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적으로 언어는 몇 개나 될까. 인류학자들마다 차이는 있지만 평균적으로 6000개 정도다. 또 2주에 한 개 꼴로 사라지고 있다고 했다. 이론대로라면 230년 뒤에는 언어 자체가 완전히 없어질 수도 있다는 얘기가 된다.

그러나 이론과 달리 현실에서 언어가 사라지는 일은 있을 수 없다. 한글을 떠올려보자. 훈민정음이 1443년에 창제됐으니 현재까지만 놓고 보더라도 568년의 생명력을 보였다. 영어와 불어, 일본어 등도 비슷하다.

그렇다면 언어가 사라진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이성의 파괴’, ‘새로운 변신’을 주로 뜻한다. 기존의 언어 형태가 변하고, 의미가 달라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동안 언어가 의사소통의 도구로 활용이 됐다면 최근엔 예술의 일부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그림 뿐 아니라 디자인 등에서 문자의 활용이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추세다.

기존에 알고 있던 의미의 문자가 예술로 승화하면서 전혀 다른 뜻으로 변하며 보는 이로 하여금 즐거움을 느끼게 하는 식이다. 일종의 언어유희라고 이해하면 쉽다.
언어유희는 이성의 부정을 시작으로 유럽에서 처음 등장했다.

동시에 언어에 대한 애정이 있어야 가능하다. 그렇다면 언어유희란 정확하게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 또 한글의 언어유희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 이 같은 궁금증을 해결하고 싶은 이들을 위한 전시회가 열린다. 동아시아문화학회와 성곡미술관이 공동 주최한 ‘언어놀이展’이 바로 그것이다.

언어놀이전은 문자가 의사소통 도구로서 어떻게 사용될 수 있는지를 다양한 형태의 작품으로 소개하고 있다. 또 한글의 정체성과 한국미술계에 어떤 양태로 나타나고 있는지를 한눈에 쉽게 볼 수 있도록 구성했다. 다소 어렵게 느껴질 수 있는 주제를 그림과 설치예술 작품을 통해 쉽게 풀어냈다는 평이다.

기영미 동아시아문화학회 이사 겸 언어놀이전 책임큐레이터는 “한글의 정체성 등을 조명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고자 시각예술을 중심으로 꾸몄다”고 기획 의도를 밝혔다.

실제 전시 작품을 살펴보면 이해하기가 쉽다. 우선 전시장 1층에는 1960년대 서울역 인근 술집의 외상 장부가 한쪽 벽면을 꽉 채우고 있다. 외상 술을 먹은 사람의 이름은 검은색, 돈을 지불한 사람은 빨간색으로 줄이 그어져 있는 것이 전부이지만 예술 작품으로 승화했다. 글로 표기된 언어를 통해 과거의 암울했던 생활상을 보는 동시에 자음과 모음의 어울림에서 묘한 재미를 느낄 수 있다.

2층 전시장에는 언어놀이전의 핵심적 내용의 작품들이 많이 전시돼 있다. 2층 계단 바로 왼쪽에 있는 유근택 작가의 ‘거울(1999년, 그림 참조)’과 윤동천 작가의 ‘도대체 우리나라(2010)’의 작품이 대표적이다.

‘거울’은 작가 자신의 자화상을 중심으로 쉽게 알아보기 힘든 한글이 빼곡하게 채워져 있다. 자세히 살펴보면 한글은 아버지라는 글의 반복, 매트릭스의 분자구조와 흡사한 구조를 이루고 있다.

자신을 이루고 있는 중심에 아버지란 존재와 아버지의 아버지, 또 아버지의 아버지를 글로 표현해 예술적 의미와 함께 진한 감동을 주기에 충분해 보인다. 또 ‘도대체 우리나라’는 A4용지에 국내 공공기관의 영어 약자와 의미를 적는 형식으로 구성, 언어를 보는 색다른 시각을 제시하고 있다.

언어놀이전은 이밖에도 남녀노소 누구나 즐길 수 있도록 백남준, 차학경 등 설치미술작가의 작품과 강익중, 김상도, 김소라 작가 등의 국내외 유명 작가 30여 명의 작품을 전시한다.

김세형 기자 fax1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