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 리뷰 권동철 기자]
우리나라에서 종이와 관련된 역사적 기록은 610년 일본 서기 기록으로 고구려 승려 담징이 일본에 제지술을 전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닥나무는 원료를 방망이로 쳐서 만들기 때문에 섬유의 올이 길어 매우 질기다.

이를 뒷받침하듯 조선시대 실록 제작의 기초 기록이었던 사초를 기록했던 종이들은 자하문 밖에서 다시 빨아 쓰기도 할 만큼 한지는 잘 찢어지지 않았다.

이는 원료의 물성을 최대한 살려 자연스러운 구조로 섬유조직이 배열되도록 인위적인 힘을 가하지 않는 방법으로 제작했기 때문일 것이다.

한지는 닥나무 껍질에 닥 풀을 넣어 물속에 뜬 과정을 거치는 수록지로 천년의 세월을 흘러도 산화되지 않는다. 또 번짐을 좋게 하는 방법으로 도침(搗砧)이라는 것이 있다.

이는 우리 선조가 세계 최초로 사용했던 종이표면 가공기술로 종이표면을 치밀하게 만들어 매끄러운 정도인 평활도(平滑度)를 향상시키며 윤기가 나는 광택효과와 보풀이 없어지며 부드러운 촉감을 끌어 올리는 역할을 한다.

도침을 거친 한지는 물감이나 먹처럼 수분을 담고 있는 물질을 고르게 흡수하게 되어 발묵(潑墨)이 좋아진다. 한지의 예민한 흡수성과 섬세하고 부드러운 성격은 순간적인 필적과 묵흔까지 모두 드러냄으로써 순간성을 명료하게 나타내기 때문이다.

이러한 한지는 질감표현에 뛰어난 물성적인 특성으로 인해 예술작품 창작의 소재로써 크게 각광받고 있다. 이태훈 홍익대 겸임교수는 전통적인 종이공예인 지승공예와 지호공예에 대해 발표한 바 있다.

그는 ‘한지의 우수성, 질료적 특성과 활용분야를 중심으로’라는 논문에서 “지승공예는 종이를 좁다랗고 길게 잘라 엄지와 검지로 비벼 꼬아 노끈을 만들고 이를 엮어 항아리, 소반, 미투리에서 세숫대야 요강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생활기물을 만들어 사용한 것이다.

지호공예는 창호지로 쓰다 버린 폐지나 글씨 연습이나 학습용 휴지, 파지 등을 가지고 물에 풀어 녹인 다음 밀풀을 섞어 절구에 곱게 찧어서 점토처럼 만들고 이것을 이겨 붙여서 그릇처럼 만드는 기법으로 합, 함지, 표주박과 종이 탈 등을 흔히 이 기법으로 만들었다.

이렇게 만든 종이공예는 부조적인 효과와 미티에르적 양감의 표현이 두드러진다.”라고 썼다.

이는 외력에 의해 형태가 변한 물체가 외력이 없어져도 원래의 형태로 돌아오지 않는 물질의 성질인 가소성과 질감, 가변성이 확보되며 새로운 창작 매재로서의 다양한 표현하기가 용이해지는 것을 말한다.

폐책(廢冊)들의 종이를 수집하여 생명을 불어넣어 조형언어로 탄생시키고자 하는 필자의 작업도 종이들 서로간의 유기적 통합을 중시한다.

이는 역사적으로 그 우수성을 입증 받은 한지가 갖는 질료적 우수성에서 얻은 영감의 영향이 컸다.

이승오/미술인

권동철 문화전문 기자 kd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