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직의 힘이다. 그리고 마케팅도 한몫했다. 이 두 가지를 제외하고 다른 분석은 거의 불가능하다. 대형 보험사들의 경쟁력을 놓고 하는 말이다.

최근 한 대형 보험대리점 소속 설계사와 동행했다. 아니 좀 더 솔직히 표현해 귀찮을 정도로 따라다녔다는 표현이 맞다. 그가 어떻게 하루를 보내는지 보고 싶었다. 다른 것들은 대부분 보험설계사와 비슷했다. 조금 일찍 출근해 조금 늦게까지 일한다. 그러나 명확하게 다른 점이 있었다. 가망고객을 만나러 가기 전 꼼꼼하다 못해 철저하게 준비했다.

링컨은 이런 말을 했다. “나무 베는 데 한 시간이 주어진다면, 도끼를 가는 데 45분을 쓰겠다.” 그 설계사의 모습이 바로 그랬다. 완벽하게 준비하고 가망고객과 첫 번째 약속에 나섰다. 참고로 가망고객은 지인의 소개로 만나는 것이었으며, 임신 중이었다. 태아보험에 관심이 있었다.

약속 장소인 카페에 도착, 10분 정도 기다린 후 가망고객과 만났다. 그 설계사는 당당히 고객에게 커피를 대접해줄 것을 요청했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다. “저에게 가입하시든 안 하시든 상관없습니다. 저는 보험에 대한 정보를 드리러 온 것입니다. 정보를 제공하는 비용은 커피입니다.”

커피가 나오자 그는 가방에서 자신이 만든 서류를 꺼냈다. 그리고 옆에서 기자인 나는 그 서류를 보고 입이 떡 벌어질 수밖에 없었다. 그가 정리한 서류는 태아보험을 완벽하게 분석한 자료였다. 각 질병에 따른 담보, 보장내용, 각각의 특약에 따른 상세 보험료가 빼곡히 적혀 있었다. 아울러 태아보험 판매사의 대부분 정보가 녹아 있었다.

물론 가망고객은 이런 자료를 해석하기가 쉽지 않다. 따라서 그는 약 1시간 정도 특약들을 설명했다. 그런데 여기서도 다른 설계사들과 차이가 있었다. 단지 상품을 설명하는 게 아니라 질병에 걸릴 확률, 즉 보장받을 수 있는 확률을 고객이 정말 이해하기 쉽게 설명했다. 예를 들어 어떤 질병에 걸릴 확률이 어느 정도이며, 이를 위해 어느 정도 보장을 받으면 적당하다는 식이었다. 다시 말해 정말 철저하게 고객의 입장에서 설명해주는 것이다.

설명이 끝나자 두 번째 서류를 꺼냈다. 이 서류는 첫 번째 서류의 핵심 보장을 간소화해 보험료 1000원 이상의 특약들로 구성한 자료였다. 보험료 1000원 이상은 그 질병이나 사고가 발생 확률이 비교적 높다. 가망고객의 입장에서 실질적으로 대비해야 할 보험이다.

첫 번째 자료에서 고객 스스로 해석할 수 있을 정도로 자세한 정보를 준 후 두 번째 서류를 꺼낸 다음에는 고객 스스로 판단할 때까지 여유 있게 커피를 마시며 기다릴 뿐이었다. 십여 분 후 고객은 판단을 내렸다. 그러자 그는 청약을 위한 두 번째 약속을 잡고 헤어졌다.

약 2시간 만에 처음 보는 사람과 계약을 한 것이다. 도끼를 완벽하게 갈고 나무를 베니 일이 쉬울 수밖에 없었다.

다음 약속을 위해 카페를 나서면서 나는 두 가지 궁금한 것을 물었다.

“보통 몇 번 미팅 후 계약이 되나요?” “왜 대형 보험사의 상품은 비교하지 않나요?”

그의 대답은 보통 세 번 미팅 후 계약되지 않으면 더는 귀찮게 하지 않는다고 했다. 완벽한 정보를 줬는데 가입하지 않으면 비슷한 보험을 파는 지인이 있거나, 계약할 생각이 없다는 것이다. 아울러 그는 대형 보험사는 상품 경쟁력에서 중소형사를 따라올 수 없다고 했다. 보험사 인지도와 규모의 경제로 판매될 뿐 납입하는 보험료 대비 보장받는 보험금은 매력이 없기 때문.

이런 얘기를 듣고 나는, 최근 한 대형 A보험사가 전통적으로 태아보험을 많이 판매하는 B보험사의 실적을 넘어섰다고 반박했다. 그러자 그는 “그건 상품의 힘이 아니라 조직의 힘입니다. 설계사 중 몇 명이나 질병에 걸릴 확률까지 고객에게 설명해 줄까요?”라고 반문했다. 아울러 “결국 상품을 권해야 보험 산업의 신뢰도도 높아질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일부 회사들은 상품을 좋게 만드는 것이 아닌 이미지만 좋게 만들려고 해요”라며 “부족한 정보로 비싼 상품을 산 이후 나중에 더 좋고 저렴한 것을 보면 후회되는 것은 보험도 마찬가지입니다. 안 좋은 상품을 추천하면 결국 신뢰에 금이 갑니다”라고 말했다.

그의 말을 듣고 상품 경쟁력이 아닌 규모의 경쟁력으로 확장하고 있는 몇몇 보험사들이 떠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