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 이인용 부사장이 추천한 화제의 책
구한말 서양인들의 흥미로운 뒷담화

- 정성화·로버트 네프 지음 - 푸른역사 펴냄 - 1만6000원

"이 책은 구한말 조선에 체류한 의외로 다양한 국적의 서양인들과 그들의 일상, 흥미로운 뒷담화를 추적하여 그들이 조선에서 어떻게 생활했는지, 조선인들은 그들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이해했는지를 보여주는 책이다."

구한말 조미수호통상을 시작으로 수많은 서양인들이 조선을 찾았다. 정동은 미국 공사관을 시작으로 영국, 프랑스, 러시아 공사관 등이 부근에 신축되었고 서양인 선교사들도 이곳에 정착을 하게 되면서 구한말 서양인들이 많이 거주하는 대표적인 명물 지역이 되었다. 지금도 정동을 거닐면 이국적인 풍감을 느낄 수 있는 것도 그 때문이다.

이 시대에 조선에서 활동했던 서양인에 대해 오늘날 한국인들은 어떤 인식을 가지고 있을까? 이 시대의 서양인들에 대해 우리가 접한 정보 소스는 아마도 역사 다큐멘터리나 역사 관련 서적을 통해서일 것이다.

이러한 매체는 통상적으로 역사적 가치나 역할에 집중하기 때문에, 아마도 한국인들은 구한말의 서양인들이 대부분 외교관, 선교사, 교육 사업가 등 근대 문물을 상징하는 존재로 인식할 것이다. 이러한 인식이 전적으로 잘못되었다고 말할 수는 없다. 하지만 ‘그렇다’라고 말할 수도 없다.

사실은 매우 다양한 사람들, 책이나 다큐에서는 나오지 않은 서양인들도 많았기 때문이다. 그들은 조선에서 어떻게 살았을까?

《서양인의 조선살이》는 구한말 조선에 체류한 의외로 다양한 국적의 서양인들과 그들의 일상, 흥미로운 뒷담화를 추적하여 그들이 조선에서 어떻게 생활했는지, 조선인들은 그들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이해했는지를 보여주는 책이다.

지금까지 대부분 이 시대에 관련된 정보가 ‘서양인들이 바라본 조선 혹은 조선인’이었던 반면 이 책은 서양인을 주인공으로 그 초점을 맞추어 실제로 그들이 조선에서 무엇을 먹고 마시고 어떻게 어울리고 활동했는지를 재미있는 일화와 함께 소개하고 있다.

당시 조선에 서양인들이 증가하면서 자연스럽게 그들을 대상으로 하는 여러 사업이 전개되었다. 특히 의식주와 관련된 사업이 많았는데 서양인들에게 조선은 그렇게 물가가 싼 나라가 아니었다.

조선에서 생산되는 물품이 비싸다기보다는 서양인들에게 필요한 물품을 조선에서는 구하기가 힘들었다. 이들이 애용하는 물품은 주로 수입품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는데 조선에서 월급을 받아 생활하는 그들로서는 만만한 금액이 아니었다.

구한말 운산 광산에서 근무한 미국인 광산근로자들이 첫해에 받은 월급은 33.33불에 불과했다. 공사관에 근무하는 영사관은 50불, 최초의 미국인 영어교사는 100불(후에는 180불)을 받았다.

당시 서울에서 양서(洋書)가 보통 2불, 중국에서 수입되는 사과잼이 1파운드짜리 12개에 2불40센트, 캘리포니아산 버터는 3파운드당 1불50센트였으니 그들로서는 조선에서 사는 생활비가 녹록지 않았을 것이다.

당시 서양인들에게 조선에 대해 느낀 첫인상에 대해 물어보면, 상당수는 열악한 교통수단을 지적했다. 당시 한반도를 여행할 수 있는 교통수단은 극히 제한된 방법밖에 없었는데 이들에게 인상 깊었던 수단은 ‘조랑말’이었다.

작은 체구에 엄청난 양의 짐을 옮기는 조랑말을 서양인들은 의문과 애처로움으로 받아들였는데 한편으로 조랑말은 그들에게 심술궂은 동물로 악명이 높았다. 한 영국 선교사와 여성 선교사는 조랑말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내가 타려고 접근하는 것을 보자마자 이 가축은 뒤로 돌더니 나를 격렬하게 차고 입을 벌리며 마치 호랑이와 같이 나에게 덤벼들었다.”, “이들은 사실 내가 본 것 가운데 규모로 보아 가장 교활한 작은 악마이다. 심술궂고 싸움을 좋아하는….”

한편 사람들이 사는 곳에는 스캔들이 있다. 그들 사회도 그러했다. 당시 서울과 제물포에는 약 400여명의 서양인들이 살고 있었는데 아무래도 모국과 상당 거리에 있는 조선에서 살다 보니 외교관들 간의 스캔들 사건이 여럿 있었다.

이들은 여러 사교활동을 통해 서로 연락을 주고 받았으며 긴밀한 관계를 유지했는데, 벨기에 부영사인 마리우스 쿠벨리어는 미국인 사업가 헬리 콜브란의 21살 된 딸 크리스틴 콜브란에게 청혼을 했으나 거절당했다. 크리스틴의 계모는 청혼을 수락하라고 강권했는데 그 이유가 무엇이었을까?

사실은 우고 백작이라는 24살 청년과 딸의 관계를 질투했기 때문이다. 우고 백작을 좋아한 계모가 딸을 경쟁자로 본 것이다.

이 밖에도 이 책은 행여 병이라도 나면 현대적인 의료시설이 없어 일본이나 중국으로 의료여행을 떠나야 했던 사례들, 카우보이 출신이 사격연습을 한다며 한국인의 상투를 쏘아 맞췄다는 소문과 진상, 크리스마스 파티에서 왕따를 당했던 독일 공사, 애완견 때문에 발생한 분쟁 등의 이야기가 쏠쏠하게 펼쳐진다.

지금까지 우리의 인식에 구한말 서양인들은 안락한 생활을 누리는 여유 있는 사람들이었다. 하지만 이 책을 통해 전반적인 그들의 삶을 보면 다양한 계층의 다양한 직종의 사람들이 당시로서는 미지의 땅인 조선에 흘러 들어왔으며, 그들 역시 낯선 땅에서 적은 월급으로 생활을 꾸려나가며 어려움을 감내하는 평범한 사람들이었음을 알 수 있다.
구한말 조선에서는 많은 일들이 진행되었다. 전기가 도입되었고, 금광 개발, 성냥공장, 기선회사 설립 등 근대화를 위한 다양한 노력들이 서양인들과 더불어 이루어지고 있었다.

물론 이런 사업들 대부분이 실패로 돌아갔고, 외국 공사를 통해 초빙한 기술자들은 실상은 전문인력이 아닌 경우가 많았으며, 대부분은 자신들의 이권만을 챙겨 조선을 떠났다.

하지만 이들 서양인들이 조선 내 서구문물 도입에 중요한 매개자 역할을 한 것은 사실이다. 틀니, 맥주, 스케이트 같은 일상용품, 자전거, 기차, 항공기, 영사기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문물을 소개했고, 이를 접한 조선인들은 충격과 놀라움을 느꼈다.

서양인이 조선인들에게 보여준 신문물에 대해 조선인들은 경악과 호기심을 동시에 느꼈다. 얼음판에서 스케이트를 타는 서양인을 보기 위해 수천 명이 몰려들고, 잘 타게 하려고 대패와 도끼로 연못의 우둘투둘한 부분을 잘라 평평하게 만들어줬다.

낯설고 신기한 놀이가 궁금했던 궁궐의 민비와 고종도 서양인들을 초청하여 경복궁 향원정에서 스케이팅 파티를 열어주며 호기심을 충족시켰다.

처음 등장한 자동차가 거리를 내달리며 내는 굉음소리에 조선인들은 혼비백산했고, 하늘을 나는 비행기를 보며 꿈을 키웠다. 이렇듯 구한말 서양인과 한국인들은 서로를 경계의 대상과 동시에 호기심의 대상으로 바라보며 한 공간에서 낯선 공존을 이루었다.

이 책은 조선을 새로운 개척지이자 시장이자 삶의 터전으로 삼았던 그 서양인들의 발자취와 기록을 통해 오늘을 사는 우리들에게 당시의 현장과 실재를 생생하게 전달해 주고, 우리의 삶이 과거에 비해 얼마나 많이 변했는지를 직접적으로 느끼게 해준다.
권춘오 (네오넷코리아 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