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른하늘에 날벼락이 따로 없었다. 겨울의 끝자락인 지난 2월 25일. 홍 모 씨(82세)에게 그날은 악몽이었다. 홍 씨는 모범택시 운전기사다. 당일 오후 5시께. 서울 중구 장충동 신라호텔 앞에 서 있던 그는 고객을 태우기 위해 호텔 정문으로 서서히 이동했다. 그 찰나, 속도가 급속히 높아졌고 호텔 회전문을 박는 사고를 냈다. 순식간이었다. 유리문 5~6대가 파손됐고, 직원과 투숙객 4명이 다쳤다.

홍 씨는 “급발진이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경찰은 이를 ‘운전 부주의’로 결론을 내렸다. 조사에 따르면 신라호텔의 피해액은 5억원 수준. 홍 씨는 5000만원 한도의 책임보험에 가입돼 있었지만 이를 제외하고도 4억원이 넘는 변상액을 물어야 할 상황이 됐다. 잠을 이룰 수 없었다. 그는 “사고 이후 잠을 못 잤고, 거리에 나앉을 상황에 눈앞이 캄캄했다”고 했다.

얼마가 지났을까.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은 사고 전반에 대해 보고를 받았다. 이 사장이 입을 뗐다. 첫마디는 “이번 사고로 홍 씨의 상심이 클 것”이라는 염려의 말. 이 사장은 이내, “고의로 사고를 낸 것 같지는 않으니 집을 방문해 보고 상황이 어떤지 알려 달라”고 말했다.

신라호텔 관계자는 사고 이틀 후인 27일 홍 씨를 방문했다. 호텔 관계자는 “낡은 빌라의 반지하층인 집에 몸이 성하지 않은 홍 씨가 홀로 누워있었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이어 “사고 변상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지도 못할 만큼의 생활 형편을 보고, (사고 후유증을 우려해 사간) 우족과 소고기 등만 놓고 나왔다”고 했다.

고령인 데다, 몸이 성치 않고, 형편도 여의치 않은 홍 씨의 사정을 들은 이 사장은 ‘통 큰’ 방안을 낸다. 발생한 피해를 사측에서 해결하겠다는 내용. 일은 일사천리로 진행됐고, 그다음 날인 28일, 홍 씨에게 이 내용이 전달됐다. 홍 씨는 “뇌경색인 아내의 치료비도 부족한 상황에서 감당할 수 없는 사고로 어쩔 줄 몰랐지만 뜻밖의 소식에 마음을 놓았다”면서 “사죄해야 하는 입장인데 외려 이런 큰 호의를 받아 어떻게 감사를 표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거듭 말했다.

이 사장의 선행은 사실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제주도 연동에 가면 고기국수집 ‘신성할망식당’이 있다. 한 부부가 8년간 영업해온 약 66㎡ 규모의 작은 식당이다. 그런데 사정은 좋지 않다. 부부는 오랜 투병 끝에 세상을 떠난 딸의 죽음으로 실의에 빠져 살았다. 병원비 때문에 진 빚도 상당하다. 이부진 사장은 신라호텔 주방장과 직원들에게 이 식당에 ‘재능기부’를 하자고 제안했다. 주방장과 직원들은 지난 4개월간 이 식당을 수차례 찾아 메뉴 개선방안과 신메뉴 개발 등을 도왔다. 덕분에 부부는 새 출발을 할 수 있었다. 지난달, 이부진 사장은  호텔 임직원들과 직접 이 식당을 찾아가 새 출발을 축하하기도 했다.

한편 신라호텔은 지난해 총 835억원을 투입해 7개월간 전면적인 리노베이션을 진행했다. 지난 3월 14일 열린 정기 주주총회에서 이부진 사장은 “지난해 리뉴얼 오픈한 서울호텔의 서비스 품질은 물론 기업 가치를 끌어올리겠다”면서 “지금까지 준비해온 시스템과 역량을 바탕으로 2014년을 성장과 도약의 원년으로 만들겠다”고 밝혔다. 이 사장은 또 “싱가포르 창이공항 면세점의 향수, 화장품 사업을 성공적으로 진행하겠다”고도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