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몇 년 간 계속되는 미국의 경기 불황 속 ‘선전’하는 분야가 있다. 유기농 식품 시장이다. 성장세도 무섭다.

미국 유기무역협회(Organic Trade Association)의 ‘2009 유기농산업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유기농 식품 부문은 1990년 10억 달러에서 2008년 약 236억 달러로 약 23배가량 성장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 같은 성과 뒤엔 미국 소비자들의 건강에 대한 관심과 함께 업계의 노력이 있었다. 특히 미국 유기농 슈퍼마켓들의 활약은 주목할 만하다. 트레이더 조, 홀푸즈마켓, 웨그먼즈, 썬플라워 등이 그 대표 주자다.

이들은 창의적인 쇼핑 콘셉트, 차별화된 매장 분위기 등으로 소비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으며 대형 식품 체인으로 빠르게 자리 잡았다. 월마트, 타깃 등 미국을 대표하는 슈퍼마켓에 대적할 만한 수준으로 성장, 새로운 자극이 되고 있다.

100대 소매기업 중 성장률 9위
미국 유통업계에서 유기농 슈퍼마켓은 ‘트렌드 세터’ ‘틈새시장 마케터’로 통한다. 철저히 기존 대형 슈퍼마켓과는 다른 콘셉트를 지향한다. 이러한 특징을 가장 잘 대변하는 곳이 바로 ‘트레이더 조(Trader Joe’s)’다.

1958년 캘리포니아 지역의 작은 편의점으로 시작한 트레이더 조는 미국 서부 지역을 중심으로 340여개의 매장을 갖고 있는 유기농 식품 체인이다.

<스토어매거진> 최근호에 따르면 트레이더 조는 지난해 62억7500만 달러의 매출을 올리며 ‘미국 소매업체 Top 100’ 중 55위에 랭크됐다.

유기농 슈퍼마켓 시장에서는 2위를 차지했다. 80억 3200만 달러의 매출로 41위를 기록한 미국 최대 유기농 식품 체인인 홀푸즈마켓 다음이다.

매출 면에서는 1위와 다소 차이가 나지만 성장률만 놓고 보면 사정은 다르다. 트레이더 조는 전년 대비 10.2% 성장, 미국 100대 소매기업 중 성장률 9위를 차지했다.

1%의 성장률을 보인 홀푸즈마켓의 경우와는 크게 대조된다. 미국 유기농 식품 매장 업계에서 차세대 선두주자로 주목받고 있는 이유다.

트레이더 조는 업계에서 ‘컬트 스토어(Cult Store)’라고 불린다. 소비자들의 충성도가 높아서다. 2008년 미국의〈비지니스위크〉지 선정 최고의 고객 서비스 Top50에서 6위 스타벅스를 제치고 5위를 차지한 데에서도 그 저력을 엿볼 수 있다.

‘트레이조팬닷컴’이라는 고객 팬들이 독자적으로 운영하는 사이트도 있다. 매월 신상품과 레시피가 제공되며, 소비자들은 제품이나 서비스가 불만족스러운 부분에 대해 서로 토론하고 또 해결안을 제시한다.

믿을 만한 제품에 가격도 합리적
이처럼 빠른 성장과 동시에 충성 고객을 확보할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일까. 다른 유기농 식품 매장과는 확실히 다른 ‘무언가’가 있기 때문이다.

대형화와 고급화는 미국 식품 매장의 일반적 트렌드. 경쟁업체인 홀푸즈마켓도 8만 제곱피트 규모의 대형 매장에서 5만 개 이상의 품목을 취급한다.

트레이더 조는 이와 정반대다. 1만 제곱피트 규모의 매장에서 3000개 이하 품목만 엄선해 판매한다. 의도적으로 소비자의 선택 폭을 좁혀 철저하게 마니아층, 단골 고객을 겨냥한 것이다.

트레이더 조는 인공 색소 및 향료, 방부제, MSG, 트랜스지방이 없는 제품만 판매할 것이라고 약속한다. 유전자 변형 제품도 취급하지 않는다. 심지어 중국산 식품도 ‘안전성’을 이유로 2007년부터 판매를 금지해오고 있다.

‘유기농은 비싸다’라는 고정 관념도 과감히 깼다. 믿을 수 있는 친환경 제품을 합리적인 가격으로 판매하는 것이 이곳의 가장 큰 경쟁력이다.

농민이 생산한 농작물을 직접 사들이고 독점 판매하는 전략을 통해서다. 트레이더 조는 농수산물 등 1차 식품에서 가공 식품에 이르기까지 전 품목에 걸쳐 PB(Private Brand; 자사 브랜드) 상품을 다양화해 브랜드 프리미엄을 없앴다.

자체 브랜드의 우수한 품질에 대한 소비자 신뢰 덕분에 전체 매출에서 PB 점유율은 70%에 달한다.

이곳의 독자 노선 행보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이웃 같이 친근한 식품점’을 모토로 내걸고 매장 운영과 마케팅 방식에서도 ‘차이’를 만들어 내고 있다.

트레이더 조는 대형 마트와 달리 광고를 하지 않는다. 그 흔한 ‘특별 세일’이나 할인을 해 주는 회원 카드도 없다.

친근하고 편안한 느낌의 하와이안(Hawaiian) 풍의 매장 인테리어, 이웃집 사람들 같은 친절 서비스는 대형 체인임에도 지역 주민과 공생하는 브랜드로 각광받는 비결이다.

동식물 배려하는 윤리경영 실천
이러한 트레이드 조만의 색채는 ‘친환경’과 ‘윤리경영’이라는 회사의 핵심 가치에 기반한다. 최근엔 기업의 환경 보호와 사회적 책임 기여도가 소비자들의 제품 구입에 큰 영향을 끼치는 추세다.

트레이더 조가 먹는 거 하나에도 건강과 환경을 생각하는 지적인 소비자(Educated Consumer) 그룹으로부터 인기가 높은 이유다.

판촉을 위한 마케팅 전략은 부족하지만 친환경 마케팅에는 먼저 앞장서서 실천한다. 트레이더 조는 1977년부터 ‘나무 한 그루 살리기(save a tree)’ 캠페인의 일환으로 장바구니를 사용하자는 운동을 전개해왔다.

몇몇 매장에서는 장바구니를 들고 오는 고객들에게 상품권 등을 주기적으로 제공하고 있으며, 장바구니를 직접 나눠주기도 한다.

식품의 생산-납품 등 전 과정에 있어서도 생명 친화적인 방식을 적용한다. 최근에는 좁은 새장에 갇힌 닭들의 사육 환경을 개선하고자 닭장 없이 태어난 달걀의 구매를 원칙화해 미국 동물보호협회의 모범 사례로 선정되기도 했다.

소비자들로 하여금 지속 가능한 수산식품을 선택할 수 있도록 2012년 말까지 매장 내에 캘리포니아 주 몬터레이 베이 수족관의 수산식품 감시 프로그램도 도입할 계획이다.

기업의 윤리와 이윤 사이의 상호 관계를 조명하는 전문 매체인 이 선정하는 세계에서 가장 윤리적인 기업 리스트에 2008년부터 3년 연속 그 이름을 올리고 있는 것도 어쩌면 당연한 결과일지 모른다.

전민정 기자 puri21@asia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