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가 발생했을 때 비로소 리더십은 빛난다. 누군가가 리더십을 올바로 세워야 위기는 관리된다. 열심히 사고 현장을 관리하는 소방관들이나 경찰들만으로 성공적 위기관리가 완성되는 것은 아니다. 아무것도 확인되지 않았고, 어디까지 공격이 확산될지도 몰랐고, 다른 리더들이 자취를 감춰버린 테러 현장에 바보같이 책임을 스스로 떠안은 리더가 하나 있었다.

2001년 9월 11일 아침. 테러로 뉴욕의 쌍둥이 빌딩이 무너졌다. 뉴욕뿐 아니라 미국과 전 세계가 순식간에 공포에 휩싸였다. 미 부시 대통령은 강연차 방문했던 플로리다에서 테러 소식을 들었다. 국가원수에 대한 보호 규정 때문에 대통령을 비롯한 참모들은 바로 멕시코만으로 나가 사태를 관망했다. 부통령 체니는 백악관 지하벙커로 대피했다. 이때 무너진 빌딩 주변의 잔해 쪽으로 터벅터벅 걸어오는 한 남자가 있었다.

뉴욕 시장인 루돌프 줄리아니였다. 쌍둥이 빌딩 중 남쪽 빌딩이 먼저 무너져버린 당일 아침 9시 59분. 인근 시청 건물에 있던 줄리아니는 2블록 떨어진 사고 현장으로 걸어 나왔다. 하늘은 시커멓게 연기와 먼지로 휩싸여 앞뒤를 분간할 수도 없었다. 줄리아니는 먼지를 뒤집어쓴 채 사고 현장으로 더욱더 가까이 갔다.

맨 처음 그가 한 일은 사고 현장을 취재하며 뛰어다니던 TV 카메라 기자를 붙잡은 것이다. 기자에게 인터뷰를 하자고 했다. 기자는 우연찮게 사고 직후 뉴욕 시장과 인터뷰를 하게 되었다. 줄리아니는 인터뷰 중에 “인근 지역에 사는 시민들은 되도록 북쪽으로 빨리 이동해 달라”고 소리쳤다. 사고 이후 최초로 시민들과 위기를 관리하기 위한 커뮤니케이션을 시도한 것이었다.

30분 후. 남아 있던 쌍둥이 빌딩의 북쪽 건물마저 무너져 내렸다. 직후 줄리아니는 뉴욕의 지역 방송사와 직접 전화 인터뷰를 통해 사고 상황을 시민들에게 알리고, 지금 안전을 위해 시민들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 고지했다. 이후 줄리아니는 2~3시간마다 기자들을 불러 직접 상황을 브리핑하기 위한 기자회견들을 연이어 열었다.

밤 11시. 줄리아니는 자신의 스태프들에게 집으로 돌아가라고 명령했다. 힘든 하루를 보낸 스태프들을 배려한 것이다. 고생한 스태프들에게 다음 날 아침 8시에 다시 모이라고 명령한 줄리아니는 야심한 시간에 다시 사고현장으로 걸어갔다. 엄청난 잔해 속을 걸어 다니며 인명구조에 힘쓰고 있는 구조대원들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리더는 필히 현장에 있어야 한다는 생각에서였다.

새벽 2시가 넘어 줄리아니는 휴식을 위해 자신의 집으로 돌아갔다. 하루 종일 사고 현장과 수습본부에서 서성거렸고, 현장 근처에서 여러 번 대중연설을 했고, 연이은 기자회견을 통해 지속적으로 시민들과 커뮤니케이션했었기 때문에 그는 녹초가 되어 있었다.

일부 비판가들은 줄리아니 시장이 무모했다고 지적한다. 시장으로서 자신을 위험에 그대로 노출했다는 점을 비판하는 것이다. 사실 그는 좀더 신중했을 필요는 있었다. 그러나 911 테러와 같은 전대미문의 위기 시 어느 누군가는 리더십을 보여주었어야 했다. 줄리아니는 무명 복서였던 아버지로부터 ‘얻어맞을수록 정신을 똑바로 차려야 한다’는 가르침을 받고 자랐다고 회고했다. 그 가르침이 사고 직후 줄리아니를 무모하게 만들었던 것이고, 위험한 현장에서 그를 소리치게 했던 것이다.

위기가 발생했을 때 대변인을 내세우거나, 상황이 정리되기 전까지 언론 앞에 나서지 않는 많은 리더와 차별되는 부분이다. 위기 상황 내내 줄리아니는 공포에 휩싸인 뉴욕 시민들 속에 서 있었다. 시민들과 함께 연기를 마셨고, 날리는 잔해들과 분진을 나누어 맞았다. 그 속에서 그들과 대화했다. 기자들을 붙잡아 시민들을 향한 당부들을 전해 달라고 요청했다.

대형 위기 시 정부와 리더들은 피해자들과 패닉에 빠진 국민과 ‘같은 편’이 되도록 노력해야 한다. 같은 자리에 함께 있어야 한다. 그렇지 못하기 때문에 피해자들과 국민은 정부와 리더들이 자신과 같은 편이 아니라 생각하게 된다. 자신들의 이야기를 듣지 않는다고 비판하게 된다. 더 나아가 이 사고를 일으킨 나쁜 사람들이라 손가락질까지 하게 된다.

위기 시 리더들은 길 건너에 서서 맞은편 국민에게 빨리 건너오라고 소리치는 사람들이 아니다. 국민이 서 있는 편에 함께 서서 같이 길을 건너자고 그들과 대화하고 이끄는 사람들이다. 911 테러와 세월호 사고 간 대응에 있어 가장 큰 차이가 바로 이 부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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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관리는 상황 관리와 커뮤니케이션 관리로 나뉩니다. 이 글은 위기 발생 후 기업, 정부, 공기관 등이 위기관리를 위해 실행한 커뮤니케이션 중 하나의 성공 포인트만을 잡아 예시한 것입니다. 즉, 이 원 포인트가 해당 케이스 위기관리 전반의 성공을 대변하고 있지는 않음을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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