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소득층 시장이 대기업 성장 발판 제공…이미지 개선 효과도 톡톡

인도는 저소득계층이 전체 인구의 70%를 차지하고 있어 BoP시장 선점을 위해 세계적인 기업들이 주목하고 있는 곳이다.


경제에 ‘만약’은 없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 ‘만약’이란 단서가 가장 많이 붙는 것도 경제다. 결과에 영향을 미치는 변수가 워낙 많기 때문이다. 경제학자들의 이론이 언제나 현실과 딱 들어맞지 않는 이유다.

얼마나 이론과 현실의 격차를 줄일 수 있느냐에 따라 ‘거장’이란 칭호가 부여된다. 이런 점에 비춰 봤을 때 C.K 프리할라드 교수는 세계의 경제학자 중 손꼽히는 거장 중 한 명이다.

특히 그가 말년에 강조했던 ‘저소득층 시장전략(BoP;Bottom of Pyramid)’ 이론은 성장의 한계에 부딪힌 자본주의 시장의 해법으로 후배 경제학자들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

또 세계적 기업의 최고경영자(CEO)에게도 지속성장 가능 전략을 선물했다. 얼마든 변형이 가능한 이론의 시장은 경제적 최하위층 공략부터 중산층 공략을 노리는 기업 마케팅 전략에도 활용될 수 있기 때문이다.

BoP 계층 40억 명, 시장 규모 5조 달러
BoP는 단어의 뜻 그대로를 해석하면 피라미드의 맨 아랫단을 의미한다. 여기에 저소득층 시장이란 뜻도 포함돼 있다. 프리할라드 교수가 1997년 처음 의미를 부여했다.

세계 인구를 소득으로 나눌 때 피라미드 모양으로 분류되고, 가장 많은 인구를 차지하는 아랫단에 주목했다. 저소득층 시장이 대기업의 성장 발판이 될 것이라는 것이다.

그의 이론에 따르면 저소득층 인구는 세계 총 인구의 약 70%인 40억 명으로 시장 규모는 무려 5조 달러에 달했다.

여기에서 흥미로운 점은 BoP 비즈니스 모델이 소개될 당시 기업인들로 부터 외면을 받았다는 점이다. 초기 기업인들은 저소득층의 구매력이 떨어진다는 문제점을 지적했다. 구매력이 떨어지는 대상을 상대로 부를 창출해 낼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세계적인 기업인들은 BoP비즈니스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글로벌 금융 위기 등을 겪으면서 중산층 이상을 대상으로 했던 경영전략이 잘못됐음을 인정하는 모습도 보였다. 변화의 원인으로는 저소득층 시장 공략에 나섰던 다국적기업의 성공이 가장 컸다.

포스코경제연구소 김용식 수석연구원은 BoP비즈니스란 보고서에서 “BoP전략은 가격은 낮추는 대신 생산 규모를 늘려 소비자층을 확대함으로써 수익을 확보할 수 있다”고 밝혔다. 그는 또 “빈곤계층의 소비 규모는 미미하지만 집단 구매력으로 평가하면 매력이 엄청나게 높은 시장이다”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예컨대 박리다매식 영업을 통해 매출을 올리는 식이다. 실제 일본의 남성화장품 업체 맨덤은 인도네시아에서 헤어왁스 제품인 갸스비를 일회용 제품으로 만들어 연간 3억 개 이상을 판매, 124억 엔의 매출을 올렸다.

또 인도의 힌두스탄 유니레버는 머리 길이의 정도에 따라 3가지 크기로 구분되는 1회용 팩을 판매함으로써 2003년 한 해 동안 무려 45억 달러의 매출을 올렸다.

이런 현상은 BoP비즈니스의 특별함이 가능하게 만들었다. 저렴한 가격의 제품을 공급하기 위해 인건비와 운송비를 절약하는 차원에서 현지 공장 운영이 필요하기 때문. 빈곤계층이 공장에서 일을 하며 발생한 수입으로 해당 제품 구매로 이어지는 구조가 만들어졌다.

또 저렴한 가격의 제품 생산을 통해 세계 각국에서 가격경쟁력을 가진 제품도 보유하게 됐다. 사회적 기업으로서 브랜드 인지도와 함께 가격경쟁력 확보의 효과를 톡톡히 보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BoP비즈니스를 위해서 필요한 것은 무엇이 있을까. 김용식 수석연구원은 Bop비즈니스 보고서에서 3가지 전략이 필요한 것으로 내다봤다.

성공적인 시장 진입 필요조건들
그는 가장 중요한 것으로 철저한 현지화 전략을 꼽았다. 제품 전략에 있어 대상 국가의 저소득층의 특성을 파악한 뒤 제품을 수정하고 개량해야 한다. 무조건 싼 가격만을 내세운 제품보다 소비자 맞춤형 제품 생산이 중요하다는 얘기다.

예컨대 세숫비누와 세탁비누의 구분이 없이 사용하는 인도에서 세숫비누와 세탁비누를 나눠 판매해봐야 큰 효과를 거두긴 힘들다.

다음은 지역 판매망의 활용이다. 저소득층의 경우 대부분 인프라가 발달하지 않은 곳에 거주하는 특성을 갖고 있다. 따라서 유통망을 개척하기 위해 현지인 고용을 통한 유통망 확보가 중요하다.

일례로 힌두스탄 유니레버는 인도에서 유통망 설립이 어려운 소규모 마을을 공략하기 위해 여성을 최전방 사원으로 활용하는 전략을 구사하며 매출을 꾀했다.

이밖에도 그는 기업 이미지 제고도 중요한 요소로 꼽았다. 단순한 시장 진출보다는 사회적 책임 활동과 연계된 전략이 BoP시장 진입에 효과적이란 것이다. 사례는 있다. 일본의 스기모토화학은 2003년부터 탄자니아에서 말라리아 예방을 위한 모기장을 제조, 판매하며 엄청난 매출을 올렸다.

주민 건강을 돕는다는 취지가 기업 이미지를 높이며 수익 증대로 이어진 것이다. 또 유니레버는 위생 관념이 부족한 인도 주민의 건강 복지 향상을 위한 손 씻기 캠페인을 통해 비누 사용량을 2배 이상 증가시켰고, 매출액도 50% 이상 끌어 올렸다.

이 같은 이유를 들어 김 수석연구원은 “BoP비즈니스는 현지화와 현지인을 통한 지역 유통망 구축 그리고 사회적 책임 활동이 연계될 때 큰 성과를 거둘 수 있다”고 밝혔다.

경제전문가들은 2010년 이후로 국내 기업의 BoP시장 진출이 가속화될 것으로 보고 있다. 최근 삼성과 LG는 아프리카 공략에 나섰고, 현대차는 인도 시장 공략을 노리고 있다.

이밖에도 일부 기업은 브라질, 아르헨티나 등 남미 지역과 러시아 인근 지역에 대한 시장 진출을 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김세형 기자 fax1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