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사 청산 집회

지난 1970년 12월 폴란드를 방문한 독일의 빌리 브란트 총리. 그는 ‘2차 대전’ 전사자 추모비 앞에 무릎 꿇고 꽃을 바쳤다. 독일이 전범국의 오명을 벗고, 유럽을 선도하는 국가로 발돋움하기 시작한 건 바로 그때, ‘과거사 청산’의 순간부터다.

한번 붙은 마음을 고치는 건 어렵다. ‘첫인상 불변의 법칙’에 의하면 그렇다. 법칙은 “인간은 한번 결심하면 그것이 옳다고 믿는 ‘사고습관’이 있고, 이를 토대로 모든 걸 결정하는 ‘자기 확신 심리’가 강하다”고 말한다. 관대해져야 하고, 용기를 내야 한다. 과거의 일을 제대로 털어버리기 위해선 말이다. 때론 불편을 감수해야 할 수도 있다.

지난달 30일, 우리나라에서도 과거사 청산을 위한 행사가 열렸다. 마포대교 등지에서 진행된 할리우드 영화 ‘어벤져스2’ 촬영 현장이 그거다. 그간 미주·유럽의 일반인이 우리를 보는 시각은 70년대에 멈춰 있었다. 1인당 국민소득이 250달러였던 시절 말이다(같은 시기 미국의 1인당 국민소득은 1만달러 정도였다).

여기에 ‘분단’ 이슈까지 더해져 ‘가난하고 위험한’ 곳으로 인식됐다. 삶을 반영하는 매개체인 영화나 드라마를 들여다보면 그들의 시선을 엿볼 수 있다. 2002년에 개봉한 ‘007 어나더데이’에선 서울이 ‘소로 밭 가는 곳’으로 묘사됐고, 미국의 인기드라마 ‘로스트(LOST)’에서 ‘한강대교’라고 소개된 다리는 고궁에나 있을 ‘돌다리’였다. 영화 ‘클라우드 아틀라스’(2012)에선 옛 일본의 모습으로, ‘월드워Z’(2013)에선 악성 바이러스의 발원지처럼 그려지기도 했다.

그런 의미에서 어벤져스의 한국촬영은 ‘과거사 청산’의 기회다. 이들이 그릴 한국은 스마트하다. 우리나라에 첨단 과학연구소가 있는데, 악당이 신기술을 훔쳐가 영웅들이 이를 되찾는다는 설정이다. 영화 제작진은 “한국을 선정한 이유는 IT강국의 이미지 때문”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기특할 정도의 ‘왜곡 없음’이다. 세계인의 관심이 모인다는 점도 반갑다. 이 영화의 전편은 ‘아바타’, ‘타이타닉’에 이어 전 세계에서 세 번째로 많이 본 영화다. 자세한 건 영화를 봐야겠지만, 적어도 ‘가난하고 위험한’ 곳을 찾아 우리 땅을 밟지 않은 것만은 확실해 보인다.

촬영 당일 12시간에 이르는 교통통제로 시민들의 원성을 사기도 했고, 우리 경찰력과 예산(제작비의 30%인 30억 정도를 영화진흥위원회에서 지원)을 투입한 것에 대한 비난도 있지만, 과거사를 떨치기 위해선 관대함과 용기, 그리고 약간의 불편이 따른다. 이날 모인 수백 명의 군중이 구경꾼인 동시에 집회 참석자들이기도 한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