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력을 키우라. 판세를 읽어라. 주요 관계자의 이해를 파악하라 부자의 기부를 받아 관개 정책을 편 자로

임원들에게 자신의 패착 원인을 물어보면 대부분 정치력을 꼽는다. 정치력 하면 흔히 아부력만을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진정한 정치력은 아부력이라기보다 판도를 읽고 그에 따라 각 이해당사자들의 이해관계가 어떻게 형성돼가고 있는지, 즉 조직생태계를 읽는 ‘눈’을 뜻한다. 일을 넘어 큰 그림, 사람의 마음을 읽을 수 있는 것이 정치력이다.

직급이 위로 올라갈수록 일 역량 못지않게 정치력 역량이 필요하다. 다국적기업의 L사장은 사장이 되고 나서 자신의 멘토가 들려준 ‘사장의 제1덕목’이 정치력이었다고 말하며 “지금도 그 말을 들려준 멘토의 혜안에 감사한다”고 말한다. 정치력 하면 우리 사회에선 백안시하는 경향이 있다. 조직에서 정치력이란 음험한 권모술수가 아닌 갈등조정능력이자 고도의 감성지능이다. 말의 이면에 흐르는 사람, 조직의 대의명분에 가려져 있는 사람들의 감정의 맥을 짚어 대응하고 조정하는 것이다. 판을 크고 높게 읽는 거시적 안목이 곧 정치력이다.

현명한 리더는 자신의 대의명분을 추구하느라 남을 비겁자, 무능자로 모는 일을 하지 않는다. 선행의 하수는 밑바닥에서 시혜자만을 생각한다. 하지만 선행의 고수는 고도 3000피트 위에서 시혜자, 피해자, 장기적 효과를 아울러 생각하기에 장애물을 읽을 수 있다. 해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을 ‘당장의 측은지심’에 흔들리지 않고 결정할 수 있다. 신임 리더의 선행에는 수혜자뿐 아니라 피해자도 존재할 수 있다. 나의 선행으로 스리쿠션 피해를 볼 사람은 누구인가도 함께 생각해야 견제구와 돌직구를 피할 수 있다. 의도가 좋아도 결과가 나쁜 까닭은 이 같은 ‘장애물’ 독도가 제대로 되지 않아서다. 자신만 의협심에 찬 영웅이 되느라 다른 사람을 간웅이나 비겁한 사람으로 만들지 말라. 남에게 받을 미움을 동시에 불식시키기 위한 한 끗의 안전장치를 마련하라. 정치는 권모술수가 아니라 이같이 한 발 먼저, 한 치 위에서 판세를 읽어 이해관계자의 걱정을 해결해주는 한 끗의 배려 기술이다.

공자는 과연 정치력에 대해선 어떤 훈수를 놓을까. 그에 대한 일단의 생각을 엿볼 수 있는 일화가 <공자가어>에 전한다. 자로가 포지방 신임관리로 부임했을 때의 일이다. 자로는 저지대 대책을 세우기 위해 마을 사람들을 소집해 가뭄에 대한 대책을 논의했다. 자로는 가뭄에 대비하기 위해 젊은 농민을 동원하고 경험이 풍부한 노인을 파견해 감독하게 했다. 임금을 지급하지 않는 대신 부유한 농민에게 기부를 요청해 대신 식사를 제공하게 했다. 이 말을 전해 들은 공자는 ‘자로의 행동은 잘못’이라고 하면서 즉시 자공을 보내 공사를 중지시킨다.

“너의 사람됨은 어느 모로 보나 나무랄 데가 없다. 그러나 성격이 솔직해 임기응변을 할 줄 모르는 것이 흠이다. 나는 늘 너희들이 잘되길 바라고 있다. 백성을 위해 수해를 예방하고 있으니 이는 정사에 힘쓰고 백성을 사랑하는 것이라 그 소식을 들을 때는 기뻤다. 그러나 오늘날 시류에는 공신이 쇠퇴하고 권신들이 좌지우지하고 있다. 현재 노나라에서 정치에 종사하는 사람은 무엇보다 앞뒤의 일을 잘 고려해야 한다. 이를 고려하지 않고 양심에 따라 인정을 베푼다면 상을 받기는커녕 직위에서 쫓겨날 수도 있다.”

스승의 말을 들은 자로는 “선생님 말씀에 근거하며 관리를 하는 자는 누구든 어진 정치를 행할 수 없습니다. 뇌물을 탐내고 법을 왜곡하여 백성의 고혈을 짜냄으로써 권신에게 봉사할 수밖에 없습니다”라며 답답해했다.

자로는 자신의 복지정책을 칭찬해주기는커녕 제동을 거는 공자가 원망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공자는 그 논리의 근거를 풀어서 설명해준다.“청렴은 관리의 필수적인 자질이니 결코 탐관오리가 되어서는 안 된다. 다만 권신들 주변에는 권력에 아부하는 소인들이 파리떼처럼 모여 있다. 이들은 눈을 크게 뜨고 이권을 노리고 있다. 가령 네가 조금이라도 예에 어긋나는 조치를 하면 그들은 그것을 커다란 위법행위로 조작해 권신들의 귀에 불어넣는다. 그때는 너의 직위도 위험해지기 때문에 시급히 자공을 보내 중지하도록 한 것이다. 너는 가난한 백성을 동정해 급식대책을 마련했는데 어째서 노나라 군주에게 공용미를 청해 사용하지 않았는가. 너의 경우는 부호들에게 부탁해선 안 되는 것이다. 너는 덕장이라고 생각하지만 그것은 노나라 군주가 덕이 없다고 드러내는 것이나 마찬가지 아닌가. 사람들은 말하길 ‘주군의 녹을 받는 이상 주군을 충성스럽게 여겨야 한다’고 한다. 너는 지금 노나라 군주의 녹을 받고 있는데도 백성들에게 사사로이 자기의 은혜를 베풀었다. 이는 노나라 군주가 은혜를 베풀지 않는다는 걸 드러낸 것이다. 물론 너는 다른 뜻이 없었겠지만 권력에 아부하는 소인배들에겐 음모를 기도하는 반역자로 보일 수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자공을 보내 공사를 중지시킨 것이다”라고 말한다.

제자 자로에게 덕행과 선행이 누군가를 비난하는 빌미가 되는지 두루 생각해보아야 한다는 조언을 해주고 있다.뜻은 좋지만 큰 판도를 읽지 못하는 리더들이 야심 찬 정책을 펼칠 때 범하는 실수가 자신의 행동이 혹시라도 미칠 뜻밖의 결과다. 자신의 선행이 누구에 대한 폄하나, 탄핵으로 귀결될 때 그것은 오히려 원망과 견제를 불러올 수 있다. 그렇기에 그에 대한 단도리를 마련해두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정치력이고 자기관리이다.<논어>에 나오는 노나라 대부 맹지반은 그런 점에서 현명한 정치력을 발휘한 전형이다.

<논어>에 노나라에서 대부를 지낸 맹지반이란 인물이 나온다. 그가 제(齊)나라와 싸울 때 패하여 후퇴하게 되었는데, 맨 끝에서 공격하는 적을 막다가 성문이 다 닫힐 때쯤 겨우 들어왔다. 이때 말을 채찍질하면서 “뒤에 떨어지고 싶어서가 아니라 말이 빨리 달리지 않았다”고 말했다(子曰 “孟之反不伐, 奔而殿, 將入門, 策其馬, 曰: ‘非敢後也, 馬不進也-옹야편-). 달아날 때 맨 앞에 서서 도망가는 사람은 남의 목숨을 생각하기보다 자기의 목숨을 구하는 데 열중하는 사람이다. 뒤에 서서 달아나는 사람은 다른 사람의 목숨을 생각하는 헌신적인 사람이다. 그러나 여기에도 문제가 있다. 뒤에 서서 달아난 사람이 남에게 용감한 사람이라고 칭찬을 받게 되면 자기보다 앞에서 달아났던 모든 사람을 비겁한 사람으로 만들고 만다.

필자의 지인 A상무가 신임 임원으로 부임해 제일 먼저 시도한 것이 자재비 절감이었다. 외국 내빈에게 줄 선물을 직거래로 싸게 구입하고자 한 것이었다. 이것이 회사의 이익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해서 추진한 것이다. 하지만 그는 이것을 생각하지 못한 ‘전임자’의 체면과 명분을 생각해줘야 하는데 그에 대한 대비를 마련하지 못해 뜻하지 않은 후폭풍을 맞았었다. 조직에서 불의는 참지만 불리는 못 참는 법이다. 좋은 일을 추진하는 것은 좋지만, 그것의 영향을 받는 좌우 여러 관계자들의 이해관계를 고려해 배려해주라.

고지식한 리더들이 야심 찬 목표와 소명의식, 개혁의 기치 못지않게 둘러보아야 할 것은 현장과의 호흡, 상사와의 이해관계 일치이다. 특히 신임임원으로 승진한 지 얼마 안 됐을 때, 외부영입된 케이스일 경우일 때, 우선적으로 파악해야 할 것이 주요 이해 관계자의 기대 사항이다. 이때 공식관계자뿐 아니라 드러나지 않게 큰 영향을 미치는 실세인 비공식 이해관계자들에 대한 조기 파악도 중요하다. 핵심 이해관계자와 기대 수준, 기대 사항이 다를 때 갈등이 생기게 마련이다. 이것을 조정하지 않고 단지 개혁의 기치가 옳다는 것만으로 밀고 나가면 순식간에 독불장군, 아니 독불병사로 급전직하하기 쉽다. 사람들은 불의는 참지만 불리(不利)는 못 참는 법이다. 이것에 ‘대의명분의 옳음’만 가지고 덤볐다간 부러진 칼이요, 백전백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