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에게 가장 참기 힘든 일 중 하나가 불같이 일어난 성욕을 억제하는 것이다. 성직자라면 모를까 발기가 된 남자가 여자 앞에서 금욕을 한다는 것은 지옥이다. 아무리 영웅호걸이라도 그것만은 참지 못한다. 섹스 할 때 영웅호걸인 척 하는 남자일수록 발기부전 환자다. 섹스 할 시간에 자기 자랑을 하고 있다는 것은 발기가 제대로 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말하기 때문이다.

그런 남자의 약점을 알고 있는 여자는 섹스를 무기로 원하는 것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잘 알고 있다. 다른 뛰어난 능력이 있다면 섹스를 무기로 하지 않아도 성공하겠지만 섹스밖에 가진 것이 없는 여자일수록 섹스를 이용할 수밖에 없다. 남자는 무기력해지는 순간이 섹스밖에 없어서다.

<카이사르 앞의 클레오파트라>-1866년, 캔버스에 유채, 183×129, 개인 소장.


우매한 남자일수록 섹스로 여자를 휘어잡았다고 생각해 자신이 원하는 것을 가지겠다고 나선다. 하지만 여자가 남자에게 끌린 것은 섹스가 아니라 감정이다. 섹스 한 번 했다고 여자가 자기 것은 아니다. 여자가 남자에게 자신의 모든 것을 다 줄 때는 이 남자가 자신의 모든 것을 책임져 줄 수 있는 사람이라고 판단해서다. 부디 자신의 능력을 과대평가해 여자 앞에서 껄떡거리지 않았으면 한다.

여자는 생리학적으로 남자보다 성욕을 잘 참을 수 있으며 또 발기가 되어야만 섹스 할 수 있는 남자와 달리 성욕이 일어나지 않았다고 해도 섹스 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말하자면 여자는 필요에 따라 언제든지 섹스 할 준비가 되어 있는 것이다. 그래서 지글로(남창)보다 여자 매춘부의 수가 많은 것이다.

또 남자는 여자에게 자신의 섹스 능력을 과대포장하면 안 된다. 섹스가 무기인 여자는 비교 대상이 많다. 괜히 망신당하지 말고 있는 힘껏 최선을 다해 자신의 능력만큼만 해라. 열심히 노력 봉사한다고 쌩쇼를 하면 할수록 일찍 사정해 여자에게 비웃음을 살 뿐이다. 섹스가 무기인 여자를 이길 수 있는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제롬의 <카이사르 앞의 클레오파트라>
자신의 능력을 흔들어야만 원하는 것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이 마케팅의 첫 번째 전력이다. 아무리 뛰어난 능력을 가지고 있다 해도 흔들지 않으면 모른다. 섹스도 마찬가지다. 못생겼다고 해서 성욕이 일어나지 않고 아름답고 해서 무조건 성욕이 일어나는 것도 아니다.

남자의 성욕을 자극하기 위해 여자는 기교가 필요하다. 미인이라고 해서 “당신 마음대로 하세요” 하고 파리를 잡고 있으면 남자의 성욕을 자극할 수 없다. 자신의 성적 능력을 부각시켜야만 원하는 것을 가질 수 있다.

유일한 무기, 섹스로 원하는 것을 가졌던 여인이 클레로파트라다. 기원전 51년 남동생 프톨레마이오스 13세와 결혼한 클레오파트라는 권력에서 밀려나자 이집트 원정에 나선 카이사르를 유혹해 원하는 것을 얻어냈다.

클레오파트라가 카이사르를 유혹하기 위해 썼던 첫 번째 방법이 수단을 가리지 않고 만나는 것이었다. 섹스는 책상 위에서 사인으로 할 수 없는 비즈니스다. 오로지 침대에서 할 수 있는 비즈니스로서 유혹에 성공하지 않으면 섹스 비즈니스는 성공할 수 없다.

클레오파트라는 카이사르를 정상적인 방법으로 만날 수 없자 부하들에게 자신을 카펫으로 싸서 카이사르에게 바칠 진상품인 것처럼 어깨에 메고 들어가라고 한다. 카이사르 앞에 진상품 융단을 놓자 클레오파트라가 나타난다. 클레오파트라의 미모와 대담함에 카이사르는 매혹되어 그녀가 원하는 권력을 쥐게 해준다.

클레오파트라와 카이사르의 극적인 만남을 그린 작품이 제롬의 <카이사르 앞의 클레오파트라>다. 커다란 카이사르 집무실에서 클레오파트라가 이집트의 전통 의상을 입고 서 있고 화면 왼쪽 카이사르는 의자에서 엉거주춤 일어나 있다. 이집트 병사가 잡고 있는 카펫은 클레오파트라와 카이사르의 만남을 설명한다.

이 작품에서 속살이 훤히 비치는 옷은 노골적으로 카이사르를 유혹하기 위해 왔다는 것을 나타내며 카이사르보다 크게 그려진 것은 클레오파트라의 권력욕을 암시한다. 카이사르의 붉은 옷은 성욕에 사로잡혀 있다는 것을 나타낸다.
장 레옹 제롬(1824~1904)은 클레오파트라의 권력욕의 가장 극적인 장면을 묘사하고 있다. 그는 에로티즘을 부각시키기 위해 배경은 어둡게 처리해 클레오파트라의 몸을 강조시키고 있다.

<브래지어를 차는 여인>-1976년, 캔버스에 유채, 247×197, 벨라스아트미술관 소장.


보테로의 <브래지어를 차는 여인>
비즈니스에서 가장 필요한 것은 시간을 낭비하지 말라는 것이다. 섹스가 비즈니스일 때도 마찬가지다. 원하는 것을 채워 줄 수 없는 남자에게 사랑 때문에, 정 때문에 하며 미련을 가지고 떠나지 못하면 성공하지 못한다.

여자가 섹스 비즈니스로 성공하기 위해서는 사소한 사랑에 미련을 두어서는 안 된다. 사랑을 할 상대는 많지만 원하는 것을 해줄 수 있는 상대는 적다. 그러기에 섹스가 비즈니스인 여자는 성욕에 사로잡혀 있지 않다. 그저 남자의 성욕만 자극하면 되는 것이지 본인 스스로 성욕에 사로잡혀 있으면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섹스를 통해 필요한 것을 얻은 여자를 그린 작품이 보테로의 <브래지어를 차는 여인>이다. 벌거벗은 여인이 등 위로 손을 뻗어 브래지어 후크를 채우고 있고 남자는 침대 위에서 잠들어 있다. 침대 아래에 붉은색 여자 옷과 검은색 남자 옷이 널브러져 있고 침대 모서리에는 여자의 속옷이 걸쳐져 있다.

거대해 육체는 남녀의 구분이 불분명하지만 붉은색 매니큐어가 칠해진 손톱, 브래지어, 하이힐, 머리카락이 여자라는 것을 나타낸다. 아무런 장식 없이 침대만 있는 방은 모텔이라는 것을 암시하며 바닥의 붉은색 여자 옷과 붉은색 매니큐어가 칠해진 손톱은 여자가 매춘부라는 것을 나타낸다.

이 작품에서 남자가 잠들어 있음에도 여자가 브래지어 후크를 잠그고 있는 것은 목적을 이루었기 때문에 떠나는 행위를 의미하며 핑크빛 침대 시트는 남자의 망상을 암시한다.

페르난도 보테로<1932~>의 이 작품에서 비정상적으로 거대한 여인의 육체 때문에 관능적인 주제임에서도 그런 분위기가 느껴지지 않는다. 그는 의도적으로 인물의 육체를 비정상적으로 크게 그리는 것이 특징이다.

박희숙 작가 bluep60@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