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십자홀딩스는 한마디로 ‘쌍칼잡이’다. 오른 손에는 제약 업종이라는 칼을 쥐고 있지만, 왼손에는 기업 인수·합병 (M&A)에 능통한 무기를 갖고 있다. 특이점은 오른 손보다 왼손이 더 강하다는 점이다. 제약 신제품을 통한 R&D보다는 오히려 M&A 기술에 대한 노하우를 통해 회사 덩치를 지속적으로 키워오고 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M&A 노하우는 이미 10여 년간 내공을 쌓아온 상태다. 아마추어 수준을 뛰어넘은 프로급이다. 본격적으로 M&A에 손을 대기 시작한 시기는 지난 2000년 초부터다. 당시 (주)녹십자였던 지금의 녹십자홀딩스는 2000년에 상아제약 지분 7.30%를 확보하더니, 2001년에는 42.91%, 2002년 48.56% 늘리며 2004년에는 100% 지분 전액을 확보했다. 사명도 2003년 상아제약에서 녹십자상아로 변경했다가 현재의 (주)녹십자 위상을 갖춰 놓았다. 다시 녹십자상아를 통해서는 2002년 12월에 바이오벤처기업인 ‘바이오사포젠’과 ‘바이오메드랩’을 자회사로 편입시키는데 성공했다. 바이오의약품 회사인 녹십자BT 등 3개 회사도 흡수 합병했다. 이미 2000년에는 (주)마크로젠 주식 51만 1150주를 처분하면서 212억 원의 차익을 챙겼다.

지난 2003년에는 경남제약 지분 70%를 인수하며 실질적 주인도 됐다. 당시 인수 금액은 210억 원. 이후 HS바이오팜이라는 회사에 245억 원에 매각하며 35억 원의 시세 차익을 냈다. 인수 합병을 통해 확실히 자신감을 얻은 사건은 지난 2003년 1600억 원을 쏟아 부어 인수한 대신생명이다. 인수 후 녹십자생명보험으로 이끌어오다 현대차그룹에 매각하는 월척을 낚기도 했다. 당시 매각 금액은 2283억 원. 8년 간 공들여 키워 팔아치워 얻는 이익 치고는 상당한 액수다. 2010년대에 들어서는 바이오벤처 기업들을 인수하는데 집중해나갔다. 대표적으로 2012년 5월에는 151원을 들여 이노셀을 인수한 것을 꼽을 수 있다.

녹십자홀딩스, 영업이익보다 지분 관련 수익이 짭잘

녹십자홀딩스는 (주)녹십자에서 지난 2004년에 지주회사로 변신했다. 이 회사의 수익 구조 현황을 살펴보면, 투자의 귀재라는 별칭이 아깝지 않을 정도다. 과거 10여 년간의 실적 수치를 추적해보면 이러한 현상은 뚜렷하다.

2000년만 해도 당시 (주)녹십자는 190억 정도의 영업 손실을 기록했었다. 하지만 지분 및 투자자산을 처분해서 얻은 이익은 456억 원 정도 됐다. 2004년과 2005년에도 역시 261억 원, 411억 원의 영업손실을 할 때도 278억 원, 308억 원 정도의 이익을 지분 및 투자 관련 분야에서 얻는 기염(?)을 토했다.

2001년부터 2013년까지 14년 간 영업이익보다 지분 및 투자 자산을 처분해 얻은 이익이 더 높은 해만도 9개 년이나 된다. 2001년 191억 원(영업이익 대비 174.4%↑), 2002년 344억 원(254.9%↑), 2003년 150억 원(75.5%↑), 2006년 226억 원(56.6%↑), 2008년 325억 원(9.0%↑)였다. 지난 2012년에는 영업이익은 167억 원에 불과했지만 904억 원을 지분 및 투자와 관련한 이익을 얻은 것으로 나타났다.

감사보고서에 의하면, 녹십자홀딩스는 글로벌 제약사로 도약을 위한 핵심역량 집중 및 투자금 회수를 통한 재무건선성 강화를 목적으로 지난 2011년 10월 21일 이사회 결의를 통해 녹십자생명보험(주) 지분을 2283억 8900만 원에 일괄 매각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이후 2012년 2월 8일 금융위의 지배주주 변경 승인으로 매각이 완료됐다. 이와 관련해 수령한 실제 매각 대금은 2269억 8300만 원이었고 종속기업투자처분을 통해 얻은 이익은 880억 1900만 원이었다.

2010년에도 지분관련 평가 이익만 680억 원을 넘어섰다. (주)녹십자를 통해 551억 원, 녹십자생명보험(주) 91억 원, (주)녹십자엠에스 10억 원, GC China 10억 원 등이다. 2000년부터 2013년까지 14개년 중 지난 2011년만 마이너스 손실을 기록한 것을 빼면, 13년 간 지분 투자 등으로 짭잘한 이익을 얻은 셈이다.

이러한 배경에는 지분 등을 통한 공격적인 투자가 주효했다. 과거 10여 년 간 녹십자홀딩스가 지분을 투자한 회사는 50여 곳이 넘는다. 단계적으로 지분 및 투자를 해나가면서 종속 회사로 편입시키거나 지분 매각을 통해 시세 차익을 얻는 방식으로 몸집을 불려오고 있다. 비유적으로 암퇘지가 될 만한 기업은 기업 인수 및 합병 후 지속 성장시켜 나가고, 수퇘지는 튼실하게 만들어 놓은 후에 비싼 가격에 되파는 형식이다.

올해 3월 말 보고된 최신 감사보고서에 의하면, 녹십자홀딩스는 언제라도 매도 가능한 금융자산 중 시장성 있는 지분은 600억 원에 달한다. 대표적으로 한일시멘트(170억 원), 영풍(344억 원), 제넥신(23억 원), 고려제강(76억 원) 등이다. 또한 시장성 없는 지분 중에서는 211억 원 상당의 케이티비투자증권(우선주) 지분도 보유해 놓고 있다. 앞서 금융 자산 가치를 합산하면 849억 원 정도 된다.

현재 녹십자홀딩스에 종속되어 있는 기업에 투자된 곳도 6곳 있다. 규모면에서 보면 50.51% 지분을 갖고 있는 (주)녹십자가 올 3월 말 기준으로 2963억 원으로 가장 크다. 다음은 홍콩에 법인을 두고 있는 녹십자홍콩이 지분 82.78%에 127억 원 정도 규모다. 94.00% 지분을 확보하고 있는 (주)녹십자이엠은 83억 원 수준이다.

일동제약 경영권 인수도 여전히 진행형

앞서 녹십자홀딩스의 투자기법은 상아제약에서 변신한 (주)녹십자로 자연스럽게 스며들고 있다. 이중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최근 이슈가 되고 있는 일동제약과 관련한 지분이다. 현재 일동제약 지분 중 녹십자를 포함해 녹십자셀과 녹십자홀딩스가 보유하고 있는 지분은 총 7,359,773주로 비율로는 29.36%다. 이중 (주)녹십자가 6,890,175주로 27.49%를 차지하고 녹십자셀과 녹십자홀딩스는 각각 0.99%, 0.88%다. (주)녹십자, 녹십자셀, 녹십자홀딩스가 보유한 지분의 가치는 4월 8일 종가 기준으로 1000억 원 이상이다. 지금 당장 지분을 팔아치운다고 하면 적어도 1000억 원 이상의 자금을 확보할 수 있다는 얘기다.

특히 2013년 5월 이후 녹십자셀을 통해 지속적으로 일동제약의 지분을 매우 활발하게 확보해오다, 올해 1월 10일에 (주)녹십자가 총대를 매고 기존 3,846,880주에서 3,043,295주를 더 확보하며 경영권 분쟁의 신호탄을 쏘아 올렸다.

문제는 앞서 녹십자 및 관련 회사가 보유한 지분이 최대주주 지분을 위협하는 수준에 도달했다는 점이다. 현재 일동제약의 최대주주 지분은 8,136,876주로 32.46%다. 여기에 윤원영 일동제약 회장 지분을 포함하더라도 35.34%다. 앞서 녹십자 관련 회사가 보유한 비율보다 불과 최대 5.98% 차이다.

현재 피드 로우 프라이스드 스톡펀드는 일동제약 지분을 9.34%(468,513주)나 대량 보유하고 있다. 4월 8일 종가 기준으로 주식 가치는 64억 원 정도다. 이 지분이 어느 쪽 손을 들어주느냐에 따라 일동제약의 최대주주 운명이 달라질 수도 있다는 의미로도 해석 가능하다. 피드 로우 프라이스드 스톡펀드가 보유하고 있는 단순히 지분 가격만 놓고 보면, 녹십자 측이 다소 비싼 가격을 지불하고서라도 경영권을 확보할 수 있다면 결코 밑지는 장사는 아니다. 때문에 녹십자 측 입장에서 최대주주가 될 수 있는 가장 빠른 길은 앞서 피드 로우 프라이스드 스톡펀드가 보유한 9.34% 지분을 직접 확보하거나 우호 지분으로 만드는 방안이다.

반대로 일동제약 측에서는 반드시 우호 지분으로 만들어야 하는 숙명에 놓여있다. 이를 위해 녹십자와 일동제약 측 간 우호 지분을 만들기 위해 치열한 물 밑 경쟁이 예상되는 대목이다.

일단 자금 동원력에서는 녹십자 측이 한 수 위다. 이미 녹십자홀딩스가 2012년에 녹십자생명보험을 매각하며 확보한 탄탄한 현금 총알을 비축해놓고 있다.

시간적으로 역추적 살펴보면, 녹십자홀딩스가 녹십자생명보험을 2011년에 팔고 2012년 매각 대금을 확보하고, 2013년부터 2014년 1월 사이에 집중적으로 녹십자 측이 일동제약 지분을 매입하고 있는 것은 결국 탄탄한 자금을 여력으로 일동제약을 품기 위한 행보가 아니냐는 해석도 충분히 가능하다.

증시 전문가들은 녹십자가 이미 칼을 빼든 상태이기 때문에 단순한 위협(?) 수준에 머물기 보다는 어떻게든 빠른 시기에 최후의 결단을 낼 수도 있다는 시각도 지배적이다. 시간을 오랫동안 끌며 뜸을 들여야 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일동제약 입장에서는 올해가 경영권 방어를 위한 최대 분수령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녹십자의 속내를 드러내 보일 시간도 그리 길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