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상경제學

2008년 금융위기 이후 미국은 어마어마한 양의 통화를 풀어 경기 부양을 도모했지만 아직까지 상황은 크게 호전되지 않고 있다. 하지만 미국의 주가는 연일 최고치를 경신하고 있다. 이는 미국이 ‘보이지 않는 경쟁력’을 갖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미국은 소프트웨어 산업 국가다. 스마트폰이 널리 사용되면서 실질상품보다 아이디어와 같은 가상상품이 불티나게 팔리고 있다. 미래, 인공지능 컴퓨터가 앞으로 우리네 일자리를 하나둘 차지할 것이라는 점은 이제 ‘상식’으로 통한다. 무인화시대의 개인과 사회가 갖춰야 할 역량을 찾아내 키워주는 국가적 어젠더가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한 시점이다.

전 세계를 불황으로 몰아넣은 모기지론 사태가 발생한 2008년 이후 5년이 훌쩍 지났다. 미국은 줄곧 통화량을 늘려 주택시장 및 고용시장의 회복을 꾀해왔다. 다만, 상황은 그다지 호전되는 것 같지 않다. 제조업은 정체되고 서비스 시장 역시 질이 떨어졌다. 2005년 이후 잘나가던 중국은 상하이종합지수가 2009년 이후 아직도 내리막길이다. 산업의 물동량 추세를 나타내는 발틱운임지수는 2008년 폭락 이후 침체 속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런데 아이러니컬하게도 미국의 주가는 역사상 최고치를 잇달아 경신하고 있다. 미국의 다우존스 산업지수 3월 7일 종가는 1만6452였다. 1980년 초의 839에 비교하면 34년 만에 19.6배가 됐다. S&P500지수는 1982년 134.22로 시작해 현재 1878.04다. 32년 만에 14배가 오른 것이다. 비록 2000년 이후 10여 년간은 주가가 1만400 선 부근에 머물렀지만 2011년 이후로는 계속해서 상승세를 타고 있다.

보이지 않는 경제력 증강이 미국 주가 상승의 배경이다

미국의 주가가 줄곧 상승하는 이유는 보이지 않는 경제력 증가 덕분으로 판단된다. 미국은 대표적인 소프트웨어 산업국가다. 대표적인 소프트웨어 기업인 구글은 2004년 8월 상장가격이 100달러였지만 2014년 현재 종가로 10년 만에 12.1배인 1214.79달러로 껑충 뛰었다. 아마존은 2009년 38.68달러에서 현재 372.06달러 수준이다. 10여 년 만에 9.6배로 수직상승한 셈이다.

반면 국제 원자재 가격은 2010년 이후 대체로 약간씩 떨어지는 추세다. 유가(WTI)는 2010년 이후 80달러에서 110달러 사이를 오르락내리락하고 있다. 동(LME) 가격을 보면 톤당 2011년 2월 최고치인 1만124달러를 기록한 후 계속 하락해 지금은 6930달러 수준에 그치고 있다.

고전적 관점에서 보면 경제성장은 원료를 많이 사다가 공장에서 부가가치가 높은 상품을 대량으로 만들어 시장에 내다 팔아 많은 이익을 남기는 방식으로 일궈냈다. 경제성장과 에너지 소비량이 정확히 비례하는 관계라는 의미다.

하지만 스마트폰이 확산된 이후 소비자들이 시장에서 상품을 꼭 사야 하는  욕구가 점차 줄어들고 있다. 웬만한 기기는 모두 스마트폰 앱으로 대신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실물상품을 예로 들면 카메라, 비디오 녹화기가 없어도 스마트폰 카메라만으로 얼마든지 훌륭한 품질의 사진이나 비디오를 촬영할 수 있게 됐다. 이른바 ‘소비 없는 경제’라 할 만하다.

아이디어 확산이 경제성장으로 이어진다

경제성장의 패러다임도 확 바뀌었다. 경제성장 방식이 네트워크를 통해 아이디어를 교환하고 그 아이디어가 널리 확산돼 더 많은 무형가치를 만들어내면서 경제 규모가 늘어나는 식으로 변해버렸다.

원료나 상품을 운송하던 시대에서 아이디어와 가상상품을 인터넷을 통해 전송하는 시대로 바뀌었다. 경제 기반이 실물상품 중심에서 형체 없는 가상상품 중심으로 급속히 바뀌고 있다는 얘기다. 이제는 돈을 벌기 위해 물건을 직접 만들 필요가 없다. 물건에 관한 정보만 교환해도 충분히 돈을 벌 만한 가치를 만들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기업의 가치도 어마어마한 규모의 장치를 자산으로 가진 산업보다 무형자산인 소프트웨어를 가진 기업들이 월등히 높다. 구글이 최근 합병한 영국의 인공지능 벤처회사 딥마인드는 상업화된 상품도 없는 작은 회사지만 인간의 사고방식을 흉내 낸 인공지능 기술을 가진 회사라는 이유로 무려 4억달러의 가치를 인정받았다.

실물 상품을 만드는 제조업에서 공장이 자동화되고 지능화되면서 일자리가 점차 줄어들고 있다. IT와 자동화의 충격으로 일자리가 사라져갈 것이란 점은 이젠 상식으로 통한다. 기술이 융합될수록 일자리 잠식도 더욱 가속화될 공산이 크다.

미래에는 많은 직업이 인공지능 소프트웨어로 대체돼 특히 중산층 노동자들이 대규모로 일자리를 잃을 것으로 관측된다. 컴퓨터의 데이터 학습이나 패턴인식 능력이 기계자동화와 결합되면서 기계로는 처리할 수 없던 일들도 자동화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를 인지 컴퓨팅이라고 부른다. 컴퓨터 기능을 이용하면 비숙련 노동자도 복잡한 기계를 마음대로 다룰 수 있게 된다. 기계가 지루한 일을 처리한다는 점에선 긍정적이지만 다른 한편으론 기계가 노동자들을 무능한 자로 만들어버린다는 점에선 매우 심각하다.

인공지능 소프트웨어가 발달할수록 사무실 일자리도 상당 부분 컴퓨터에 밀리는 양상이다. 분석 보고서나 연구 보고서를 쓰던 사람들도 위험하다. 기계가 엄청난 자료를 읽고 학습해 아주 멋진 보고서를 초고속으로 척척 작성해내기 때문이다. 고임금 전문직도 예외가 아니다. 법률가나 의사들도 기계보다 못한 처방을 낼 수 있다는 점에서 기계 앞에서 허세를 부릴 입장이 아니다.

회사는 틈만 나면 감원과 같은 구조조정을 고려하며, 여기에 미처 대비하지 못한 직장인들은 늘 초조할 수밖에 없다. 요즘 인공지능기술의 발달은 교육받은 화이트칼라 노동자의 일자리마저 위협할 정도록 급속히 진행되고 있다. *사진 출처: 영화 ‘더 컴퍼니 멘(The company men)’

 

비즈니스마다 ‘왓슨이 들어 있어요.’

IBM이 개발한 인공지능 왓슨은 자연어를 고속으로 읽어 스스로 학습한다는 점에서 큰 관심을 끌어왔다. 왓슨의 능력이 개발 초기에 비해 속도는 24배 빨라지고, 성능은 2400배 정도 향상됐지만 크기는 90%나 줄어들었다고 한다. IBM은 이 슈퍼컴퓨터 왓슨을 모바일앱으로 응용하는 아이디어를 공모하고 있다.

IBM의 인지 컴퓨팅 기술은 슈퍼컴퓨터를 보유하지 않고도 이젠 클라우드를 통해 모바일 기기에서 누구나 바로 활용할 수 있는 단계로 바뀌고 있다.  이 회사는 드디어 비즈니스별로 양념을 가미해 파는 전략을 구사하기 시작했다. 인텔이 구사한 문구를 모방해 ‘왓슨이 들어 있어요’라는 로고를 붙여서 왓슨소프트웨어를 모든 비즈니스 업무에 적용한다는 전략이다.

최근 미국 캠브리지의 한 로봇 벤처기업인 뉴라라(neurala)는 로봇두뇌를 중앙연산장치(CPU) 대신 그래픽처리장치(GPU)로 대체했다.

CPU는 동시에 여러 정보를 동시에 처리하지 못하고 순차적으로 하나씩 처리한다. 입력된 시각 정보도 한 줄씩 읽기 때문에 로봇이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생각하기도 전에 다음 장면으로 상황이 넘어가버리고 만다. CPU가 순간적으로 입력 정보를 모두 이해하기는 힘들다.

반면에 GPU는 그림을 인식해 처리하는 기능이 있어 CPU보다 10배 이상 빠르게 처리할 수 있다. 최근 GPU가 스마트폰에 많이 채용되면서 가격도 낮아지고 성능도 향상되었다. GPU를 이용하면 시각을 통한 로봇의 지각능력이 크게 향상될 수 있다.

또 동물의 안구같이 시각의 초점 중심 부위는 데이터 감지능력을 조밀하게 처리하고 주변 정보는 듬성듬성하게 처리하는 기법을 채용, 시각정보 처리 속도를 빠르게 한다. 비정상 작업에 대응하는 능력을 크게 개선할 수 있다는 뜻이다. 아예 인간 두뇌와 같은 인지능력을 갖도록 설계한 뇌신경칩이 개발돼 실용화된다면 로봇의 실시간 정보처리능력이 훨씬 더 빨라질 것으로 예상된다.

무인화시대가 형체도 없이 밀려오고 있다. 지금의 교육제도, 노동시장, 경제정책, 그리고 사회제도로는 도저히 대응할 수 없을 만큼 사회가 급속한 변화를 맞게 될 것이다. 창의 사회를 구현하고, 창조경제의 기반을 다지려면 제도가 유연해야 하고 사고도 유연한 사회로 바꿔야만 한다. 무인화시대의 개인과 사회가 갖춰야 할 역량을 적극적으로 찾아내 이를 키워주는 국가적 어젠더가 필요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