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직의 성과에서 리더십의 비중은 얼마나 되는가? 쓰러져가는 조직에 새로운 리더가 부임해 턴어라운드시킨 이야기가 심심치 않게 등장한다. 그리고 그 경영자는 스타로 각광을 받는다. 또 조직의 리더가 인재를 등한히 해 ‘공든 탑’이 하루아침에 무너지는 경우도 심심치 않다. 반면에 조직의 리더가 교과서에 나오는 리더십과 영 엇박자로 어긋나는데도 조직의 성과가 날로 상향선을 그리는 경우가 있다. 이른바 ‘시운(時運)’ 내지는 천운의 가호 때문일까. 이럴 때 사람들은 ‘리더십의 효용’에 의문을 가지곤 한다.

인재경영과 관련해 <논어>에 이와 유사한 의문이 제기된다. 임금이 엉망인데 나라가 잘 다스려지는 이유는 무엇인가. 무슨 이야기인지 살펴보자.

춘추전국시대 때 위나라 영공은 극단적 성격인 데다 색에 빠져 나라의 정사를 게을리했다. 그는 남색에 빠져 ‘미자하’란 미소년을 가까이해 여도지죄(餘桃之罪: 먹다 남은 복숭아를 준 죄라는 뜻으로, 사랑을 받을 때는 용서가 되던 일이 사랑하는 마음이 식고 나면 거꾸로 화가 되는 경우를 말한다)란 옛이야기를 낳게 한 바로 그 인물이다.

설상가상으로 위영공의 부인은 공자에게 스캔들을 일으키려 했던 그 유명한 남자(南子)다. 군주는 물론이고 부인까지 안팎이 문제이니 나라가 금방 망해야 순리였다. 당시 위나라 정권이 위영공 때에 와서 망한다는 여론이 세간에 분분했다. 그런데도 위나라는 멀쩡하니 날로 부강하기만 했다. 그것을 궁금하게 여긴 노나라의 실권자 계강자가 공자에게 물었다.

“저렇게 위정자가 엉망인데도 왜 위나라는 망하지 않습니까?”

이에 대해 공자는 이렇게 진단을 내린다.

“중숙어가 외국 사절을 대접하고 축타는 종묘를 다스리며, 왕손가는 군대를 담당하고 있습니다. 무릇 이와 같은데 어찌 위나라가 망하겠습니까?”(子言衛靈公之無道也。康子曰: 夫如是,奚而不喪? 孔子曰: 仲叔圉治賓客,祝鮀治宗廟,王孫賈治軍旅,夫如是,奚其喪?)

한마디로 각 분야의 인재가 실무를 꽉 틀어쥐고 일을 하기 때문에 문제가 없다는 것이다. 허리가 튼튼하니 머리가 흔들려도 튼튼하게 지지할 수 있다는 이야기쯤으로 해석할 수 있다.

중숙어, 왕손가, 축타 이 세 사람은 모두 위나라 신하다. 아주 뛰어나지는 않았으나 각각 맡은 분야를 잘해낼 만했다. 영공은 그들을 각자의 재주에 맞추어 제자리에 등용하였다. 위영공은 개인적으로는 무도해서 마땅히 지위를 잃어야 한다. 하지만 공적인 면에서 이 세 사람을 등용해 적재적소에 배치할 수 있었으니 인재 활용능력은 출중해, 그 나라를 보존하기에 충분하였다. 위영공 재위 시 채나라와 외교회담을 할 일이 있었다. 이 때 위영공은 축타를 데리고 갔다. 이 회합에서 채나라가 위나라의 지위를 낮추려 하자, 축타는 이 일을 관장하는 주왕실의 장홍에게 일장 연설을 했다. 이로 인해 위나라가 채나라보다 상위에 서게 되었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공자가어>에는 이보다 더 자세한 설명과 가외 인물들이 등장한다. 공자는 위영공의 개인적 스캔들에도 불구하고 그의 인재등용능력을 진목공과 함께 견주며 높이 평가한다. 공자는 “궁중의 사적인 문제부터 공적 천하까지 모두 바르게 한 것은 고대 성왕뿐이며 오늘날의 임금들에게 개인적 인품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을 다 갖추라고 요구하는 것은 무리”라고 말한다. 공자는 비록 위영공은 사적으로 문란하지만 공적인 면, 인재관리에서 본받을 만한 점이 인재의 적재적소 등용이라고 말한다. 도를 갖추지 못한 임금도 이렇다면, 도를 갖춘 임금이 천하의 현명한 인재를 등용할 수 있으면 어떻겠는가는 반문이다.

위영공은 현명한 인재를 등용할 줄 알 뿐 아니라 현자를 등용하지 못하면 녹을 주어서라도 먹고살 수 있게 지원한다. 위나라에는 먹고살기 힘든 선비가 없다며 인재우대책을 높이 평가한다. 실제로 공자 역시 위나라에서 벼슬은 하지 않았지만 상당한 우대를 받았다. 공자가 노나라를 떠나 주유천하를 할 때, 첫 유세대상으로 위나라 영공을 택한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도를 갖추지 못한 임금인 위영공도 이렇다면, 도를 갖춘 임금이 천하의 현명한 인재를 등용할 수 있음에는 어떻겠는가. 그렇다면 현명한 인재등용의 방법은 무엇인가.

리더십의 최우선순위는 인재의 적재적소 배치다. 적재적소 배치에서 중요한 것은 완벽함보다 강점을 발견하는 것이다. 인재타령을 하면서도 군주들이 실제로 인재난을 겪는 것은 ‘보는 눈’이 없기 때문이고 결국 보는 눈이 없다는 것은 모든 것을 갖춘 인재를 원하기 때문이라고 비판한다. 군주의 모든 결점을 커버해주는 완벽한 인재를 찾으려는 과욕이 ‘인재를 뽑기도, 쓰기도’ 어렵게 한다는 말이다.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군자는 섬기기는 쉬우나 기쁘게 하기는 어렵다. 바른 도리가 아닌 방법으로 하면, 군자는 기뻐하지 않는다. 군자가 사람을 부릴 때는 각자의 재능과 기량에 맞게 쓴다. 이와 반대로 소인은 섬기기는 어렵고 기쁘게 해주기는 쉽다. 비록 도리가 아닌 방법으로 기쁘게 해주어도 그는 기뻐한다. 또 소인은 사람을 부릴 때 한 사람에게 모든 것이 갖추어지기를 바란다.”(子曰: 君子易事而難說也,說之不以道,不說也。及其使人也,器之。小人難事而易說也,說之雖不以道,說也。及其使人也,求備焉-자로-)

인재경영을 잘한다는 것은 강점대로 쓰는 것이다. 기지(器之)란 사람의 재능과 도량에 맞춰 잘 쓴다는 의미다. 반면에 소인은 완벽한 인재만을 찾으니 찾기도 힘들다. 설령 어렵게 찾아도 그 사람만 혹사시켜 결국 소진시킨다.

군자가 사람을 쓸 때는 각각의 능력에 맞게 쓰기 때문에 누구라도 군자를 섬길 수 있다. 반면에 소인은 사람을 쓸 때 자신의 무능함까지도 감싸줄 수 있는 완벽함을 요구한다. 그래서 소인을 섬기기는 어렵다. 하지만 금전적 이익이나 명예를 주면 금방 기뻐하므로 기쁘게 하기가 쉽다. 완벽한 인재만을 구하는 것의 병폐는 첫째, 그러한 인재를 구하기 힘들다는 점, 둘째는 만일 어렵게 구한다 하더라도 귀하게 여기지 못하고 ‘능력이 있다는 이유 ’만으로 그에게 온통 일이 쏠려 ‘몸이 무쇠’라도 견뎌내지 못한다는 점 등 여러 가지다.

중국 남북조시대 역사가인 유소는 <인물지>에서 “신하는 임무를 감당할 수 있는 것으로써 자기 능력을 삼고 군주는 사람을 쓸 수 있는 것으로써 자기 능력을 삼는다. 신하는 자신의 생각과 계책을 잘 말하는 것으로써 자기 능력을 삼고 군주는 신하의 의견을 잘 듣는 것으로써 자기 능력을 삼는다. 신하는 구체적으로 실천할 수 있는 것으로써 자기 능력을 삼고, 군주는 상과 벌을 법도에 맞게 주는 것을 자기 능력으로 삼는다. 그러므로 군주가 반드시 하나하나의 일에 정통할 필요는 없다. 군주의 능력은 재능 있는 사람을 다양하게 등용해서 쓰는 것이다”라고 밝힌 바 있다. 자세히 살펴보면 약점 없는 인재 없고, 강점 없는 범재 없다. 문제는 그것을 알아보고 적재적소에 배치하는 리더의 능력 차이일 뿐이다. 인재를 뽑는 것보다 인재를 엮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말을 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송나라 소순( 蘇洵)의 <권서(權書)>에는 “현명한 군주는 마치 손재주가 뛰어난 이에게 그릇을 만들도록 하는 것처럼 능력에 맞추어 사람을 쓴다. 곧은 나무로는 끌채를 만들고 굽은 나무로는 바퀴를 만들며, 긴 나무는 기둥으로 만들고 짧은 나무는 지붕 받침으로 쓰면 된다. 곧거나 굽었거나, 길거나 짧아도 모두 거기에 맞는 쓰임새가 있다. 현명한 군주는 사람을 쓸 때도, 이런 이치를 잊지 않는다. 똑똑한 사람은 뛰어난 지략을 사용하고, 아둔한 사람은 남다른 힘을 이용하며 용감한 사람은 범상치 않은 전투력을, 소심한 사람은 치밀함과 신중함을 이용하면 된다. 따라서 뛰어난 목수는 버릴 나무가 없다고 말하고 뛰어난 군주는 버릴 인재가 없다고 말하는 것이다”라고 말한다.

혹시 당신은 지금 인재가 없다며 직원 탓만 하고 있지는 않은가. 그보다 직원의 강점을 찾지 못하는 눈이 밝지 못함을 탓하라. 리더십의 최우선순위는 부하의 강점 발견을 통한 인재의 적재적소 배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