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눈 오는 날엔 치맥인데” 얼마전 종영한 국내 TV 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의 대사 한마디가 중국 치킨 시장을 흔들어놓았다.

중국에 진출한 국내 치킨 프랜차이즈 앞에서는 치맥을 즐기기 위해 세 시간씩 줄을 서는 진풍경이 빚어지고 있다고 현지 언론들은 전했다. ‘별그대’ 인기와 더불어 드라마 속 주인공 천송이(전지현 분)가 치맥을 맛있게 먹는 장면이 중국인들의 입맛마저 자극한 것. 중국 현지에서는 천송이가 치맥을 언급한 이후 치킨과 맥주를 들고 인증사진을 찍어 SNS나 블로그에 게시하는 것이 유행처럼 번지고 있을 정도다. AI로 울상이던 중국 양계업계도 치킨 판매가 50%가량 급증하면서 한시름 덜었다는 보도도 잇따랐다.

아무리 한류 붐이라고 해도 프라이드치킨은 해외에서 먼저 뿌리내린 음식이기 때문에 국내 치킨 프랜차이즈가 현지인에게 어필하기란 힘든 게 사실이다. 특히 KFC 등 글로벌 프랜차이즈가 미국을 비롯한 세계 여러 지역에서 터줏대감처럼 자리 잡고 있는 상황에서 이름조차 생소한 국내 프랜차이즈가 해외시장에 진출하기란 쉽지 않았다.

지금은 한국 치킨 열풍

현재 국내 치킨 프랜차이즈가 진출한 국가는 대략 60여 개국. 해외 매장수는 400개에 육박한다. 실적도 점차 좋아져 제너시스BBQ의 경우 지난해부터 중국과 베트남, 말레이시아에서 영업흑자를 내기 시작했고, 미국과 중국에 진출한 교촌치킨도 매출이 급성장 추세를 보이고 있다. 현지 반응도 뜨거웠다. 미국 NBC 방송이 뽑은 ‘뉴욕의 베스트 치킨 윙’에서 교촌치킨 매장의 ‘그릴 윙’이 톱 3에 들어갔다. 제너시스BBQ의 올리브유나 간장치킨은 중국에서 ‘웰빙’ 음식으로 소개되기도 했다.

이와 같은 결과를 얻기까지 국내 치킨 프랜차이즈는 해외 시장에서 적지 않은 시행착오를 거듭했다. 90년대 초 한국인의 해외 이주가 시작되면서 국내 치킨 프랜차이즈도 해외 진출에 물꼬를 텄다. 미국과 중국 등 한인들이 많이 사는 지역에 가맹점을 내는 방식으로 해외 진출이 진행됐다. 하지만 한국인을 대상으로 영업하다 보니 그 성장성은 미비했다. 더구나 ‘주먹구구식 밀어내기’ 진출로 현지에서 브랜드 이미지 구축과 홍보 방법이 부족했고, 사업 정착 때까지 투입해야 하는 초기 투자비용도 제대로 산정하지 못해 실패하기 일쑤였다.

하지만 2000년대 후반 국내에서 안정적인 인지도와 실적을 확보한 업체들이 차별화와 현지화 전략을 꾀하면서 상황은 달라지기 시작했다. 이들 기업들은 체계적인 매뉴얼을 만들어 해외 시장에 진출했다. 현지 핵심인재를 영입하고 브랜드 이미지를 구축하기 위해 다양한 마케팅 수단을 활용했다. 이를 통해 현지인의 입맛과 문화, 식생활 습관, 소비 패턴 등 시장 특성을 치밀하게 분석해 성공 가능성을 높였다. 또한 직접투자 방식에서 벗어나 마스터 프랜차이즈(MF) 등 현지제휴를 늘려 시장 진출 시 필요한 비용과 리스크(위험요소)를 최소화했다.

최근 2~3년 동안 대중문화 부문에서 한류 열풍이 불고 있다는 점도 치킨 프랜차이즈에 호재로 작용한다. 더욱이 국내 치킨 프랜차이즈가 주 타킷으로 여겨온 동남아 시장의 높은 성장성도 시장 확대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무역투자진흥원은 ‘동남아 유통시장 진출 전략’이라는 보고서를 통해 “중국과 동남아는 젊은 층 인구 비중이 높고 장기적으로 볼 때 소비 시장으로 성장할 잠재력이 큰 데다 적극적인 문호 개방으로 이질적 문화에 대해 배타적이지 않다”고 설명했다. 이어 “중국과 동남아 시장은 한류 열풍의 진원지로 한국에 대한 이미지 자체가 좋다”고 말해 향후 국내 치킨 프랜차이즈의 시장확대가 예상된다. 실제 BBQ는 지난해 동남아에서 영업부문 흑자 전환에 처음으로 성공했다. 베트남과 말레이시아의 흑자 규모는 대략 각각 3억~4억원에 불과하지만, 동남아에서의 가능성을 처음 확인하게 됐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는 게 회사 측의 설명이다.

잘 조화된 한국식 현지화와 고급화 전략

동남아와 미국에서는 한국 특유의 ‘양념 치킨’이 큰 인기다. 국내 치킨 프랜차이즈는 패스트푸드 위주인 미국의 프라이드 치킨과 차별화하기 위해 ‘한국식 치킨’을 선보인 것. 프라이드 치킨만 먹어본 사람들은 간장이나 고추장으로 맛을 낸 양념 치킨의 독특함과 색다른 맛에 열광하기 시작했다. 업계에서도 제너시스BBQ나 교촌치킨 등 국내 프랜차이즈들이 고추장이나 간장 치킨 등 ‘한국식’ 특징을 살려 현지인들을 공략했다는 점이 해외 시장을 유지하는 원동력이 됐다고 평가한다.현지화 작업도 필수적으로 진행했다. 한국의 간장과 고추장 맛으로 대표 메뉴로 자리 잡았지만, 치킨을 식사로 인식하는 현지인들의 인식 때문에 다양한 추가 메뉴도 개발했다. 특히 치킨을 주요 요리로 식단을 꾸리기 위해선 곡물 메뉴가 필요했던 것. 한국 매장에 없는 치킨샌드위치가 대표적인 현지화 메뉴다. 또한 구운 클로렐라 빵에 그릴치킨과 한국식 쌈무를 넣어 웰빙과 한국식 개념을 접목해 다이어트와 건강에 관심이 높은 젊은 층의 인기를 얻었다. BBQ의 경우 베트남인들이 좋아하는 치킨에 볶음밥·감자튀김·샐러드를 조합한 세트메뉴와 튀김가루에 채소를 섞은 채소 치킨 등 현지화 메뉴로 인기를 끌기도 했다.여기에다 저가 이미지에서 벗어나 패밀리레스토랑급 인테리어를 적용한 고급화 전략도 해외 진출에 주효한 요소로 꼽힌다. 교촌치킨은 2011년 뉴욕 맨해튼 엠파이어스테이트빌딩 앞에 대형매장(플래그십 스토어)을 개설하는 등 매장의 위치와 크기, 인테리어에 집중해 미국 주류사회에 진출했다. 맨해튼의 플래그십 스토어는 이 지역 직장인들을 대상으로 한 레스토랑형 매장이다. 1층은 샐러드바와 테이크아웃, 2층은 레스토랑으로 꾸몄다. 심플하고 밝은 분위기의 인테리어로 고객들의 시선을 잡았다.BBQ도 패밀리레스토랑 개념의 ‘프리미엄 카페’를 올해부터 미국에 열 계획이다. BBQ에 따르면 현재 LA의 3개 직영점은 리노베이션을 진행 중이며, 4~6개월 뒤엔 ‘현지화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맨해튼에도 이 방식으로 진출할 예정이다. 프리미엄 카페는 가족 중심 활동이 많은 미국인의 생활방식과 맞아떨어지는 데다, 고급화를 요지로 하기 때문에 해외 시장에서도 상품성이 있다는 판단이다.

아직 갈 길은 멀다

최근 해외 성장세에 자신감을 얻은 교촌치킨은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등 지역 확대에 나서고 있다. BBQ도 2020년까지 ‘세계 최대 프랜차이즈 그룹으로 도약한다’는 목표하에 글로벌 확장에 열을 올리고 있다. BBQ와 교촌의 성공에 자극받아 굽네와 네네 등 조심스럽게 진행돼온 다른 치킨 브랜드의 해외 공략도 더욱 본격화할 전망이다. 하지만 치킨 프랜차이즈의 해외 진출을 경계하는 목소리도 높다. 해외 진출이 생각보다 결코 쉽지 않기 때문이다. 실제 해외 시장 진출에 가장 적극적인 BBQ의 경우를 보더라도 2003년 진출 이후 10년간 중국 시장에서 적자를 내다 지난해 비로소 흑자 전환에 성공했다.

업계 한 관계자는 “해외 진출한 프랜차이즈 매장 대부분이 적자다. 일부 매장은 꽤 많은 매출을 올리기도 하지만 해외 진출에 든 비용과 운영비를 고려하면 사실상 적자인 경우가 많다”고 지적했다. 해외 진출을 하기 위해선 초기 투자 비용이 많이 든다. 이를 감내하기 위해서는 우선 마케팅, 연구개발(R&D), 생산 및 물류 효율성, 사후 서비스 네트워크 구축 및 관리 등 기능적인 측면에서 자사의 역량을 냉정하게 파악해야 한다. 몇몇 기업의 성공사례와 한류바람만 바라보고 무작정 해외 진출을 시도하기보다 자사의 역량을 확인하고 경쟁력을 제고한 후에 해외 진출을 선언해도 늦지 않다는 게 전문가들의 전반적인 평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