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더위에 의욕과 함께 입맛도 달아나는 여름이다. 나른해진 몸에 보양식도 좋지만 뭐니 뭐니 해도 ‘밥이 보약’이다. 경상남도 통영에 무더위에 달아난 입맛 살려줄 ‘밥’이 있다. ‘충무김밥’이다. 매콤 짭짤한 무김치에, 포슬포슬한 흰 쌀밥, 기름 안 바른 생김, 이 세 가지 조합만으로 맛을 내는 충무김밥은 4계절 제철이 따로 없지만 ‘여름’에 더 진가를 발휘하는 음식이다.

그 이유는 이렇다. 1960~70년 전, 부산과 여수, 거제 등을 오가는 뱃길의 중심지였던 통영. 통영의 여객터미널에는 언제나 뱃사람과 상인들이 북적였고, 이들을 상대로 한 요깃거리는 늘 인기였다. 삶은 감자나 꿀빵, 김밥 등이 주 메뉴였다. 그러나 유난히 더운 통영의 여름 날씨에 김밥은 쉽게 상해버리기 일쑤였다.

당시 팔던 김밥은 지금과 다를 바 없는, 단무지와 시금치, 김치 등이 들어간 보통 김밥이었다고. 더운 날씨에 상한 김밥을 보며 속상해 하던 차에 현재의 뚱보할매김밥집 어두리 할머니(1995년 작고)가 밥과 속을 분리하는 방법을 고안해 냈다.

더운 밥과 반찬이 만나 쉬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복안이었다. 한입에 쏙 들어갈 손가락만한 크기로 맨밥과 김을 단단히 말고, 매콤한 무김치(슥박김치)와 주꾸미나 오징어를 반찬으로 분리해 팔자, 쉽게 상하지도 않고 일반 김밥보다 더 잘 팔렸단다.

특히 길다란 대꼬챙이에 무김치, 주꾸미무침을 함께 꽂아 팔자 뽑아 먹는 재미가 좋다며 인기가 많아졌다고. 이를 본 주위 상인들도 하나 둘 충무김밥을 만들어 팔기 시작해 현재에 이르렀다. 강구안 항남동 문화마당 분수대 부근과 여객선터미널 부근에 50여 개의 음식점들이 모여 충무김밥거리를 이루고 있다.

더운 여름, 상하지 않는 김밥
충무김밥의 기본 상차림은 매우 간단하다. 충무김밥과 슥박김치라고 불리는 무김치, 그리고 시락국(시래기국의 경상도 방언)이 전부다. 특별한 재료가 들어가지 않는 탓에 차별화된 맛이 있을까 싶지만, 나름대로 특색 있는 충무김밥들도 등장했다. 초창기 충무김밥처럼 꼬치에 반찬을 끼워 팔기도 하고, 김치 외에 오징어, 호래기(작은 꼴뚜기)나 홍합 무침을 반찬으로 내는 곳도 있다.

하지만 까만 생김과 흰 쌀밥, 빨간 슥박김치의 3색조합은 어느 가게에서나 변함없는 충무김밥의 ‘삼합(三合)’이다. 1인분에 4000원이며 손가락만한 김밥이 8개 나온다. 보기엔 양이 적은 것 아닌가 싶지만, 성인 남자가 먹기에도 모자람이 없다.

통영에서 충무김밥을 처음 먹어본 관광객들은 하나 같이 “생각했던 것과 다르다”고 말한다. 이제껏 휴게소를 비롯한 타지에서 맛본 충무김밥과 김치 양념 맛이 달라서다.

짠맛보단 시원한 맛과 매콤한 맛이 우선인 슥박김치는 사각사각 씹는 맛이 일품이다. 여느 김밥과 다른 점은 또 있다. 길 떠나는 어부들을 상대로 팔던 음식이어서 젓가락 대신 이쑤시개를 사용한다. 초간단 식사다. 통영에서는 간식 삼아 배달시켜 먹는 경우도 많다.


통영의 ‘간식’ 하면 ‘오미사꿀빵’도 빼놓을 수 없다. 경주에 황남빵이 있다면, 통영엔 꿀빵이 있다랄까. 오미사꿀빵 역시 충무김밥 마냥 더위에도 잘 상하지 않고, 하나만 먹어도 배가 불러 뱃사람들에게 인기가 좋았던 추억의 간식거리이다.

오미사꿀빵은 1960년대 초, 별 다른 상호 없이 배급받은 밀가루로 빵을 만들어 가판에서 판매한 것이 시작이었다고.

주전부리 좋아하는 여고생들에게 소문이 나면서 상호 없던 꿀빵 가게 옆, 세탁소 이름인 ‘오미사’로 불리게 되었고, 그 후 오미사 세탁소가 없어지자 자연스럽게 꿀빵집이 ‘오미사’라는 간판을 내걸게 되었다.

‘꿀빵’이라는 정직한 이름처럼 팥이 든 팍팍한 도너츠에 풍성하게 꿀을 바른 모양새다. 하루에 만들어 놓은 양만 판매하고 문을 닫는다. 빈손으로 돌아오지 않으려면 오전에 찾아가는 편이 좋다. 한 팩 10개에 7000원이다. 원조 오미사꿀빵(055-646-3230)은 통영시 도남동 498-1 번지 성우상가 1층에 있다. 택배로 주문을 받기도 한다.

새 옷 입은 동피랑 마을
충무김밥 거리와 인접한 동피랑 마을은 통영만의 서정적인 분위기를 물씬 느낄 수 있는 곳이다. 동피랑 마을은 몇 년 사이 출사 여행지로 소문이 나더니 이젠 통영의 대표 관광지로 자리 잡았다. 동피랑이란 동쪽과 피랑(벼랑의 사투리)이 더해진 말로, 동쪽의 언덕이라는 뜻.

언덕배기 달동네였던 이곳은 지난 2008년 ‘푸른통영 21’이라는 시민단체의 주관으로 벽화 그리기가 진행된 이후 유명세를 타기 시작했다. 뱅글뱅글 돌아가는 소라고둥 같은 언덕길을 따라 강구안이 한눈에 조망되는 언덕마을까지 오르는 동안, 동화 같은 벽화들이 관광객을 반긴다.

지난 3월에는 낡은 벽화들 위로 새로운 벽화가 그려졌다. 마을을 돌아보는 데는 한 시간 내외의 시간이 소요되며, 사진촬영 시에는 거주민들을 배려하고 예의를 지키는 자세가 필요하다.

통영의 많은 볼거리 가운데 꼭 하나를 골라야 한다면, 한눈에 한려수도를 조망할 수 있는 한려수도 조망케이블카를 추천한다. 미륵산에 설치된 한려수도 조망케이블카는 국내 최장(1975m)의 케이블카로, 8인승 곤돌라를 타고 약 10분가량 올라 미륵산 상부 정류장에 도착한다. 상부 정류장에 오르는 동안 예상치 못했던 공포감이 느껴지는데, 미륵산의 높이(461m)와 시속 12km에 이르는 속도 때문이다.

통영여행 TIP

충무김밥
통영시 중앙동 ‘낮에 가장 아름다운 항구’로 알려진 강구안 일대에 충무김밥 거리가 형성되어 있다. 원조 충무김밥 집은 뚱보할매김밥(055-645-2619)이며, 주변 가게에 비해 건물을 높이 올린 한일김밥(055-645-2647)은 작은 포장가게에서 출발해 유명해졌다. 지역주민에게는 엄마손 충무김밥(055-641-9144)을 추천받았다. 1인분(김밥 8개) 4000원이다.

오미사꿀빵
통영시 도남동 498-1 성우아파트 상가 1층. 오전 10시경에 문을 열고, 빵이 다 팔리면 언제든 문을 닫는다. 1팩 10개에 7000원(055-645-3230). www.omisa.co.kr
동피랑마을…
통영시 정량동 및 태평동 일대 산비탈. 통영시청 문화예술과(055-650-4550)로 문의하면 된다. 앉아서 쉴 수 있는 공간이나 상점은 따로 없다.

한려수도 조망케이블카
경남 통영시 도남동 산 63-2. 날씨가 좋지 않은 날에는 운행 여부를 확인하는 편이 좋다. 매월 둘째, 넷째 주 월요일은 휴무(055-649-3804~5). www.ttdc.co.kr

김수진 여행 전문기자 pen7355@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