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뜨고 코 베인다’는 말이 딱 맞다. 중국 여행을 다녀온 사람 대다수가 상점이나 관광지에서 절대 가격을 묻고 덥석 사지 말라고 조언한다. 비싸다는 말과 망설임이 반복되면 가격이 최대 10분의 1 수준까지 떨어진다. 제값을 주면 오히려 바보가 되는 셈이다. 중국인이라고 예외는 아니다. 관광객을 대상으로 한 사기와 범죄가 중국 관광산업 발전에 걸림돌로 지목되고 있다.

상유천당(上有天堂) 하유소항(下有蘇抗), 즉 하늘에는 천당이 있고 땅에는 항저우와 쑤저우가 있다고 말할 정도로 아름답다고 알려진 쑤저우(苏州). 연휴기간이나 휴가철이 되면 늘 중국 전역에서 오는 관광객들로 도시 전체가 북적거린다.

관광객 왕양도 부모님을 모시고 휴일을 맞아 쑤저우를 찾았다. 오랫동안 걷는 것을 힘들어하시는 부모님을 위해 인력거를 타고 쑤저우의 유명한 옛 거리인 산탕지에(山塘街)로 향했다.

인력거는 택시보다 비싼 편이지만 관광도 하고 옛 정취도 느낄 겸 흥정 끝에 3명이 40위안(약 6600원)을 주고 타기로 합의하고 올라탔다.인력거꾼은 산탕지에에 도착했다며 왕 씨 가족을 내려줬는데 유명한 거리라는 말과 달리 관광객은 보이지 않고 입장권을 파는 매표소만 보였다.

인력거꾼은 산탕지에의 유명 관광지에 모두 들어갈 수 있는 입장권을 묶어서 싸게 판다며 강매에 들어갔고 왕 씨가 이를 거부하자 인력거 비용이 1인당 40위안이라며 총 120위안(한화 약 2만원)을 낼 것을 요구했다. 실랑이를 해봤지만 왕 씨는 결국 120위안을 내야만 했다.

왕 씨는 매표소에서 표를 사야만 산탕지에로 갈 수 있느냐고 물었더니 산탕지에는 무료로 들어갈 수 있다는 황당한 답변을 듣고 한숨이 절로 나왔다. 그 매표소는 유료 관광지 입장권을 파는 매표소라는 설명이 돌아왔다. 인력거꾼이 현지 사정에 어두운 관광객들에게 산탕지에에 들어가려면 반드시 입장권을 사야만 한다는 식으로 거짓말을 해서 별도로 돈을 챙겨왔던 것이다.

경제 성장과 함께 중국의 국내 관광 규모도 크게 늘어났다. 중국 국가여유국의 발표에 따르면 2012년 중국 국내 관광 연인원은 29억5700만 명으로 전년 동기에 비해 12.0%나 증가했다. 이렇게 늘어나는 국내 관광객 숫자만큼이나 관광객을 대상으로 한 사기 및 범죄도 비례해 증가하고 있어 정부가 골머리를 앓고 있다.

최근 중국 국영방송인 CCTV는 관광객을 대상으로 벌어지는 각종 사기 사례들을 보도해 눈길을 모았다.

항저우의 링인쓰(灵隐寺)는 신선의 영이 깃들어 있다는 절 이름 그대로 중국 10대 고찰의 하나로 꼽히는 유명한 사찰이다. 유명한 만큼 사기 피해 사례도 적지 않다. 한 예로 우한에서 온 여대생이 아버지의 건강 쾌유를 빌기 위해 링인쓰를 찾았는데, 절 앞에서 만난 무자격 가이드가 기도의 효험을 높이기 위해서라며 등, 향과 같은 관련 물품을 강권했다. 결국 이 여성은 1만위안(한화 165만원)에 가까운 돈을 지불해야만 했다. 이 여성뿐 아니라 링인쓰를 찾는 많은 관광객이 입장료에 향을 피우는 비용이 포함돼 있다는 사실을 모른 채 가이드에게 비싼 가격에 향을 사고 있다는 내용이 방송을 통해 드러난 것이다.

한국 관광객들도 즐겨 찾는 명소인 쓰촨성의 구채구를 방문한 단체 관광객들은 가이드가 소위 건강팔찌라고 불리는 토르말린 팔찌를 소개하면서 토르말린에서 나오는 음이온이 혈액순환을 좋게 하고 아픈 허리도 낫게 해준다면서 적극 권유해 한 개씩 팔찌를 사들었다. 가격이 무려 4800위안(약 80만원)이나 했지만 건강에 좋다는 말에 대부분 노인인 관광객들은 무리해서라도 팔찌를 샀다. 그런데 이 팔찌는 시내 상점에서는 200위안(한화 3만300원)이면 구입할 수 있는 일반 토르말린 팔찌에 불과했다.

방송이 나가자 쓰촨성 정부는 구채구 지역의 상점과 상인들을 대상으로 현황을 점검하고 과도한 가격으로 물건을 판매한 가이드를 대상으로 조사에 나섰다.

중국은 지난 2013년부터 관광객들의 권익을 보호하고 관광산업을 발전시키기 위한 목적으로 여유법(旅游法)을 시행 중이다. 여유법에는 비합리적인 저가 여행상품을 만들고 쇼핑이나 상점 방문 혹은 별도 요금의 옵션 항목을 만들어 수수료를 받을 수 없다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 또 팁 등의 서비스 요금을 요구하거나 추가 요금을 내야 하는 프로그램에 참가하라고 강요하는 것, 쇼핑장소를 지정하거나 여행 일정을 임의로 변경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

그러나 여유법이 가야 할 길은 아직 멀어 보인다. 많은 관광객이 여유법 시행으로 변한 것이 별로 없다고 하소연한다.

구채구를 방문했던 한 관광객은 “관광버스에 오르자 저녁에 방문 예정인 티벳마을은 옵션 상품이라며 추가로 150위안(약 2만4700원)을 요구했다”면서 “2박 3일간의 여행 중 2번의 옵션 상품이 있었고 5번의 상점 방문이 있었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알아두면 좋은 중국의 풍습>

미리 내면 편하고 저렴해요 ‘선불’ 인기

새로 생긴 제과점의 빵이 제법 맛있다는 소문에 사람들이 북적거린다. 이것저것 빵을 고르고 계산을 하려니 500위안(약 8만2000원)의 선불카드를 구매해 계산하면 매번 10%의 할인 혜택을 받을 수 있다고 권유한다.

이보다 앞서 들렀던 옷가게에서는 1000위안(약 16만5000원)짜리 선불 멤버십 카드를 만들면 20% 할인 혜택을 제공해서 실제로는 1250위안의 혜택을 본다고 설득한다.

겨울옷을 맡기러 간 세탁소에서는 300위안부터 시작되는 선불카드로 최고 30%의 할인혜택을 받을 수 있다고 끈질기게 판촉을 한다.

종종 들르는 발마사지집에서는 3000위안의 VIP카드를 권유하며 무려 50%의 할인을 받을 수 있어서 2배의 효과라고 말한다.

신용카드를 많이 사용하는 한국이 후불 문화라면 중국은 현금, 그보다 앞서 미리 돈을 내는 선불 문화라 볼 수 있다. 선불 프로모션을 하지 않는 상점을 찾기가 어려울 정도로 여기저기서 선불로 일정 금액을 내면 할인혜택을 준다고 홍보한다.

심지어 사진관에서도 선불카드를 구매하면 사진을 저렴하게 현상할 수 있다고 한다.

휴대폰 이용도 미리 대리점에서 금액을 충전해야 이용이 가능하다. 한 번에 일정 금액 이상을 충전하면 추가로 보너스 금액도 넣어준다. 일종의 할인인 셈이다.

지역에 따라서 가정에서 사용하는 전기료도 미리 선불로 내야 한다. 제때 선납을 하지 않으면 겨울철 한밤중에 전기가 끊겨 난방도 없이 오들오들 떨어야 하는 경우도 있다.

 

한민정 상하이 통신원 minchunghan@gmail.com

뉴욕공과대학(NYIT)의 중국 난징캠퍼스에서 경영학과 조교수로 근무 중이다. 파이낸셜뉴스에서 10여 년간 기자로 근무했으며 이화여대 물리학과를 졸업하고 성균관대학교에서 무역경영으로 석사, 박사학위를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