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의력·지속 가능성 등 기업의 무형 가치 중시 트렌드 반영

성공적인 최고경영자(CEO) 권한 이양은 해외기업에서 흔히 찾아볼 수 있다. 특히 선진국에서는 소유와 경영, 감독과 경영의 분리 차원에서 오너와 CEO의 분리 현상이 두드러진다.

과거에도 CEO 역할의 중요성은 크게 인식되어 왔다. 그러나 최근 무형 경제 시대에는 기업에 필수적인 핵심 무형 가치들을 책임지는 역할이 추가적으로 강조되고 있다. ‘비전 창출’ ‘인재 양성’ ‘기업문화 구축’ ‘지속 가능 경영’ 등이 바로 그것이다.

이에 따라 해외에서는 선도기업을 중심으로 이와 관련된 신개념의 C 레벨이 생겨나고 있다.

구글 _ Chief Culture Officer
“구글만의 독특한 문화를 유지해라!”

듀폰은 환경경영을 통해 온실가스 배출 감소, 에너지 절약에 앞장서고 있다. 사진은 자동차에 대한 듀폰의 친환경 마감 공정.

개방적이고 창의적인 기업문화로 유명한 구글에는 CCO(Chief Culture Officer·최고문화책임자)가 있다.

지난 2006년 여름 구글의 공동 창업자인 래리 페이지와 세르게이 브린이 아이디어를 내 이 직책이 신설된 이후, 구글은 또 다른 구글만의 새로운 문화를 선도해 나가고 있다.

구글 최초의 CCO인 스테이시 사비데스 설리번(Stacy Salvides Sulivan)의 임무는 간단명료하다. 바로 회사의 독특한 문화를 유지하고, 2만 명 구글러들을 행복하게 만드는 것이다.

이러한 지상 과제 하에 그녀는 지난 5년여 간 다양성을 존중하면서 협력을 중시하는 구글의 기업문화를 만들고, 세계 곳곳의 구글 조직에 이를 확산시키는 데 힘쓰고 있다.

이를 위해 설리번은 새로운 프로그램이나 프로세스를 구성하기도 하고, 직원들이 개인적인 문제로 고민하고 있을 경우 이를 들어주기도 한다.

또 직원들이 현재 구글 문화의 문제점들을 가감 없이 털어놓고 이를 개선하기 위한 방책을 논의할 수 있도록 웹 사이트를 구축, 관리하는 업무 또한 맡고 있다.

전문가들은 구글이 끊임없는 혁신을 기반으로 세계적인 인터넷 기업으로 지속 성장할 수 있었던 데에는 이 같은 창의성, 수평적 커뮤니케이션, 다양성을 보장하는 구글만의 문화를 지켜나가려는 노력이 뒷받침되었다고 입을 모은다.

듀폰 _ Chief Sustainability Officer
“환경 개선으로 회사의 지속 성장 도모”

구글은 회사의 독특한 문화를 유지하고 구글러들을 행복하게 만들기 위해 CCO(최고문화책임자)를 두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 환경이 기업 경영의 화두가 되고 기업들이 환경 문제에 많은 관심을 기울이면서 CGO(Chief Green Officer·최고환경책임자)가 급부상하고 있다.

듀폰은 환경 문제에 대한 적극적인 대응을 기반으로 지속 성장을 도모하기 위해 보다 확장된 개념의 CSO(Chief Sustainability Officer)를 두고 있다.

듀폰의 경우 CSO는 더욱 각별한 의미를 갖는다. 200여 년 전 화약 회사로 출발한 듀폰은 프레온가스를 개발하며 화학·에너지 회사로 명성을 쌓았다.

그러나 1970년대 이후 지구 온난화 문제가 대두되면서 위기를 맞았다. 오존 파괴 물질 프레온가스를 생산하는 환경 파괴 기업으로 인식되며, 환경단체나 소비자들의 비난도 거세졌다.

이에 듀폰은 에너지와 자원의 효율성을 극대화하고 환경오염을 최저화한다는 ‘지속 가능한 성장’을 모토로 내걸었다.

이의 일환으로 2004년 6월 미 환경보호청(EPA)의 차관을 역임한 린다 피셔(Linda Fisher) 변호사를 CSO로 영입, 다양한 환경 보호 프로그램을 추진하면서 친환경 기업으로의 변신에 성공했다.

그리고 그동안 축적된 화학·과학기술을 바탕으로 온실가스 배출량 감소 등 환경 개선에 대한 지속적인 노력을 기울인 결과, ‘환경파괴자’라는 오명에서 완전히 벗어났다. 지난 2005년도에는 〈비즈니스위크〉지가 선정한 최우수 친환경 기업 1위에 오르기도 했다.

린다 피셔 부사장은 회사의 지속 가능 경영을 총괄하는 최고관리자로서 “듀폰의 리더들은 지속 가능한 성장으로 이끄는 전략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고 주창한다.


텅쉰 _ Chief eXperience Officer
“고객이 원하는 경험을 디자인한다”
과거 기업은 제품 디자인에 집중했다. 제품을 생산할 때는 상품의 포장이나 외형을 아름답게 꾸미는 활동에 주력한 것이다.

그러나 현재는 제품 자체에서 벗어나 제품의 구매-사용-폐기 전 과정에서 고객에게 좋은 경험을 제공하는 기업이 늘고 있다. 고객이 원하는 경험을 창조하고 선사할 수 있는 경영자만이 바로 고객을 사로잡을 수 있다는 인식이 확산된 탓이다.

세계적인 경영 석학인 톰 피터스(Tom Peters)는 “일반 기업에도 CEO나 CFO뿐 아니라 풀타임으로 근무하는 CXO (Chief eXperience Officer), 이른바 ‘최고경험관리자’가 한 명쯤은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는 “CXO는 회사 내 다른 부서 직원들을 잠재적인 내부 고객처럼 여기며 그들이 열의를 갖게끔 해주는 연극 연출자와 같은 역할을 해야 한다”고 설명한다.

4억 5000만 명의 가입자를 둔 ‘중국판 싸이월드’ QQ닷컴운영업체 ‘텅쉰(tencent)’. 텅쉰은 메신저 프로그램에서 시작해 현재는 게임, 검색, e비즈니스, 블로그, 이메일, 카페, 오락 등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하면서 지난해 상반기에 7억 달러의 매출을 기록했다고 발표했다.

CEO 마화텅은 이러한 텅쉰의 성장 비결을 “자신이 CEO인 동시에 CXO이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는 늘 고객의 입장에서 모든 서비스와 제품을 확인하고, 그들에게 최고의 경험을 주기 위해 노력한다. 기업 개발자 입장에서 보면 안 보이던 여러 문제가 사용자의 시각으로 보면 바로 보이기 때문이다.

DC엔터테인먼트 _ Chief Creative Officer
“월트 디즈니를 이길 창의력을 높여라!”
창의력은 21세기 기업의 생존 조건으로 자리 잡은 지 오래다. 특히 엔터테인먼트 사업 쪽은 이러한 상상력과 창의력이 매우 중요시되는 업계다.

최근 슈퍼맨과 베트맨으로 유명한 타임워너사의 자회사 DC 엔터테인먼트는 창의력과 상상력을 더욱 강화하기 위한 조치를 취했다.

기업의 창의력 담당자, 바로 CCO(Chief Creative Officer)를 선임한 것. 그리고 그 자리는 TV 애니메이션 작가 출신 DC코믹스의 편집장 ‘댄 디디오’가 맡았다.

DC 코믹스가 이런 결정을 내린 것은 경쟁사 월트 디즈니 때문이다. 최근 월트 디즈니는 60년 미국 영웅 만화의 본가, 마블 엔터테인먼트를 인수했다.

이를 통해 스파이더 맨, 아이언 맨 등 마블의 인기 캐릭터를 확보하게 된 월트 디즈니는 DC의 최대 적수로 떠오르고 있다.

배트맨 리턴즈 이후로는 이렇다 할 수익을 올린 적 없는 DC 코믹스. 하버드나 와튼 출신으로 숫자에 강한 경영자가 아닌, 만화광의 눈높이를 맞출 수 있는 최고창의경영자로 만화 업계의 강자 자리 탈환을 꿈꾸고 있다.

※ 위의 사례 중 일부는 세계경영연구원(IGM) 최근 보고서 '뜨는 C레벨 살피면 기업들 전략 보인다'에서 발췌ㆍ정리한 것이다.

전민정 기자 puri21@asia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