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 주주권 적극 행사는 선순환의 출발이어야

국민연금은 만도 주주총회에서 대표이사 재선임에 반대표를 던지기로 했다. 국민연금기금 의결권행사전문위원회는 지난 6일 심의를 거쳐 만도 신사현 대표이사 재선임 안건에 반대의결권을 행사하기로 결정한 것. 지난해 만도 경영진이 자회사인 마이스터를 통해 한라건설의 유상증자에 참여한 게, 자사의 기업 가치를 훼손한 결정으로 판단했기 때문이다. 국민연금의 이번 결정은 기업의 횡령·배임 등에 대해 법원 판결 없이도 경영자의 기업가치 훼손·주주권익 침해 등을 인정해 반대표를 던지는 이례적인 사례다. 만도의 모회사인 한라건설 계열의 지분이 35%여서 신사현 대표이사 선임안이 통과될 가능성이 높으나, 향후 국민연금의 의결권 행사로 인한 기업 압박의 의미는 클 것으로 보인다.

현재 국민연금은 80조원이 넘는 금액을 증시에 투자해 5% 이상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는 상장사가 260개를 훌쩍 넘었다. 또한 포스코와 KT, 네이버 등 주요 대기업의 대주주이며 삼성전자 지분은 오너인 이건희 회장보다 2배 많은 7.4%를 보유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국민연금은 문제 있는 기업 이사진 구성에 반대표를 적극 행사하는 쪽으로 관련 지침을 개정키로 했다. 더는 거수기 노릇을 하지 않겠다는 뜻이다. 국민연금의 목소리 키우기에 총수가 유죄 판결을 받았거나 재판이 진행 중인 일부 대기업은 물론 다른 상장사들도 바짝 긴장할 수밖에 없게 됐다.

이에 재계는 국민으로부터 거둔 노후자금으로 개별 기업의 경영에 참여한다면 ‘주인-대리인 문제’가 발생할 수 있고 아무리 국민연금의 지배구조를 중립적으로 한다고 해도 정부나 정치권의 입김을 배제하기 어렵다고 주장한다. 일부에서는 자본주의를 흔드는 일이라며 공포심을 내보이기까지 한다. 하지만 주주 자본주의의 전형인 미국에서 연기금들의 주주권 행사가 그들이 그토록 지키고 싶어 하는 자본주의 질서를 위협하지 않았다. 오히려 연기금의 원천인 대중의 요구가 과연 주주권을 통해 제대로 반영될 수 있을 것인가가 고민의 지점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국민연금이 기업에 투자한 만큼의 의결권과 주주권을 행사하는 것은 당연하다.

시장경제 원칙에 비춰 보더라도 지극히 합당한 얘기지만 그동안 국민연금의 주주권 행사는 매우 소극적이었다. 마치 ‘존재하지만 보이지 않는 유령처럼’이 모토인 것처럼. 이사 해임, 인수합병 등의 주요 안건에서는 특히 수동적이었다. 더욱이 국민연금기금이 공공성을 띤 사회적 기금이라면 주식가치를 높이려는 노력을 게을리한 기업과 경영진의 행동을 제한하는 행위는 국민의 노후준비를 위해서라도 반드시 실행되어야 한다. 또한 일부 오너의 독단적인 경영을 통제하기 어려운 한국 기업 풍토상 국민연금이 이들의 잘못된 의사결정에 제동을 거는 것은 바람직하다.

국민연금의 적극적인 의결권 행사가 이런 부작용을 해소하고 투명한 지배구조 정착을 위한 계기가 돼야 한다. 단 국민연금은 건전한 기업 감시자에 그쳐야지 기업을 흔드는 ‘권력 공룡’이 되어서는 안 된다. 청와대와 정치권이 국민연금을 앞세워 부당하게 경영권을 간섭하거나 기업의 지배구조를 흔든다면 얼마나 끔찍한 일인가. 이를 피하려면 국민연금 의결권행사전문위원회의 독립성을 보장하고 ‘정치적 사회적 문제 해결 수단으로 국민연금을 사용할 수 없다’는 단서 조항을 만든 일본의 사례를 참고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