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 규제 개혁 관련 발언

“진돗개는 한 번 물면 안 놓은다. 진돗개 정신으로 해야 한다” (2월5일 국무조정실 업무보고)

“규제 개혁이라고 쓰고 일자리 창출이라고 읽는다” (2월19일 국토∙해양∙환경분야 업무보고)

“금테두리 둘러 만든 달력도 새해가 되면 필요가 없다” (2월24일 민생경제 분야 업무보고)

“천추의 한을 남기면 안 된다. 기회가 날마다 있는 게 아니다” (2월25일 국민경제자문회의)

“쳐부술 원수, 암덩어리로 생각하고 규제를 확확 들어내야” (3월10일 수석비서관회의)

 

박근혜 대통령의 규제 개혁 의지를 나타내는 표현이 갈수록 수위를 높여가고 있다. 취임 초기만 해도 ‘손톱 밑 기사’나 ‘신발 속 돌멩이’로 은유적이면서 점잖은 표현을 사용하더니 이제는 아주 ‘천추의 한’이나 ‘쳐부술 원소, 암덩어리’ 같은 원색적인 단어도 서슴지 않는다. 집권 2년차에 접어든 박 대통령이 경제에 대한 이렇다할 성과를 내지 못해 ‘규제 개혁’에 ‘올인’하고 있다는 분석이 주를 이루고 있는 가운데, 관료조직이 대통령의 의중을 제대로 받들지 못하고 있다는 원망도 읽힌다. 대통령은 후보자 시절부터 핵심공약으로 ‘세금을 줄이고 규제를 풀고, 법질서를 바로 세운다’는 ‘줄푸세’를 내세웠지만 아직까지 가시적인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박 대통령의 의중과 달리 또 하나의 ‘규제’ 추가가 코 앞으로 닥쳐 왔다. 상대는 국가경제와 수출에서 막대한 비중을 차지하는 자동차산업이고 결과는 내수시장 위축과 글로벌 경쟁력 약화를 우려한다. 

정부는 2015년부터 온실가스를 많이 배출하는 차량을 구매하는 소비자에게 부담금을, 온실가스를 적게 배출하는 차량을 구매하면 보조금을 지원하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저탄소협력금제도’를 시행한다는 방침이다. 이에 국산 자동차업계는 사실상 차값 인하 효과가 있는 보조금 구간에는 대부분 수입 하이브리드, 디젤차가 차지하고 국산 경차나, 소형디젤차, 소형차는 보조금∙부담금이 없는 중립 구간에 해당되어 혜택이 없는 반면, 가장 많은 구매가 이뤄지는 배기량 2.0 전후 대중차 모델은 차값 인상 효과가 있는 부담금 구간에 몰려 있어 최대 700만원의 가격 인상 부담을 져야 한다고 반발한다. 결국 “국산차에 부담금으로 수입차 보조금을 지원해 주는 꼴”이라며 역차별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것이다.

한국자동차산업은 자동차와 부품을 합해 2012년 718억 달러의 수출실적을 올려 우리나라 전체 수출금액에 13.1%를 차지한다. 같은 해 전체 무역수지 흑자는 7.5% 감소했지만 자동차산업은 전년대비 5.5% 증가한 흑자를 기록했으며 그 규모는 한국 전체 무역흑자의 2.2배에 달한다. 또 한 자동차산업 직간접 고용인원은 175만(2010년 기준)여명이고 2011년 전체 제조업 생산액 가운데 11.4%, 부가가치로는 제조업 전체에 10.6%를 차지하는 한국경제의 근간이라도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같은 전체 자동차업계가 ‘저탄소협렵금제도’가 도입되면 국내 시장을 수입차로 잠식 당할 것이라며 ‘위기’라고 목소리를 높인다.

정부가 추진 중인 탄소세 부담을 적용하면, 현대차 쏘나타와 싼타페, 기아차의 K5, 쌍용차의 코란도C 등이 최대 700만원까지 부담금이 붙게 되고 소형차인 i30, 엑센트, 모닝 등이 25만원 정도의 보조금을 받는 반면, 도요타 프리우스나 푸조, 렉서스CT200h 등이 최대 300만원의 보조금을 받는다. 또한 국내 수입차 열풍의 주축인 BMW520d, 벤츠E220 등은 중립 구간이지만 2017년부터는 25만원 가량의 보조금을 받게 된다.

물론 탄소세 도입을 주장하는 측은 ‘지금까지 기술 개발에 소원’했던 국산차 업체를 꾸짖는 목소리도 없지 않지만, 제조사는 현실적인 기술력 차이를 인정하면서도 “정부가 2000년 중반까지 엄격한 배출가스 기준을 제시해 경유승용차 시장을 사실상 억제해 왔다”고 불만을 토로한다. 또 다른 한편으로 세계 5대 자동차 생산국 중 가운데, 이 같은 ‘규제’를 도입하는 나라는 프랑스 한 나라 뿐이며, 이마저도 자국 자동차 산업을 보고하기 위한 수단으로 활용됐다고 반박한다. 

자동차 업계는 환경부가 모델로 삼고 있는 프랑스 ‘보너쉬-말뤼쉬(Bonus-Malus)’는 디젤엔진과 소형차에 강점을 가지고 있는 르노, 푸조 등 자국 메이커를 보호하기 위한 무역장벽 역할을 담당했다는 것이다. 실제로 ‘보너쉬-말뤼쉬’가 본격 시행된 2008년부터 프랑스 메이커 판매는 감소에서 벗어나 전년대비 2.1% 증가하고 성장세를 이어가던 수입차 메이커 판매는 3.9% 감소하는 효과를 낳았다.

다른 한편으로 ‘실효성’에 의문을 제기한다. 2020년까지 우리나라 수송 부문 온실가스 배출량은 약 1억 톤으로 예상되어 ‘저탄소협력금제도’ 도입을 통한 감축량이 약 15만8천톤으로 총 온실가스의 0.15%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국내 대표 차종 쏘나타의 경우를 예로 들면 협력금제로 75만원의 부담금이 붙지만 년간 2만km씩 10년간 운행시 CO2 배출량을 유럽 온실가스 배출권으로 환산하면 약 19만원에 불과해 지나친 부담이라는 지적이다. (10년간 운행시 배출 C02 총량 : 147g/km X 20,000km X 10년 = 2.94톤 / 유럽연합 기준 환산 : 2.94톤 X 4.5€ X 1,463원 = 약19만원)

또한 지난해 국내시장에 판매된 신차 중 ‘저탄소협력금제도’ 대상 차종 126만대를 직접 적용해 보니 신차 구매자가 받을 수 있는 보조금 총액은 443억원인데 반해, 내야할 부담금은 1조1,090억원에 달해 부담금 총액이 보조금의 25배가 넘고 부담금으로 보조금을 지급하고도 무려 1조647억원이 남는 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정부가 이 부담금으로 세수확보에 이용할 목적이 아니라면 자국 자동차산업에 치명타를 가져올 ‘규제’ 도입을 너무 서두른다는 비판이 힘을 얻는다.

상황이 이렇자 뒤늦게 윤상직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저탄소협력금제도가 수입차에 혜택을, 국산차에 타격을 줄 것이라는 우려에 공감한다”며 제도 전반의 재검토 의지를 밝혔으나, 다른 곳에서는 원안대로 추진하겠다는 의지를 확인하며 부처간 불협화음을 보이고 있다. 국산 자동차업계의 지대한 영향을 가져올 이 ‘규제’는 관련업계 의견 청취 후 4월중 구체적인 방안을 내놓는다는 입장이라 귀추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