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도가 올라갈수록 메아리만 울리고 아래에서 외치는 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이것은 만고의 진리다. 모두가 ‘지당하시옵니다’를 외치더라도 리더가 ‘독단의 함정’에서 벗어나 개방적 사고를 보일 때 조직은 신선하게 호흡을 할 수 있다. 꽃병의 물은 처음에 아무리 맑은 물을 넣었어도 정기적으로 갈아주어야 한다. 리더의 사고도 마찬가지다. 시간이 가도 바꾸어주지 않으면 독단과 아집의 녹조가 시퍼렇게 끼기 시작한다.

공자는 제자들이 자신에게 어떤 괴리감이나 신비감을 가지는 것을 경계했다. 춘추시대의 관리인  태재가 자공에게 “공자 선생님께서는 정말 성인이십니다. 어찌 그리도 해박하여 갖가지를 다 할 줄 알까요?”라고 물었다. 자공은 당연히 자기의 사부인 공자를 추켜올리면서 “그야 물론이지요. 타고난 성인인 데다 학문도 해박하십니다”라고 했다. 뒤에 어떤 사람이 이 대화를 공자에게 알려주자 공자는 듣고 나서 말한다.

“너희들은 태재가 정말로 나를 이해한다고 생각하느냐? 그렇지 않다. 나는 고아 출신이라 어려서부터 어렵고 힘든 가운데 일어섰다. 빈천 속에서 무슨 일이든지 해보았기 때문에 세상 물정에 통달하게 된 것이야. ”大宰問於子貢曰: 夫子聖者與? 何其多能也? 子貢曰: 固天縱之將聖, 又多能也. 子聞之, 曰: 大宰知我乎! 吾少也賤, 故多能鄙事. 君子多乎哉? 不多也.-자한-) 군자가 반드시 다재다능할 필요가 없다는 뜻 뒤에는 “나는 어려서 빈천해서 세상과 밑바닥 일에 대해 잘 알고 있다. 군자는 자신에 대해 높은 요구를 해야 하고, 늘 자기의 인생 경험이 충분하지 못할까 걱정해야 하는데 그 누가 학문이 해박하다는 말을 들을 수 있겠느냐. 이것은 다 아첨하는 말이니 듣고 믿어서는 안 된다” 라는 뜻이 담겨 있다고 할 수 있다.

공자는 자존감은 가졌지만 자만감을 가지는 것에는 스스로에게나, 제자들에게나 늘 경계의 샅바를 늦추지 않았다. 그래서 나이와 지역-출신을 불문하고 개방적 소통을 하고자 했고, 독단을 버리고자 했다. 공자는 늘 자유와 너그러움을 주장했다. “말이 믿음직하고 행동의 과단성만 중요시하면 융통성 없는 소인이다.” (자로) 마음속에 너무 많은 필연이 자리하면 사상은 그만큼 속박되어 마침내 상상력을 잃게 된다.

잭 웰치 전 GE 회장이 재임 시 저지른 가장 큰 실수라고 고백한 것은 무엇이었을까. 전략 미스, 실행부재 그 어느 것도 아니었다. ‘최고경영자가 회사에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가장 마지막에 알게 되는 사람이란 사실을 망각하고 의사결정을 내린 것’이었다. 국내에선 과연 어떨까? 위의 사실을 들려주자 한 경영자는 “물과 달리 정보는 상류로 모이게 돼 있다”며 “가만히 앉아 있어도 알아서 각각 정보가 모이게 돼 있다”고 자신만만해했다. 하지만 첩보와 정보는 분리할 필요가 있다. 첩보가 동태를 파악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라면 정보는 상황파악을 위해 필요한 것이다. 그러기 위해선 독단과 아집을 버리고 들으려는 자세를 취해야 한다. 다 알고, 다 파악하고 있는 완벽주의자처럼 잘난 척할수록 ‘구성원들은 다 아는데 자신만 모르는’ 헛똑똑이로 전락하기 십상이다. 공자의 4무방침을 갖고 독단과 아집, 선입관, 편견을 버려라. 내려놓아야 내려앉는 것을 예방할 수 있다.

로버트 몬다비(Robert Mondavi)는 미국 캘리포니아 나파밸리 와인산업을 세계적 수준으로 끌어올린 사람이다. 대부분 사람이 은퇴를 생각할 나이인 쉰셋에 몬다비는 자신의 회사를 창업한다. 삶에서나 일에서나 유연해야 한다. 그는 자서전에서 “독단과 실수를 통해 얻은 교훈”이라며 “최고의 지도자는 지배하지 않는다. 그들은 영감을 불러일으킨다”고 토로한다. “내가 생각하는 내용, 내가 전달하는 방식만이 옳고 최고다”라는 생각에서 벗어날 때 비로소 리더십은 발휘된다. 전자제품 유통업체인 베스트바이의 전 CEO인 브래드 앤더슨(Anderson)은  베스트 바이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인물이다. 그는 가정 형편이 넉넉하지 못했고, 평균 이하의 성적 때문에 대학에 바로 진학하지 못하고 2년제 커뮤니티 칼리지를 졸업했다. 그가 훌륭한 경영자로 변신할 수 있었던 것은 칼리지 시절, 역사학 교수로부터 받은 리포트 덕분이었다. 과제는 미국 남북전쟁 중 벌어진 어떤 전투를 기술한 두 권의 책을 읽고 학기말까지 감상문을 써오는 것이었다. 왜 동일한 전투를 이해하기 위해 왜 두 권의 책을 읽으라는 것일까? 앤더슨은 학기 내내 두 권의 책과 씨름하면서 같은 사건을 이렇게 다른 관점에서 해석하고 평가를 내릴 수 있다는 사실에 큰 깨달음을 얻었고, 이 교훈은 그가 인생을 살면서 가장 중요한 철학 중의 하나가 되었다. 하나의 사건을 다양한 시각에서 관찰하려는 그의 노력은 그가 회사의 CEO가 된 후 여러 가지 어려운 결정을 내리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평균 이하’였던 앤더슨을 성공한 리더로 탈바꿈시킨 비결도 여기에 있었다.

반면에 독단에 빠진 리더들은 자신의 영광스러운 성과조차도 삽시간에 모래성으로 만들었다.

디즈니(Disney)의 전임 CEO였던 마이클 아이스너(Eisner) 얘기다. 그는 카리스마 넘치는 탁월한 리더였다. 그의 리더십에 힘입어 1984년부터 1997년까지 디즈니의 주가는 26배 뛰었고, 라이온 킹을 비롯한 수많은 히트 작품을 내며 제2의 전성기를 맞게 됐다. 미국 3대 방송 중 하나인 ABC와 스포츠 전문 방송인 ESPN을 흡수하고 미국 플로리다에 여러 개의 테마파크를 건설했다. 그러나 성공에 도취된 아이스너는 독단에 빠져든다. 대표적인 예가 유로 디즈니(Euro Disney) 설립이다. 80년대 중반 디즈니는 도쿄 디즈니의 성공을 발판으로 글로벌화를 확대하기 위해 유로 디즈니를 구상했다. 최종 후보지로 스페인과 파리가 대두되었다.

당시 날씨나 부지 규모, 세금 혜택, 인건비 등 여러 가지 면에서 스페인이 더 합리적인 선택으로 여겨졌다. 더욱이 프랑스 사람들은 미키마우스로 대변되는 미국 문화를 천시하는 경향이 있던 반면, 스페인 사람들에게 미국 문화는 동경의 대상이었던 점도 간과할 수 없는 점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스너는 프랑스를 고집했고, 결국 주위의 반대를 무릅쓰고 프랑스로 결정했다. 당시 아이스너는 프랑스 문화와 와인에 흠뻑 빠져 있었다.

1992년 4월 12일 드디어 오프닝 데이가 다가왔지만 입장객 수는 기대에 훨씬 못 미쳤고, 주차장은 ‘미키 마우스, 이건 미친 짓입니다(Mickey! It's madness)’란 피켓을 높이 든 시위자들로 북적거렸다. 유로 디즈니는 이듬해까지 무려 10억달러가 넘는 적자를 기록하게 된다. 결국 임기를 1년 남겨둔 2005년 3월 아이스너는 쫓겨나다시피 CEO 자리에서 사임하게 된다. 자신의 기호와 취향이란 독단에 빠져 ‘이견’을 고려하지도, 수용하지도 않은 당연한 귀결이었다. 편협한 판단과 독단에서 오는 큰 피해를 막으려면 다양한 의견을 의사결정에 반영할 수 있는 제도와 시스템을 반드시 정착시켜야 한다. 기업 경영의 실패 사례를 자세히 살펴보면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다. CEO가 기업의 사활이 걸린 결정을 하는 과정에서 자신의 의견만을 고집하는 독선과 독단만을 주장했다는 것이다. 다양한 목소리, 특히 자신의 의사와 상반된 목소리를 경청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꽃병의 물은 정기적으로 갈아주어야 한다. 처음에 맑은 물을 넣었더라도 정기적으로 갈아주어야 한다. 리더의 생각도 마찬가지다. 처음부터 나쁜 생각이어서가 아니라 좋은 생각, 성공적 아이디어였다 하더라도 ‘이견’과 ‘반대’로 정기점검을 해야 정화될 수 있다.

돌이켜보라. 지금 당신은 꽃병의 물을 갈아줄 때가 되지 않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