앱스토어 배우자면서 중기 현실 외면…대기업 우월적 지위 남용 말아야

김승일 중소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전략경영연구실장)
컨설팅업체인 액센추어, 노무라경제연구소의 초빙 컨설턴트를 지냈다. 정부혁신컨설팅단 부단장, 재정경제부 혁신평가자문위원장, 공정위 정책자문평가위원 하도급 자문위원, 한국생산성본부 전문위원을 거쳐 현재 중소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으로 재직하고 있다.

전자, 자동차, 화학 등 국내 대기업들의 금년 상반기 실적이 사상 최대를 기록한 가운데 대통령의 ‘대·중소기업 상생 발언’이 관심을 끌고 있다.

대기업들은 글로벌 금융 위기를 성공적으로 극복하면서 최대 성과를 올렸지만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수익률 격차, 대·중소기업 간 납품단가 갈등, 대기업의 불공정 행위가 지속된 것이 그 배경이 아닌가 생각한다.

출자총액제한제도 폐지 등 대기업들의 투자 걸림돌을 제거하고, 투자와 일자리 창출,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균형 발전 등을 기대했었는데 그 기대가 무너진 것이다. 사실 우리나라의 대·중소기업의 성과와 경쟁력 격차는 심각한 수준이다.

매출액 영업이익률의 경우 프랑스는 대기업, 중소기업 모두 평균 8%대로 비슷하며, 독일은 대기업 5%, 중소기업 7%대로 중소기업의 영업이익률이 대기업보다 높았다.

미국은 대기업 9%, 중소기업 7%대였고 한국은 대기업은 7%, 중소기업은 4% 대 수준이었다. 한국 중소기업의 매출액 영업이익률은 4% 수준으로, 모든 비교 대상 그룹에 비해 가장 낮았으며 대기업과의 격차도 가장 컸다.

또한 대기업 임금 수준을 100으로 보았을 때 영국, 프랑스, 미국 중소기업은 70~ 80% 수준, 독일은 90% 수준인데 비해 한국은 50~60%대에 불과하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교섭력 격차가 크니, 중소기업들은 대기업들에게 울며 겨자 먹기로 당하는 것들도 많다. 매출액의 상당 부분을 대기업에 의존하는 업체들은 대기업의 요구가 부당하더라도 이를 쉽게 거절하지 못한다.

대기업은 납품 단가를 결정하려고 납품 중소기업에게 제품 원가 자료 등 기업의 기밀 자료를 요구한다.

중소기업이 신제품을 개발해 납품하려고 하면 대기업은 기밀 보장도 않은 채 일단 해당 기술 자료를 제출하라고 한다.

대기업 직원들은 생산 공정과 장비 등 기술 노하우가 노출된 납품 중소기업 공장을 자유로이 출입하기도 한다. 이러한 환경에서는 대기업과 거래하는 중소기업이 성장하기 어렵다.

‘나는 멋 모르고 시작했지만 자식에게는 절대로 넘기지 않겠다’는 말이 나올 만하다시장경제에서 이 같은 경쟁력 격차와 대등하지 못한 대·중소기업 간의 관계는 시장 경쟁의 결과며,

문제될 것이 없다는 주장을 하기도 한다. 그러나 어느 나라의 시장 경제든 발전 과정의 역사적 특수성을 무시해서는 안 된다.

우리나라는 외환 위기 전까지 은행 자금 대부분이 주로 대기업에 지원되었으며, 정부는 소수 대기업을 집중적으로 육성하는 불균형 성장전략을 택했었다.

금융 위기 시의 고환율 유지도 주로 수출 대기업을 지원하는 정책의 하나였다. 정부와 국민 모두 힘을 합한 결과 오늘의 글로벌 대기업 탄생이 가능했다.

한국의 대기업들이 어느 나라의 기업들보다도 국민과 중소기업에 대한 사회적 책임을 다해야 하는 이유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이익률 격차, 임금 격차는 사회 통합을 저해할 뿐만 아니라 경제 전체의 성장 잠재력을 훼손한다는 점에서 우려되는 일이다. 현대는 네트워크 경제다.


기업의 부품과 자재의 공급 네트워크, 유통과 고객 네트워크, 기술과 정보 네트워크 등 기업의 부품 네트워크가 약하면 그 기업의 경쟁력도 약화된다. 도요타는 부품 공급 네트워크의 약화로 대규모 리콜 사태를 불렀고 기업 전체가 치명적인 상처를 입었다.

미국 자동차 시장에서의 가격 경쟁을 주요 부품의 납품 단가 인하로 대처하려 한 때문이었다. 반면 애플은 소프트웨어 공급자들을 획기적인 방법으로 네트워크화하면서 세계가 놀라는 성공을 구가하고 있다.

아이폰 앱스토어에 애플리케이션을 등록하는 제작자들은 판매가의 70%를 자신의 수익으로 받는다.

이동통신 업체들에 종속되어 생존을 이어가던 프로그래머들은 앱스토어 덕분에 자신의 창작품에 대해 충분한 보상을 받게 되었다.

소프트웨어 개발자들은 아이폰 앱스토어 네트워크에 몰려들었고, 애플은 아이폰의 극적인 성공을 세계에 알렸다. 정부가 대·중소기업 상생 정책을 시작한 지 6~7년 정도 되었다.

그간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상생하는 것이 좋다는 인식은 확산되었지만 실제 효과는 크지 않았다.

이익률과 성장률의 격차는 좁혀지지 않았으며, 과도한 납품 단가 인하 문제는 거의 개선되지 않은 것으로 느낀다. 강자와 약자의 구조를 그대로 놔둔 채, 강자가 약자를 도와야 한다는 방식의 정책을 편 결과가 아닌가 생각한다.

시장 경제에서는 경쟁이 현실이며, 상생을 강조한다고 실제로 상생이 되기는 어렵다. 싸게 사서 비싸게 팔아야 이익을 남기는 시장에서 좀 더 비싸게 사 주라는 주장은 먹히기 어렵다는 말이다.

강자와 약자의 갭을 좁히는 획기적인 정책이 필요하다. 대기업들은 강한 네트워크, 상생하는 네트워크가 진정한 경쟁력이라는 사실을 재인식해야 한다.

진정으로 강한 기업이 되기 위해 강한 중소기업 네트워크를 만드는 전략을 과감하게 추진할 필요가 있다.

우리는 갑은 유난히 강하고, 을은 유난히 약한 문화를 가졌는지 모른다. 본래 그랬는지, 압축적 경제 성장을 하면서 그리 됐는지 불분명하지만 거래 상대방을 존중하는 문화가 약한 것은 사실인 것 같다.

히든 챔피언을 다수 보유한 독일의 경우, 대기업은 납품 중소기업과 상생하면서 신뢰의 관계를 이어간다고 한다.

산별노조 관행이 정착되어 있어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의 임금 격차도 크지 않다. 그러면서도 자신의 분야에서 세계 시장을 지배하는 다수의 히든 챔피언들이 활동한다.

중소기업과 사람의 가치를 충분히 인정하는 제도와 문화, 의식이 그 바탕에 있는 것으로 보인다.

우리는 20세기 후반 이후 지금까지, 우선 대기업을 일으켜 세워 잘 살아보자는 일념으로 달려 왔다.

이제 글로벌 대기업도 생겼고, 금융 위기도 어느 정도 극복된 것으로 보인다. 국가의 위상도 많이 높아진 것 같다.

이제야 말로 그동안 소외되었던 중소기업, 약자를 보듬어 함께 잘 사는 나라로 가야 할 것이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이익률 격차, 성장률 격차를 줄이고, 강자가 약자를 대등하게 대우하는 문화를 만들 때다.

소수 대기업이 국내 경제의 상당 부분을 지배하며 중소기업의 발전을 어렵게 하는 구조를 혁신해야 한다.

중소기업에게도 충분한 금융의 기회가 부여되고, 필요한 기술 인력을 충분히 고용할 수 있는 국가·사회적 인프라가 필요하다.

또 우월적 지위를 쉽게 남용하려는 갑을 문화를 진정으로 상생하는 문화로 바꾸는 획기적인 계기도 필요하다. 대·중소기업 상생은 꽤 오래 된 화두다.

상생을 실현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진정으로 상생이 필요하다면 강력하게, 지속적으로 상생을 추구하는 정부, 기업, 국민들의 노력과 상호 양보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