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생은 선진한국 향한 영원한 과제…산업생태계 질 향상이 우선

강호영 한국경제연구원 기업연구실 전문위원
강호영 전문위원은 서울대학교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뉴욕주립대학교 대학원에서 경제학 석박사 과정을 수료했다. 전국경제인연합회에서 산업조사팀장, 산업정책팀장 등을 거쳐 전경련중소기업협력센터 사업팀장을 역임했다.

최근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협력을 통한 ‘함께 살아가는’ 과제에 대한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글로벌 위기 극복 과정에서 대기업이나 중소기업 모두 살아남기 위해 피나는 노력을 기울인 결과 한 걸음 더 도약을 위한 출발점에서 불거져 나온 이슈이기도 하다는 생각도 든다.

경기가 회복되면서 기업들의 실적 개선이 발표되기도 하고, 일부 원자재 가격 상승 등으로 중소기업들의 납품 단가 문제가 다시 대두되기도 한다. 기술 탈취, 납품처 변경 문제 제기 등도 마찬가지다.

경제정글 생존엔 ‘경쟁력’이 좌우
대기업 관계자와 중소기업 관계자, 기업과 정부, 전문가 등의 의견들이 이슈마다 이견이 노출되기도 하고, 협력을 위한 논의가 때로는 갈등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이러한 문제는 어쩌면 시장이 해결하도록 해야 할 문제를 제도나 정부 개입으로 해결하려는 충동에서 비롯되기도 하고, 때로는 제도로 해결해야 할 과제를 제도의 부재, 아니면 제도의 집행에 있어서의 실효성이 미흡한데 기인하기도 한다.

또 시장이 해결하도록 해야 할 과제의 경우에도 기업 경영 문화 내지는 시장의 수준이 ‘낮은 문화’로 균형을 이룬 사회(Low road society)냐 아니면 ‘높은 문화’의 사회(High road society)로 균형을 이루어 나가는 사회를 지향하느냐에 따라 이러한 갈등을 협력으로, 경제의 수준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 하느냐 여부가 결정되기도 한다.

시장의 주요 경제 주체 중 하나인 기업의 경우 이러한 경영 문화나 경영 철학은 대기업이나 중소기업 어느 일방의 문제만이 아니라 모든 기업의 과제이기도 하다.

갈등을 풀고, 협력을 통해 다 같이 생존·성장할 수 있는 길은 무엇일까? 먼저 성장을 오늘 하루의 생존이 아니라 5년, 10년 나아가 지속적인 성장, 긴 안목으로 성장을 바라보는 안목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오늘 하루의 생존, 하루살이의 삶을 위해서는 납품 단가를 깎아야 하며, 납품업체의 생존과 관계없이 ‘나’의 생존만을 위한 ‘정글의 법칙’이 적용되는 단세포적인 적자생존의 길을 걸어야 할지 모른다.

그러나, 이 시점에서 우리 경제의 지속적 성장을 견인할 주요 인자는 무엇일까? 경제 성장이나 기술 진화의 경로에 비추어 볼 때 그리고 기업 내부의 노사관계나 기업을 둘러싼 정치·사회·문화 각 영역에 있어서의 경로 의존적(path-dependent) 인식의 수준에 비추어 볼 때, 우리 경제의 지속 성장을 위한 핵심 콘텐츠는 ‘협력’이라는 ‘사회적 자본(Social Capital)의 확충’으로 집약될 수 있다.


지속성장 핵심은 ‘사회적 자본 확충’
현재 우리 경제가 직면하고 있는 상황은 일본과 중국 사이에 끼여 있는 ‘넛 크래커’나 ‘샌드위치’에 비유되곤 한다.

기업 생태계의 관점 그리고 제품의 구성 요소 간 인터페이스(interface)의 정밀도를 중시하는 아키텍처 이론에 의하면, 우리 경제와 중국·일본과의 경쟁력 차이는 기업 간 관계(business relationship)에 있어서의 협력의 정밀도 수준 차이로 설명되고 있다.

기술 혁신 역시 중국과 일본 사이에서 기술 격차를 추격하면서 압축적인 진화 경로를 밟고 있다.

네트워크 경제·네트워크 사회가 도래하면서 기업의 경쟁력은 개별 기업의 경쟁력 수준이 아니라 기업 네트워크 간 경쟁력 수준 차이에 의해 결정되며,

국가 경쟁력 역시 그 나라의 사회적 자본(social capital)의 수준에 의해 좌우되는 단계에 와 있다고 할 수 있다.

완성기업과 부품·소재기업,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의 협력 네트워크의 수준에 따라 기업 경쟁력이 좌우되고 있다.

이미 알려진 바와 같이 중국 전기자동차회사 비야디(比亞迪, BYD)의 사례에서 보듯이 중국 경제의 성장 발전 속도는 과거 우리 경제 못지않게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일본의 경제 역시 지난 10여 년 또는 그 이상의 기간 동안 주춤거리는 경제로 인해 얼마 전 정권이 바뀌기도 했지만 우리의 경우 일본에 비해 기업 간 가치사슬에 틈새가 벌어져 있으며 이 점에서 틈새 경쟁력,

인터페이스의 정밀도를 높이는 연결 경쟁력의 수준을 어떻게 높이느냐 하는 것이 향후 우리 경제의 경쟁력을 좌우하는 주요 인자가 되고 있다.

이 점에 있어서 대기업과 중소기업과의 관계, 완성기업과 부품·소재 기업과의 관계는 더욱 발전되어 나가야 한다. 납품 단가 문제,

기술 탈취 문제 등으로 갈등이 커지거나 협력의 수준이 발전하지 못할 때 이들 기업만이 아니라 관련 기업 생태계, 산업생태계 나아가 국가 경쟁력 전체의 취약성으로 인한 발전 경로의 침체나 이탈로 이어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대기업 또는 완성기업의 경우 중소기업 또는 부품·소재기업에 대한 납품 단가 결정이 단기간의 이익 극대화를 위한 원가 절감 차원에 머물러서는 안 될 것이며,

지속적인 성장을 위해 중소기업, 부품·소재기업의 성장 잠재력을 취약하게 해서는 안 될 것이라는 점을 깊이 인식할 필요가 있다. 이는 지금까지의 기업 성장 전략과는 다른, 새로운 성장 전략에 눈을 떠야 한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렇다고 하여, 중소기업 또는 부품·중소기업 모두가 그들의 경쟁력, 또는 역량의 수준과 관계없이 이러한 협력 관계를 기대하는 것은 곤란할 것이다.

서로의 핵심 역량이 결합하여 모두의 파이를 키워 나갈 수 있을 때 지속적으로 동반 성장할 수 있는 길이 비로소 가능하기 때문이다.

이점에서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의 협력 과제는 모두 상대방의 협력 대상이 될 수 있는 역량을 개발하며, 아울러 자신들이 속한 기업 생태계를 더욱 건강하게 발전시켜 나가는 경영문화나 경영철학을 필요로 한다 할 것이다.

제도만으로 해결될 수 없다는 점에서 무엇보다 대기업, 중소기업 모두 새로운 차원의 경영문화 또는 경영철학이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했지만, 마찬가지로 기업관계를 규율하는 제도의 중요성도 간과할 수 없을 것이다.

내·외부 효율성 살려나가야
‘품격’ 있는 선진한국의 창조는 하루 아침에 이루어지지 않는다. 이러한 갈등을 협력으로 승화시키는 한 차원 높은 경영문화, 이를 뒷받침하는 제도의 개선과 아울러 행정 품질의 업그레이드 등 여러 분야에서 인식의 수준을 높여 나가는 노력이 필요하다.

선진경제는 효율성이 높은 제도와 문화를 가꾸어 나가는 한편으로, ‘효율성’이라는 개념 자체도 한 차원 더 업그레이드된, ‘높은 문화’의 사회(high road society)를 지향해 나가는 틀 위에서의 ‘효율’로 발전되어야 할 것이다.

이는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지속적인 성장을 위해서는 홀로 경쟁력을 확보하는 단계에서 핵심 역량 간의 결합 능력, 네트워크 경쟁력을 구축해나가는 능력이 더욱 필요한 단계로 세계 경제 자체가 변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점에서 ‘효율’의 개념은 이제 ‘내부 효율성’을 넘어서서 네트워크 경제에 있어 더욱 중요시되는 ‘외부 효율성’으로 확장될 필요가 있다.

지금까지 우리 사회에는 기업을 비롯해 사회 전반의 인식 수준이 대체로 ‘내부 효율성’에 머물러 왔다고 말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인식의 지평을 넓힘으로써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갈등 문제가 협력으로 승화되어 한 차원 높은 ‘품격’ 있는 선진경제 사회를 창조해 나가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