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순신 유앤파트너즈 대표이사
■ 성신여대, 핀란드 헬싱키대학원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대한항공, FRAMEX, NCH Korea 세일즈 매니저를 거쳐 2001년부터 2년 간 유니코써어치 대표를 지냈다. 지난 2003년부터 ㈜유앤파트너즈 대표이사를 맡고 있다.

이번 월드컵 역시 ‘감독들의 무덤’이 됐다고 한다. 단 1승도 거두지 못하고 16강에서 탈락한 프랑스. 월드컵 진출 사상 두 번째로 16강에 오르지 못하는 수모를 겪은 이탈리아.

이 두 나라의 감독은 국민의 원성과 비난을 한 몸에 받으며 경질을 피할 수 없게 됐다. 승승장구할 때는 영웅 대접을 받지만 성적이 부진할 때는 가차 없이 낙마 당하는 것이 냉정한 승부의 세계일 것이다.

하지만 때로는 응분의 책임을 지고, 때로는 다소 억울한 상황에서 밀려나는 스포츠계의 ‘중년’ 감독들을 보노라면 십 년, 이십 년 열심히 다니던 회사에서 이런저런 사유로 갑자기 떠밀려 나오는 우리의 중장년층을 떠올리게 된다.

국내 굴지의 대기업 제조사에 공채로 입사해 50대 초반까지 일해 왔던 L씨. 어느 날 갑작스러운 환율 변동으로 회사가 큰 손해를 입게 되었고 해외자금을 총괄하던 그 역시 책임을 면하기 어려운 상태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L씨는 회사로부터 명예 퇴직 통보를 받았고 결국 원치 않던 명예 퇴직을 하게 되었다.

퇴직 후에도 한동안 그는 더 이상 회사의 일원이 아니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아침이면 같은 시간에 벌떡 일어나 몇 번이나 회사 앞을 오가기까지 했다고 한다.

젊은 시절을 꼬박 바쳐 일한 덕에 인정도 받고 나름 자리를 잡아놓았다고 생각했던 ‘평생직장’에서 어느 날 갑자기 그만 나오라는 통보를 받은 현실을 믿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지독한 슬럼프에 빠져 지내던 어느 날 L씨는 우연히 고등학교 시절 절친하던 동창을 만났다.

그 친구 역시 몇 년 전 자리를 잃고 방황하다 마음을 굳게 먹은 후 자영업을 시작했고 틈새시장을 노린 철저한 준비 덕분에 사업체를 그런대로 규모 있게 꾸려가고 있었다.

재기에 성공한 친구를 보며 L씨는 가능성을 보았고 바로 그 날부터 술을 끊고 어떻게 재취업을 할 수 있을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현실을 인정하고 더 나아가 어떻게 상황을 극복할 것인지 적극적인 행동에 나서게 된 것이다.

L씨는 이력을 되돌아보며 자신이 키워 온 강점이 무엇인지, 보완해야 할 사항은 무엇인지 점검했다. 6개월 동안 동종 업계의 현황을 꾸준히 분석하는 한편, 경험과 역량을 살릴 수 있는 적합한 자리를 찾기 위해 꾸준히 기업들의 문을 두드리고 관련 모임을 찾는 등 안팎으로 네트워크를 구축했다. 결과적으로 L씨는 1년 반 만에 다시 새 직장을 찾게 되었다.

반면 엘리트 코스를 밟은 뒤 박사 학위까지 가지고 공기업에 스카우트 돼 쾌속질주하던 P씨는 슬기롭게 현실을 극복하지 못했다. 부하직원의 불미스런 사고에 휘말려 스스로 사표를 쓰게 된 그는 분노를 다스리지 못해 오랫동안 자포자기한 삶을 살다 급기야 건강까지 해치고 말았다. 그는 지금도 제2의 인생을 시작하지 못한 채로 병원을 전전하고 있다고 한다.

이처럼 중장년층에게 퇴직은 큰 충격이자 인생 자체를 뒤흔드는 사건이다. 청춘을 바친 직장을 잃고 나이는 들어가는데 설 곳마저 없어진다는 서러움, 더 이상 인정받지 못하는 남은 생에 대한 불안. 그래서 이들은 오늘도 P씨처럼 방황하고 있다.

그러나 이 방황의 시간을 되도록 빨리 마치고 적극적으로 순응의 길로 나아갈수록 L씨처럼 새로운 인생을 꾸릴 수 있는 기회를 보다 많이 찾을 수 있다.
사상 첫 원정 16강 달성으로 칭송을 받고 있는 허정무 감독도 2000년과 2004년에 쓰라린 실패를 겪었다고 한다. 그 역시 당시에는 많이 힘들고 어려웠을 것이다. 그러나 그 고난을 이겨내고 남다른 노력을 했기에 오늘의 쾌거를 이뤄낼 수 있었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