현이 뛰고 있던 미국행을 결정했다. 무엇보다 아버지의 그늘을 빨리 벗어나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아버지 권영관(65)씨는 “골프선수는 죽어도 골프장에서 죽어야 한다”면서 딸 넷 중 둘째인 권오연을 유독 혹독하게 가르쳤다. 어릴 땐 그게 전부인 줄 알고 아버지를 따랐다.

권 대표는 “2등을 해도 두들겨 맞을 정도였다”면서 “아버지가 만든 틀에 날 끌어넣으려 하셨고, 나는 그게 싫었다”고 회상했다.

그리고 “프로로 빨리 전향한 것도 경제적으로 독립해 아버지 곁을 떠나기 위해서였다”면서 “프로가 되자마자 곧바로 미국으로 가기 위해 짐을 쌌다(일본에서 스카우트 제의가 왔지만 아버지가 자주 오실 수 있을 거리라 먼 곳을 선택했다).”고 했다.

권 대표를 기다리고 있던 것은 그러나 ‘아메리칸 드림’이 아니었다. 고등학교 3학년 때 팔을 다친 적이 있지만 시합을 중단하지 않았다.

인대가 늘어나고 건초염이 생긴 것도 직업병이려니 했다. 대회 일정을 소화하느라 아파도 참아야 했고, 아프다고 말해도 꾀병으로만 치부됐다.

미국여자프로골프(LPGA)투어 두 번째 경기 만에 문제가 생겼다. 부상이 악화돼 왼쪽 팔을 쓸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권 대표는 “미국 무대에 대한 욕심도 있었지만 한국에 돌아오기가 더 싫었다. 스폰서와의 문제도 있었다. 스테로이드주사를 맞으며 경기에 나갔다(당시에는 약물 검사가 없었다). 진통제와 주사로 고통을 참았다.”고 말을 이었다.

이미 치료도, 수술도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병원에서는 인대가 너덜너덜해 이을 수조차도 없다고 했다.

이러다가는 한 손으로 살아야 한다고 했고, 더는 골프를 계속 할 수 없는 상태에 이르렀다”는 권 대표. 사형선고나 다름없었다. 조기치료에 나서지 않은 것이 선수생활을 중단할 정도의 화근이 됐다.

어쩔 수 없이 한국으로 다시 돌아와야 했다. 아버지와의 관계는 최악이었다. 그나마 레슨프로로 돈은 벌수 있었지만 선수 생활을 접고 나니 할 줄 아는 게 아무것도 없다는 것도 깨달았다. 권 대표는 “골프채가 없으니 난 바보였다”면서

“나이는 먹어 가는 데 (나는) 심지어 은행 일조차도 볼 줄 몰랐다”며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고통스러운 나날들이었다. 술을 마시고 쇼핑을 반복하는, 사치를 부리는 방탕한 생활에 번 돈을 몽땅 쏟아 부었다.

“새로 산 옷을 들고 들어가 옷장 문을 열어보니 똑같은 옷이 있었어요”라는 권 대표는 “일단 방황에 접어드니 걷잡을 수 없는 생활이 계속 이어졌다”면서 “그런 세월이 몇 년이나 흘렀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물론 고치려고 애도 써봤다. 병원도 다녔고, 교회도 나갔다. 자동차를 몰고 시속 200km의 속도로 질주하면서 마음을 풀어 보기도 하고, 집에서는 화초를 키우고, 바느질과 십자수, 심지어 구슬까지 꿰어봤다.

하지만 조울증 치료는 쉽지 않았다. 그래서 두 번의 자살 시도. “서울 테헤란로 한복판에 누워 모든 걸 포기한 적도 있다”는 권 대표가 결국 눈시울을 붉혔다.

앞으로 매니지먼트사업까지 영역을 확대해 한국 부모들의 바짓바람, 치맛바람을 극복하는 체계적인 선수관리시스템을 선보이겠다

김규덕 선생은 나의 멘토·은인

그러다가 4년 전 지인의 소개로 새로운 인생의 멘토가 된 김규덕(61) 선생을 만났다. 권 대표는 “(골프와는 무관했던) 선생님이 현실과 이상의 괴리감을 인식시켜줬다”면서

“아무도 이해해주지 않았던, 삶에 지쳐 있던 나를 진심으로 이해해준다는 믿음이 생기면서 일어설 수 있는 동력을 얻었다”고 말했다.

“어렸을 때 아버지에게 절대 남 앞에서 울어서는 안 된다고 배워 눈물이 나도 입술을 깨물었던 내가 바로 울음을 터뜨렸고, 이후로도 며칠을 목 놓아 울었다”는 권 대표가 서서히 제자리를 찾아갔다.

술을 마셔 간암 환자처럼 얼굴이 까맣게 탔고, 12kg이나 줄었던 몸무게도 정상으로 회복됐다. 아버지와의 관계도 조금씩 회복됐다.

권 대표는 “갑자기 이런 경험이 골프를 하는 모든 이들에게 보탬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면서 골프멘탈클리닉을 연 까닭을 설명했다.

선수들의 화려함 뒤에는 누구도 이해 못 할 외로움이 있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이다. 권 대표는 “선수들이 어떤 스트레스를 받는지를 생각하니 멘탈클리닉이 더욱 절실하다는 것을 알았다”고 덧붙였다.

권 대표는 “목표는 골프가 인생의 전부인, 실패하면 갈 곳을 잃게 될 후배들을 위해, 실패가 두렵지 않은 골퍼로 양성하기 위해서”라는 사명감을 피력했다.

“어릴 때부터 부모님들의 적지 않은 간섭과 싸워야 하고, 동료들과의 무한경쟁과 선배 프로들의 질시도 받는 선수들을 위해 꼭 필요한 일”이라고도 했다.

“멘탈은 시험지로 진단해서 치료법을 이끌어낼 수 있는 게 아니다”라는 권 대표는 “사람이 모두 다르듯 그 원인과 치료법도 제각기 틀리다”라면서

“선천적인 재능이나 후천적인 노력 그리고 주위 환경까지 모두 조화를 이뤄야 한다”고 강조했다. 요즘은 입스와 슬럼프 등 일반인 골퍼들의 상담도 늘었다.

권 대표는 사업에 대한 중간평가를 묻자 “욕심에는 아직 못 미치지만 수익구조상 성공적”이라며 “앞으로 매니지먼트사업까지 영역을 확대해 (나 스스로도) 지긋지긋했던 한국 부모들의 바짓바람, 치맛바람을 극복하는 체계적인 선수관리시스템을 선보이겠다”는 욕심도 내비쳤다.

권 대표가 아마추어 골퍼들에게 물었다. “골프, 즐겁자고 치는 거 아닙니까?, 그럼 그냥 즐기세요

손은정 아시아경제 기자 ejson@asia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