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는 것을 실천해야 효과가 있다. 많은 CEO가 조직관리 혹은 리더십에 대해 공부하지만 이를 행동으로 옮기는 이는 드물다. 열심히 공부하고 전문가에게 자문하지만 정작 리더십은 향상되지 않고 조직은 정체돼 있다. 이유는 무엇일까. 아는 것을 행동에 옮기는 실천력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CEO만큼 열심히 공부하는 경우가 드물다고 한다. 조찬 강연을 듣기 위해 새벽 6시 모 특급호텔 가파른 비탈길에 장사진을 이룬 검은 승용차의 행렬을 보고 외국 석학이 놀랐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한국경제가 초고속 성장한 데는 한국 경영자들의 이 같은 학습열도 한몫했을 것이다.

한편으로 아쉬운 것은 ‘앎’과 ‘함’이 반드시 비례 관계에 있는 것만은 아니란 점이다. 리더십 하면 웬만한 이론은 전문가 뺨치고, 세계 권위학자가 다 손바닥 안에 있는 것처럼 이야기하는 경영자들을 종종 본다. 하지만 이들이 실제로 아는 만큼 행하느냐, 아니 아는 만큼 행하려고 노력하느냐는 별개인 경우가 많다. 공자는 “배우기만 하고 생각하지 않으면 얻는 것이 없고 생각만 하고 배우지 않으면 위태롭다”(學而不思卽罔, 思而不學卽殆-위정-)고 했다.

리더들이 이처럼 열심히 공부하러 다니고, 교수에게 자문하고, 조직경영에 대해 컨설팅을 받으면서도 정작 리더십이 향상되지 못하는 까닭은 왜일까?

군자를 존경해 자문한 두 명의 리더가 어려움을 당한 까닭은?

<공자가어>에는 공자와 자로의 대화 중 이런 대목이 나온다. 중행씨란 사람이 매일 현인이랍시고 초청해 자문했다. 그런데도 망했는데 그 이유가 결국 무엇인가에 대한 문답이다. 공자는 ‘귀로 듣기만 하고 흘려버린’ 지행불일치에서 그 원인을 찾는다.

공자와 자로의 대화 대목에서 이 이야기가 나온다. 어느날 자로가 공자에게 “어진 임금은 나라를 다스림에 무엇을 앞세워야 합니까?”라고 여쭈었다.

공자는 “어진 사람을 존경하고 불초한 사람을 천하게 여겨야 한다”라고 답했다.

그러자 자로가 다시 여쭈었다.

“제가 듣기로는 중행씨는 어진 사람을 존경하고 불초한 이를 미워했다는데 망하고 말았으니 어쩐 일입니까?”

그러자 공자는 이렇게 대답해준다.

“현자를 존중하고 불초한 자를 멀리하는 것은 말로만 하는 것이 아니다. 중행씨는 마음만 있었지 등용하지 못했으며 소인을 멀리할 마음만 있었지 소인들을 추방하지는 못했다. 이것이 가장 큰 결점이어서 스스로 멸망한 것이다. 현자들은 표면적 존경이고 끝내 기용해줄 뜻이 없다는 걸 알았기에 원망을 남기면서 그의 곁을 떠났다. 소인들은 쫓겨가지 않으면서도 경멸받는다는 것을 알자 그를 원수처럼 여겼다. 중행씨가 권력을 떨칠수록 원한도 깊어져 그 명성은 도리어 군자를 적으로 만들고 소인도 적으로 만든 것이다. 원망과 원수가 온 나라에 함께 있고 , 이웃나라에서도 군사를 일으켜 교외에서 전투를 벌여오는데 중항씨가 어떻게 망하지 않을 수 있겠느냐.”

군자는 자문하고, 의견을 수렴하는 것만으로 충분하지 않다. 허물을 들어 고칠 만하다고 수용했으면, 의견을 들어 좋다고 수긍이 되면 행동으로 옮겨야 한다. 자신의 평판을 위해 어정쩡하게 듣는 시늉만 하고 행동을 취하지 않으면 어진 사람에겐 어진 사람에게대로, 소인에겐 소인에게대로 양쪽 모두에게 비판을 받아 결국 알지 못한만, 듣지 않은 만도 못하게 된다는 지적이다.

이와 같은 맥락의 이야기에 나오는 인물로 노나라의 대부 계손씨가 있다. 계손은 선비를 손님으로 들이길 좋아했다. 한평생 예술을 숭상하고 자기의 의복이나 집안에 항상 조정과 같은 엄숙한 분위기가 감돌도록 했다. 이 같은 계손이라도 때론 마음이 느슨해지고 풀릴 때면 실수가 있어 예절을 벗어나는 경우가 있었다. 그럴 때면 손님들은 자기를 업신여기는가 오해를 했다. 그래서 서로 원망해 계손을 암살하고 말았다.

이에 남궁경자가 안탁취에게 물었다. “계손은 공자 제자들의 생활을 돌보아주었음은 물론, 손님을 대할 때는 예복을 입고 공손한 태도로 만난 사람이 수십 명이나 되었습니다. 그런데도 이렇게 칼에 찔려 살해를 당한 것은 왜입니까?” 그러자 안탁취는 이렇게 답한다.

“옛날 주나라의 성왕은 광대나 난쟁이를 거느리고 마음껏 향락을 탐닉했습니다. 그 반면에 정무를 처리할 때는 군자와 의논했습니다. 그런데 계손은 공자 제자들의 생활을 돌보아주었고 예복을 갖추고 만난 손님이 수십 명을 헤아릴 수 있었지만 정작 정무를 처리할 때는 광대나 난쟁이와 의논했기 때문에 살해를 당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삼갈 것은 ‘누구와 함께 있는가’가 아니라 누구와 상의하느냐가 중요하다는 말이 있게 된 것입니다.”(한비자 외저설 좌하)

리더 여러분은 어떤가. 바쁜 시간을 쪼개 경청한 AMP, CEO 조찬 강의는 얼마나 활용하고 있는가. 유명한 석학들을 아는 것과 그들의 의견을 듣고 참고하는 것은 다르다. 정작 당신은 의사결정 시 누구의 조언을 결정적으로 참고하는가.

공자의 이야기를 조금 더 살펴보자.

제경공이 정치의 요체에 대해 물었을 때 공자는 “군군신신부부자자”란 이야기를 들려준다. 이에 대해 제경공은 무릎을 치며 감복한다.

“참 좋은 말씀입니다. 진실로 만일 군주가 군주 노릇을 못하고, 신하가 신하 노릇을 못하며 아버지가 아버지 노릇을 못하고 자식이 자식 노릇을 못한다면 비록 경제적으로 풍족하다 하더라도 그 부유함을 어떻게 누릴 수 있겠습니까?”(公曰 善哉 信如君不君 臣不臣 父不父 子不子 雖有粟 吾得而食諸)

제경공은 공자의 말을 반색하며 좋게 여겼지만 공자를 등용해 높이 쓰지도, 이 말을 정책에 반영해 실행에 옮기지도 않았다.

공자의 군군신신론, 얼핏 보면 평범한 말 같은데도 제경공이 절실하게 받아들이며 반가워한 것은 역사적 배경도 한몫했다. 자신의 즉위도 사실상 하극상 쿠데타로 인한 것이었다. 즉 ‘최저와 제장공’사건으로 인륜과 천륜이 땅에 떨어질 대로 떨어지고 그 상황을 직접 목도한 제경공으로선 이와 같은 명분 바로잡기 이야기가 한결 절실하게 느껴졌던 것이다. 공자의 말을 듣고 귀가 솔깃한 제경공은 공자를 등용하고자 했으나 재상 안영이 “신하로 삼기엔 버거운 인물”이라며 반대하자 포기한다. 그러고선 “자신이 나이가 들어 쓸 수 없다”는 변명을 공자에게 한다. 중국 북송 말의 유학자 양시(楊時)는 “제경공이 공자의 말씀을 좋게 여길 줄 알았으나, 그 논리를 돌이켜 실행에 옮길 줄은 알지 못하였으니 말을 기뻐하기만 하고 깊은 뜻을 몸에 새기지 않은 것이다. 제나라가 이 때문에 난(亂)으로 끝나고 만 것이다”라고 풀이한다.

“참 좋은 말입니다”는 요즘 리더들도 흔히 하는 말이다. 하지만 이 말을 들었을 때 팔로워들은 포기한다. 이 말 뒤에는 “참 좋은 말이지만 하지는 않겠다”는 말줄임표가 자리하고 있어, 영혼이 깃들지 않은 동의라고 생각해서다.

공자는 이 같은 실행이 뒤따르지 않는 ‘영혼이 없는 동의’에 대해 이렇게 지적한다.

“ 바른 말로 나를 깨우쳐주니 따르지 않을 수 있겠는가. 자신의 허물을 고치는 것이 중요하다. 귀에 거슬리지 않는, 부드럽게 타이르는 말을 듣고 기쁘지 않을 수 있겠는가? 하지만 그 말 속에 숨은 참뜻을 찾아내는 것이 더 중요하다. 기뻐하기만 하고, 그 말의 참뜻을 찾지 않고, 따르면서도 허물을 고치지 않는 사람들은 나도 어찌해야 할지 모르겠다.”(子曰 法語之言, 能無從乎 改之爲貴 巽與之言 能無說乎 繹之爲貴. 說而不繹 從而不改 吾末如之何也已矣-자한-)

법언(法言)이란 사람들이 공경하고 두려워하는 내용이므로 반드시 따라야 한다. 그러나 듣기만 하고 행동을 고치지 않으면 겉으로 따르는 시늉을 하는 것일 뿐이다. 손언(巽言)은 공손해 거슬리는 내용이 없으므로 반드시 기뻐한다. 그러나 그 참뜻을 찾지 않으면 그 말의 의미가 무엇인가를 모르는 것과 같다. 말해주어도 깨닫지 못했거나 처음부터 거부하고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모르겠다. 그렇지 않고 좋다고 하고 깨우쳤다고 하면서 따르고 또 기뻐하기만 할 뿐 아무런 행동의 변화가 없다면 이는 결과적으로 처음부터 안 들은 것과 같다. 비록 나, 공자라도 어쩔 수가 없다.

오늘도 이 세미나, 저 과정 쫓아다니느라 바쁜 당신, “참 좋은 말인데...” 하는 건성의 감탄에서 그치고 있지는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