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1년 전의 일이다. 남양유업의 영업사원이 대리점주에게 폭언을 퍼부은 음성파일이 공개되면서 기업이 행한 ‘갑(甲)의 횡포’에 대한 질타로 여론이 들끓었다. 이후에도 여러 기업의 ‘갑질’이 수면 위로 떠올라 세간의 질책을 받았다. 지금 이 순간에도 드러나지 않은 곳에서 ‘갑’의 횡포에 눈물을 훔치는 ‘을’이 있을지도 모른다.
큰 기업이라고 모두 ‘갑질’을 하는 것은 아니다. 갑을 논란 없이 조용히 상생경영을 성공적으로 펼치고 있는 우량기업들도 적지 않다. 특히 중소기업과의 협업으로 창출한 시너지를 활용해 상호 윈-윈(Win-Win)할 수 있도록 동반성장을 중시하는 사례로 KT&G를 꼽을 수 있다.
‘3無 정책’으로 협력사와 언제나 함께
KT&G의 계약서에는 ‘갑’과 ‘을’이 없다. 일반적으로 사용하던 ‘갑’과 ‘을’이라는 명칭 대신 ‘회사’ 또는 ‘공급사’ 등으로 바꿔 표현하도록 규정한 사내 지침 때문이다. 이런 용어 선택에서부터 KT&G는 구성원들의 의식과 행동의 변화를 꾀하는 전략을 선택했다.
또 없는 것이 있다. 바로 협력사에 대한 어음결제. KT&G는 매월 전액 현금으로만 대금을 지급하고 있으며, 이는 영세 협력사들의 자금 유동성에 크게 기여하고 있다.
창의적이고 혁신적인 강소기업의 출현을 가로막는 대기업의 ‘기술탈취’도 KT&G와 협력사의 관계에서는 찾아볼 수 없다. KT&G 관계자는 “‘상생경영’을 성공적으로 이끌고 있는 것은 무엇보다 중소기업들과 공동 기술개발을 통해 이뤄낸 성과”라고 자부했다.
벤처기업과 협업, 외화 절감에 성공
KT&G는 지난해 국내 최초의 담배필터용 ‘심리스(seamless: 이음선 없는) 향캡슐’을 벤처기업 ‘에이티랩’과 공동으로 개발해 기술이전 계약을 체결한 바 있다. 현재 ‘보헴 쿠바나더블’ 등의 제품에 적용하고 있는 이 캡슐은 담배필터 안에 장착돼 캡슐을 터뜨리는 순간 새로운 맛을 구현하는 기능을 한다. 그동안 담배에 들어가는 캡슐은 국내에는 상용화 기술이 없어 전량 수입에 의존해왔다.
KT&G는 4억원이 넘는 연구비를 에이티랩에 지원하는 등 6개월간의 공동연구 끝에 에이티랩이 기존에 보유하고 있던 화장품용 향캡슐 제조기술을 활용한 담배필터용 ‘심리스 향캡슐’ 개발에 성공했다. 이를 계기로 KT&G는 향캡슐을 자체적으로 생산하게 돼 원가를 기존의 60%가량 절감하게 됐고, 외화 절감에도 성공했다.
KT&G는 연구용 및 품질측정장비 전문 제조업체 대성글로벌과 2년이 넘는 공동 연구·개발 끝에 국내 최초로 담배 품질측정장비인 ‘카디언(KARDIEN)’을 탄생시켰다. 이 기기는 담배 한 개비의 무게, 둘레, 길이 등을 정밀측정하는 필수장비로, 이번 개발로 그동안 해외에서 조달해오던 것을 국산 제품으로 대체할 수 있게 됐다.
정보공유 통해 제품의 질 향상에 기여
KT&G는 생산계획과 재료품 재고수량을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는 웹 기반의 생산정보 공유 시스템을 마련해 협력사에 오픈하기도 했다. 협력사는 KT&G의 생산계획과 재료품 재고수량을 실시간 확인함으로써, 재료품 생산에만 집중해 제품의 질을 높이는 데 기여할 수 있었다.
명절이 다가오면 KT&G 회계 담당자들의 손이 분주해진다. 협력사들에게 전사적으로 보름 정도 앞당겨 대금을 지급하기 때문이다. 설, 추석 등 명절뿐 아니라 연말연시에도 이와 비슷한 일이 되풀이된다는 게 관계자의 설명이다.
민영진 KT&G 사장은 “기술력 있는 중소기업을 지속적으로 발굴해 동반성장할 수 있는 기회를 확대할 것”이라며 “협력사뿐 아니라 사회 소외계층, 취업희망자, 농가 등 다양한 사회계층을 지원함으로써 진정성 있는 상생 노력을 계속해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