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벅스·구글, 페이스북 ‘강력한 경쟁자 부상’…현대카드·롯데카드 부심 중


2011년 3월, 서울 여의도 증권거래소 앞 버스 정류장. 증권사 애널리스트인 송명훈(34)씨는 기업체 IR 담당자들과 저녁약속을 떠올린다. 송씨는 최근 한 카드사가 배포한 애플리케이션(이하 앱)의 검색창에 이날 저녁 약속시간, 참석인원, 장소, 좋아하는 음식 등을 입력한 뒤 전송 버튼을 클릭한다.

잠시 후, 중국집, 레스토랑을 비롯한 충무로에 있는 식당 5곳의 명단이 스마트폰의 넓은 화면 위에 순식간에 펼쳐진다. 이 앱을 개발한 카드사의 가맹점들이다. 애플리케이션에는 이들 식당의 저녁 식단, 가격대, 좌석 위치, 특별메뉴, 서비스 품목 등이 일목요연하게 실려 있다. 카드사 서버 컴퓨터를 거쳐 가맹점에 자동으로 전송된 그의 주문을 확인한 가맹점주들이 컴퓨터로 바로 메뉴, 가격대, 서비스 품목 등을 보낸 것.

송씨는 이중에 맥주 무한 리필을 약속한 중국집을 선택했다. 이 중국집의 전가복, 짬뽕 국물은 한눈에 보기에도 먹음직스럽다. 이 메뉴들 바로 아래에 고객들이 남겨놓은 댓글들이 눈길을 끈다. 국물류를 선호하는 송씨는 삼선짬봉 국물 맛이 진국이라는 내용에 군침이 절로 고인다.

이날 오후 5시, 기업체 IR 담당자들과 약속장소에서 만난 송씨는 세상이 달라졌음을 절감한다. 상전벽해다. 불과 한 해 전만 해도 이동 중에 메뉴를 시시콜콜 따지고 가격 흥정까지 해가면서 식당을 예약하기는 힘들었다. 대부분 친구들의 추천을 받거나, 네이버 검색엔진에서 식단 등을 대조한 뒤 전화를 걸어 예약을 하는 것이 일상적인 풍경이었다.

가맹점주들도 카드사가 손님까지 몰아다 준다며 싱글벙글이다. 말 그대로 금상첨화(錦上添花)다. 카드사들이 별로 해주는 것도 없이 수수료만 자꾸 올려 받는다며 ‘애물단지’취급을 하던 점주들도 새로운 카드 서비스가 ‘신통방통’하기만 하다. 집에 돌아온 그의 인터넷 블로그에는 지난 1년간 송씨가 딸아이를 위해 구입한 물건의 목록들이 빼곡히 올라와 있다.

딸아이가 태어난 뒤 구입한 젖병, 분유, 신발 등이 애틋하기만 한 그는 지인들의 댓글을 하나씩 읽으며 감회에 사로잡힌다. 이 에피소드는 국내 주요 카드사가 최근 추진 중인 ‘스마트폰 앱 서비스’ 시나리오를 가상의 인물을 통해 재구성한 것이다. 스마트폰으로 대표되는 모바일 빅뱅 시대를 맞은 국내 카드사들은 최근 컨설턴트들을 초빙해 밸류 체인(value chain. 가치사슬) 진단을 받고, 비즈니스 모델 재평가에 나서는 등 변화의 박차를 가하고 있다.

국내 카드사들이 잇달아 ‘삼고초려’에 나서고 있는 이면에는 뿌리 깊은 위기감이 있다. 수년 전부터 불어 닥친 모바일 빅뱅의 후폭풍이 그 발단이다. 카드 산업이 통신, 검색, 커피 체인을 비롯한 글로벌 강자들의 이종 격투기 무대로 변모하자, 비즈니스 모델을 쇄신하지 않고서는 자칫하다 공멸의 길을 걸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증폭한 결과다.

이성욱(40) 딜로이트 컨설팅 이사는 “스마트폰발 후폭풍은 국내 대형 카드사들이 오랫동안 공들여 구축한 ‘브랜드’ ‘네트워크’ ‘가맹점’을 비롯한 3대 유무형의 자산을 송두리째 뒤흔들고 있다”고 진단한다.


카드 브랜드 ‘더 이상 통하지 않아’
김영민(가명·43)씨는 현대카드의 ‘블랙카드’를 애용한다. 엄격한 심사를 거친 소수 회원에게만 발급되는 이 프리미엄 카드는 그의 사회적 성공을 보증하는 ‘공인 인증서’다.

최근 유명 흑인 가수 ‘어셔’를 초청해 다시 한 번 동종업계의 부러움을 산 이 회사의 ‘슈퍼 콘서트’는 회원들의 결속을 다지는 현대판 ‘회맹’이었다. 솜씨좋은 장인이 공들여 ‘무두질’을 한 가죽 지갑에서 빼들어 카운터에 내미는 이 ‘카드’는 자동차 업계의 BMW나 벤츠격이다.

이 회사가 적지 않은 돈을 들여 스포츠와 예능 분야의 ‘슈퍼 스타’들을 잇달아 초청하는 이면에는 정태영 사장의 ‘전략적 고뇌’가 있다. 제프리 이멜트 GE 회장이 강조했듯이, ‘코모더티(commodity. 상품화)’는 동시대 경영자들의 골칫거리다. 경쟁사들이 매일 쏟아내는 상품이나 서비스는 대동소이하다. ‘브랜드’는 이런 위기를 정면 돌파할 강자의 무기다.

소비자들은 BMW에서 벤처사업으로 자수성가한 젊은 부자들을 떠올린다. 메르세데스 벤츠는 노(老) 부자들의 ‘애마’다. 시장의 강자들의 포지셔닝 전략의 과실이다. 작년 말 국내에서도 불기 시작한 ‘스마트폰’ 바람은 이러한 구도를 뒤흔든 변화의 신호탄이다.

무형의 자산(브랜드)을 단숨에 무너뜨릴 뇌관이다. 각사의 카드들이 애플리케이션 형태로 스마트폰 속으로 속속 들어가면서, 카드사들의 브랜드 파워가 사실상 무의미해진 것. 가맹점별로 가장 할인 폭이 큰 카드를 추천하는 ‘앱’도 이러한 기류에 한몫을 하고 있다. 주요 카드사들의 압도적인 가맹점 인프라도 무용지물로 전락할 위기에 처해 있다. 모바일 빅뱅의 흐름을 등에 업고 카드사들에 도전장을 던진 기업들 중에는 하워드 슐츠가 창업한 스타벅스도 있다. 글로벌 커피 회사가 카드사들과 경쟁하는 세상이다.

美 스타벅스, ‘카드사 경쟁 상대로 등장’
미국의 스타벅스 매장을 찾는 고객 일부는 커피를 주문한 뒤 스마트폰을 꺼내든다. 스마트폰으로 내려 받은 선불권 애플리케이션을 제시하기 위해서다. 바리스타는 매장 단말기에 가격을 찍은 뒤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에 새겨진 바코드를 스캐너로 읽는다.

최도석 삼성카드 부회장

삼성카드는 모바일 빅뱅이 몰고 올 변화에 가장 적극적으로 대응하고 있다는 평이다. 주요 카드사 중에서 유일하게 전략팀이 직접 비즈니스 모델 변화, 밸류체인 리노베이션을 담당하고 있다. 삼성전자 출신인 최도석 부회장은 하반기 통신사 등과 전략적 제휴를 추진해 나간다는 계획이다.

스타벅스가 고객들의 ‘선불권’ 사용을 독려하는 이면에는 카드사 수수료를 절감하려는 셈법이 있다. 카드사와 가맹점들의 수수료 분쟁은 비단 우리나라만의 현상은 아니다. 스타벅스가 매장 방문객들을 상대로 더 많은 혜택을 부여해 선불권 사용을 유도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독자적인 결제 수단, 고객 데이터를 확보하려는 ‘심모원려(深謀遠慮)’의 산물이기도 하다. 카드사의 경쟁상대는 비단 스타벅스뿐만은 아니다. ‘KT’ ‘SK텔레콤’ ‘버라이존(verizon)’을 비롯한 거대 통신사들도 잠재적인 경쟁상대다.

국내외의 주요 통신사들은 ‘모바일 지급 결제시장’을 파고들 강력한 인프라를 구축하고 있다. 소액 결제를 주로 하는 고객층이 경합 대상이다. 모바일 지급 결제시장은 결제 방식도 간단하다. 스마트폰으로 물건을 신용 구매한 뒤 물건 값은 통신요금에 합산해 지불하면 오케이.

통신요금에 합산되는 모바일 지급 결제액 상한선은 10만 원. 모바일 결제시장을 키우기에는 아직은 턱없이 작은 규모다. 하지만 결제 상한선이 상향 조정될 경우 통신사들이 카드사들의 관련 시장을 상당부분 잠식해 들어갈 개연성이 크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이재우 신한카드 사장

국내 최대의 가입자 수를 자랑하는 신한카드의 이재우 사장은 우대 가맹점을 스마트폰으로 검색할 수 있는 애플리케이션 ‘신한카드 타운앱’을 선보였다.

비교우위는 명확하다. 카드사들의 개별 서비스에 비해 모바일 결제 지출 내역을 일목요연하게 관리할 수 있는 점도 강점이다. 카드는 대개 4~5개를 보유하고 있어도, 통신은 한 개 회사의 서비스를 이용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모바일 결제시장은 아프리카를 비롯한 신흥시장 공략의 무기이기도 하다. 유선 인프라가 제대로 깔리지 않은 아프리카는 ‘엘도라도’이다.

통신사들이 모바일 결제시장에만 관심을 두라는 법도 없다. 세계 최대 통신사인 일본의 ‘NTT도코모’는 카드사를 직접 설립해 이 분야 터줏대감들을 경악하게 만들었다. 이밖에 선불권, 상품권 통합관리 서비스를 제공하는 미국의 ‘모카페이(Mocapay)’, 은행에서 현금을 충전해 모바일로 결제하는 ‘페이스캐쉬(FaceCash)’ 등도 이 분야의 강력한 경쟁자들이다.

구글이나 페이스 북도 카드시장의 강자들을 위협할 태세다. 최근 아이폰에서 구동되는 ‘모바일지불시스템(Transaction)’ 특허를 출원한 애플, 대체지불수단 개발의 고삐를 죄고 있는 페이스북도 잠재적인 경쟁 상대들이다.

국내 카드사 CEO, 비즈니스 모델 ‘다 바꿔’

정태영 현대카드 사장

현대카드는 국내에서 브랜드 파워가 가장 강력한 카드사다. 미국의 유명 가수인 어셔나 비욘세를 초청해 카드 고객들에게 선을 보인 슈퍼 콘서트는 강력한 브랜딩 전략의 백미이다. 전문가들은 모바일 빅뱅이 브랜드라는 무형의 자산을 무너뜨릴 개연성이 크다고 지적한다. 현대카드는 카드 포인트로 물건을 구입할 수 있는 앱을 선보였다.

국내 카드업계의 위기감은 매우 높다. 모바일 빅뱅의 후폭풍은 국내 카드 산업을 뒤흔들 태세다. 브랜드, 가맹점, 네트워크를 비롯한 유무형의 자산들이 송두리째 무너질 위기에 처한 국내 카드업계는 증강 현실 앱을 잇달아 선보이는 등 스마트폰으로 ‘활동무대’를 빠르게 확대해 나가고 있다.

‘올앳 카드’를 비롯한 애플리케이션을 선보인 삼성카드는 카드업계에서는 유일하게 전략팀 주도로 ‘모바일 빅뱅’에 대응하고 있다. 카드업계 관계자는 “삼성전자 출신의 최도석 부회장이 모바일 빅뱅이 몰고 올 업계의 변화를 카드 산업의 관점이 아닌, 좀 더 폭넓은 시야에서 접근하고 있다는 방증”이라고 강조한다.

최 부회장은 “스마트폰이 확산되는 등 모바일 융합과 관련된 시장의 여건이 성숙해져 감에 따라 대형 통신사와의 적극적인 업무 제휴를 통해 모바일 결제시장에서 주도권을 확보해 나갈 계획”이라고 설명한다.

롯데그룹 경영관리실 출신인 박상훈 롯데카드 사장도 이러한 변화에 비교적 발 빠르게 대응하고 있다는 평이다. 지난해 중국에서 백화점 브랜드를 인수하는 등 활발하게 영토 확장을 꾀하고 있는 롯데그룹의 금융시장 공략의 첨병이다. 박 사장은 증강 현실 기능이 있는 ‘스마트 롯데 앱’을 선보였다.

정태영 현대카드 사장도 현대카드 포인트를 사용해 물건을 구입할 수 있는 ‘현대카드 M 포인트 몰’을 선보였다. 이재우 신한카드 사장도 우대 가맹점을 스마트폰으로 검색할 수 있는 애플리케이션 ‘신한카드 타운맵’을 선보였다. 장형덕 비씨카드 사장도 ‘증강 현실 앱’을 출시하며 이 대열에 합류했다.

박상훈 롯데카드 사장

롯데그룹은 금융분야에 요즘 상당한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는 후문이다. 박상훈 롯데카드 사장은 그룹의 이러한 의지를 뒷받침할 수 있는 최고경영자로, 증강 현실 기능이 있는 앱을 출시하는 등 스마트폰으로 대표되는 모바일 빅뱅에 발 빠르게 대처하고 있다는 평이다.

전문가들은 국내 카드사들이 아직은 가야 할 길이 멀다고 꼬집는다. 경쟁 카드사부터 커피점, 통신회사까지 카드 산업 안팎의 잠재적인 경쟁자들을 두루 살피며, 밸류체인(가치사슬) 구성의 변화를 꾀하고 비즈니스 모델을 담금질하는 카드 회사는 아직 눈에 띄지 않는다는 것.

국내 카드사들이 출시한 앱도 인터넷에서 처리하던 업무들을 스마트폰으로 단순히 옮겨놓은 정도라는 분석이다. 카드사들의 밸류체인을 고객의 물건·서비스 선택은 물론, 가맹점의 마케팅을 돕는 수준으로 확대해야 모바일 빅뱅시대에 생존을 담보할 수 있다는 것이 컨설팅 업계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무엇보다, 이 모든 프로세스를 스마트폰의 특정 앱에서 모두 구현할 수 있어야 경쟁우위를 확보할 수 있다는 조언이다.

카드사들은 우리 생활 어떻게 바꿀까
2011년 7월5일 서울 압구정동에 있는 현대백화점. 30대 주부 유현영씨는 고등학교 단짝과 모처럼 쇼핑에 나섰다. 루이 뷔통 가방을 눈여겨보던 유씨는 스마트폰을 꺼내서 사진을 찍는다. 전자 매장으로 발길을 돌린 두 사람은 가격대가 대폭 하락한 3D 텔레비전에 눈길을 주다가 다시 스마트폰으로 영상을 촬영한다.

두 사람이 매장을 돌며 촬영한 제품 사진만 20여 장. 백화점 문화센터로 자리를 옮긴 이들은 남편 얘기부터 자녀들까지, 한참 수다를 떨다가 애플리케이션인 ‘이머니 베스킷(emoney basket)’을 불러낸다.

이 앱에 저장된 사진 속 제품들의 가격, 재질, 할인율 등을 꼼꼼히 대조하던 유씨는 명품 가방을 클릭 한 번으로 주문한다. ‘이머니 베스킷’은 한 카드사가 만든 스마트폰용 애플리케이션.

남편과 자식들을 앞세우는 주부들의 시각으로 분석한 꼼꼼한 상품평은 물론 3D사진 자료, 가상현실 프로그램 등이 강점이다. 고객의 상품. 서비스 선택을 돕는 도우미 애플리케이션이 바로 이머니 베스킷이다. 이 백화점에서 구입하는 상품은 할인율도 경쟁 카드에 비해 더 높아 인기다.


이 애플리케이션의 기본 결제수단은 이 카드사의 여성 전용 카드.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매장에 진열된 상품들을 주시하며 1층 로비로 향하는 그녀의 스마트폰에서는 3D 텔레비전 할인 쿠폰 도착을 알리는 젊은 남성의 목소리가 생생하게 들려온다.

이 가상 시나리오 또한 국내 카드사들이 추진 중인 카드 서비스의 한 장면이다. 전문가들은 가까운 시일 안에 백화점에서 쇼핑하는 주부들의 일상이 될지 모를 이 시나리오에 카드사 생존의 열쇠가 있다고 강조한다.

이성욱 딜로이트 컨설팅 이사는 “카드사는 모바일을 통한 실시간 마케팅에 필요한 핵심정보를 모두 보유하고 있다”며 “이 핵심 비교우위를 자산으로 삼아 비즈니스 모델을 꾸준히 강화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인접 분야로 활동 무대를 확대하더라도 고객 정보가 그 출발점이 돼야 한다는 조언이다.

박영환 기자 blade@asia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