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산인프라코어의 주가 상승세가 예사롭지 않다. 이 회사 주가는 올해 들어 12%나 껑충 뛰었다. 지난 2년간 역성장하고 있는 중국 굴삭기 시장과 불확실한 유럽 주택경기로 인해 여타 기계업종의 주가가 휘청대는 상황에서 이뤄냈다는 점에서 두산인프라코어의 상승 랠리가 단연 돋보인다.

전문가들은 두산인프라코어의 주가 상승세에 대해 지난해 4분기 실적이 호전된 것이 주효했다고 진단했다. 두산인프라코어는 지난해 4분기 매출 1조9000억원, 영업이익 882억원을 기록해 시장 기대치를 훌쩍 넘어섰다. 290%에 육박하던 부채비율도 255%로 뚝 떨어진 데다, 영업이익률이 눈에 띄게 개선됐다.

이처럼 괄목할 만한 실적 개선을 이끈 중심에는 바로 ‘밥캣’이 있었다. 2010년 초반만 하더라도 밥캣의 영업실적이 부진해 두산인프라코어가 크게 고전하는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지난해 2분기부터 밥캣의 실적이 서서히 회복 기미를 보이면서 두산인프라코어의 실적을 이끌기 시작했다. 박민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한때 과도한 인수자금 투입으로 ‘승자의 저주’라 불리던 밥캣이 두산인프라코어의 확실한 캐시카우(현금창출원) 역할을 하게 됐다”고 분석했다. 일각에선 지난 10여 년 동안 소비재 위주에서 중장비·기계 중심으로 사업구조를 개편한 두산의 노력이 밥캣을 통해 결실을 맺고 있는게 아니냐는 평가를 내놓기도 했다.

미국 부동산 가격 회복 + 유럽 주택 가격 상승 = 밥캣 실적

지난 3월 4일부터 8일까지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세계 최대 규모의 건설중장비 전시회 ‘콘엑스포(ConExpo) 2014’가 열렸다. 캐터필러(Caterpillar), 히타치(HITACHI), 볼보(VOLVO) 등 세계 유수의 건설장비업체가 참여했지만, 13만 관람객들의 시선이 집중된 곳은 다름 아닌 두산인프라코어 부스였다. 그 이유는 특별 한정판(Special Edition) 로더(Loader·토사나 골재 등을 운반하는 장비)를 공개했기 때문이다. 밥캣은 올해 7월로 예상되는 ‘100만 번째 로더 생산’을 기념하기 위해 새로운 색상과 도안을 적용해서 만든 한정판 로더를 생산했다. 두산인프라코어 측은 “밥캣이 로더를 생산한 지 56년 만에 100만 대를 생산했다”며 “이는 세계 건설장비 제조사 중 유일한 기록이며 이를 기념하기 위해 한정판을 제작했다”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CNH, 캐터필러와 같은 글로벌 건설장비 업체의 영업이익이 감소하는 가운데 최근 실적이 개선된 밥캣이 대외적으로 자신감을 보여주려는 의도라고 풀이했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적자를 지속했던 밥캣은 미국 부동산 시장이 회복 조짐을 보이던 지난해 상반기부터 살아나기 시작했다. 지난해 4분기에는 수주 잔량이 전년 동기 대비 70% 증가한 1만3081대를 기록했고, 영업이익도 덩달아 상승해 전년 대비 무려 128.6%나 증가한 967억원에 달했다. 향후 밥캣의 실적 개선은 더욱 뚜렷해질 전망이다. 홍진호 IBK연구원은 “밥캣의 주력시장인 미국의 주택경기 관련 지표가 회복세를 보이고 있어 이에 따른 밥캣의 본격적인 수혜가 가능할 것으로 판단한다”고 말했다.

실제 미국 주택경기 지표가 바닥권에서 완만하게 회복되는 모습을 보이면서 밥캣 실적 회복세도 두드러지고 있다. 밥캣의 대표 제품인 스키드스티어로더(SSL)와 콤팩트트랙로더(CTL)는 미국 시장에서 높은 판매고를 보이면서 지난해 4분기 시장점유율을 44.9%와 32.1%까지 끌어올렸다.또한 미국 금융시장 회복도 밥캣 실적 개선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관측된다. 이유인즉 금융시장 회복은 산업재 수요 증가로 이어져 고가의 건설중장비 판매 확대로 이어지기 때문. 하석원 우리투자증권 연구원은 “금융시장 안정에 따른 리스, 캐피털, 농업, 교체수요 등 건설중장비 가수요도 확대되고 있어 SSL과 CTL 등 소형 장비의 수요는 당분간 지속될 전망이다”고 분석했다.

미국 시장과 달리 엇갈린 행보를 보인 유럽 시장도 서서히 살아날 기미를 보이고 있어 밥캣의 실적에 플러스 요인으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하 연구원은 “유럽의 건설중장비 시장도 현재 뚜렷하게 개선되고 있지 않지만, 경기 선행지수 지표들이 저점에서 회복되고 있어 기대감이 커지고 있는 상황”이라고 분위기를 전했다.

더불어 두산홀딩스유럽(DHEL, Doosan Holdings Europe Limited)의 선제적인 구조조정도 효과를 발휘하고 있다. 미국 시장과 달리 적자 사업구조가 고착화돼 있는 유럽 시장을 타개하기 위해 DHEL은 불필요한 법인과 인력 구조조정을 단행해 비용을 절감했다. 백화점식으로 벌려놓은 법인을 정리하고 슬림화에 따른 인력을 현장에 배치해 영업력 강화에 주력하도록 했다. 그 결과 CNH, Deere 등은 적자 폭이 증가한 반면 DHEL은 2010년보다 10배 이상 줄일 수 있었다.

든든한 밥캣, 다각화·시너지 효과도 대단하다

두산인프라코어의 주력 사업은 토목공사 등 도시개발 프로젝트에 쓰이는 중대형 장비였다. 중대형 장비는 중국, 동남아시아 등 개발도상국의 수요가 풍부했지만, 미국과 유럽에서는 오히려 소형 장비 수요가 급증했다. 이에 중대형 위주의 제품라인을 가진 두산인프라코어는 중국을 비롯한 아시아, 이머징 마켓에서 강한 면모를 보였으나 북미과 유럽 시장엔 약했다. 이러한 이유로 두산인프라코어는 소형에서 대형에 이르는 완벽한 제품 포트폴리오를 구성하기 위해 2007년 밥캣을 인수했다. 인수 후 글로벌 금융위기가 닥쳐 실물경제까지 장기 침체 국면에 빠지면서 두산인프라코어는 매년 수백억원, 많게는 수천억원의 손실을 기록했다. 5조원에 가까운 돈을 들여 산 밥캣이 적자에 허덕이자 재무 부담이 커졌다. 이를 두고 일각에선 ‘승자의 저주’, ‘두산의 미운오리새끼’ 라며 밥캣의 인수를 우려했다.

하지만 다양한 제품 라인업을 통한 다각화는 두산인프라코어의 장점이 됐다. 두산인프라코어와 주력시장이 겹치면서 유사한 영업이익 추이를 보이는 캐터필러는 글로벌 경기 회복에도 영업이익이 감소했다. 이 회사는 대형, 광산용 등 중대형 건설기계 장비에 주력했기 때문에 선진국 중심의 경기회복 수혜를 받지 못했다. 반면 두산인프라코어는 밥캣을 통한 제품 포트폴리오 다각화로 소형 장비까지 시장 확대에 성공해 글로벌 경기 회복의 수혜를 입고 있다. 이지훈 SK증권 연구원은 “향후에도 글로벌 경기 회복에 가장 밀접한 북미와 유럽 시장에서 대형보다 소형 장비 수요가 더 많은 상황이기 때문에 제품 라인업이 뛰어난 두산인프라코어의 실적이 견조할 것으로 예상한다”고 분석했다.

더불어 밥캣의 신제품 출시도 매출 시장의 주요 요인으로 꼽힌다. 2008년 글로벌 경제위기 이후 글로벌 건설장비 업체들은 실적 악화로 기술 개발과 신제품 출시를 미뤄왔다. 하지만 밥캣은 두산인프라코어의 전폭적인 지원 아래 기존 자사 모델이나 경쟁사 제품보다 성능을 크게 개선한 신제품을 출시했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M-시리즈’다. M-시리즈는 새로운 플랫폼(차량의 기본이 되는 골격)을 적용하고 성능을 한층 향상시킨 밥캣의 로더와 미니 굴삭기 신제품이다. 이 신제품은 운전석을 앞으로 배치한 설계로 사방(四方) 시야를 넓게 확보하고 소음을 60% 이상 줄였다. 그러면서도 유압을 이용한 힘은 15% 이상, 물체를 잡아당기는 견인력은 15~20%까지 증대했다. 이러한 품질 향상 덕분에 고객과 딜러들 사이에서 잇따라 호평을 받으면서 북미 시장 점유율은 꾸준히 상승했다. 제품별 Mix 개선 효과도 나타나 고수익 제품인 CTL의 판매비중은 전년 대비 4%p 늘어난 31%를 기록했다.

또한 밥캣의 매출 상승은 두산인프라코어 엔진사업부문에도 호재로 작용할 것으로 관측된다. 지난해 10월부터 엔진사업부가 개발한 G2 엔진이 밥캣 제품에 탑재되기 때문이다. 기존에 밥캣에 탑재된 쿠보타(Kubota) 엔진을 대체할 수 있어 두산인프라코어 내에서도 비용을 줄이고 영업이익을 늘릴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물론 밥캣 입장에서도 G2 엔진 장착으로 제품 경쟁력을 크게 강화할 수 있다. G2 엔진은 산업용 엔진 배기규제 중에서도 가장 엄격한 Tier 4 Final을 만족하는 친환경 엔진이기 때문에 건설장비의 환경규제 속에서도 밥캣이 높은 시장점유율을 공고히 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재무부담도 덜었다

밥캣의 실적 개선에 힘입어 두산인프라코어의 재무건전성도 개선되는 흐름을 보이고 있다. 순차입금은 지난해 3분기 직전 분기보다 3000억원 이상 줄어든 5조5618억원을 기록했다. 부채도 4694억원가량 감소하면서 부채비율은 306.0%에서 305.4%로 0.6%P 낮아졌고, 예상 EBITDA도 7000억원으로 연간 현금 유출(6000억원)을 상회할 것으로 예상돼 2011년 이후 3년 만에 플러스(+) 현금흐름을 보일 것으로 예상된다. 이영규 나이스신용평가 연구원은 “강화된 사업기반을 바탕으로 양호한 수익창출력을 고려할 때 중장기적으로 안정적인 현금흐름이 나타날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또한 두산인프라코어는 유동성 위험을 잠재우기 위해 2015년부터 도래하는 밥캣 차입금 17.2억달러를 2020년 이후로 만기 연장하는 리파이낸싱을 올해 안에 마무리할 예정이다. 박민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리파이낸싱 성공 시 차입금 도래에 따른 상환 부담을 크게 경감할 수 있다”고 말했다. 더욱이 장기적으로는 밥캣이 기업공개(IPO)를 통해 차입금을 감축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두산인프라코어가 밥캣을 지배하는 중간 지주회사를 설립해 상장을 추진키로 한 것. 미국 건설경기 회복으로 밥캣의 실적이 크게 개선되면서 우호적인 상장 여건이 조성되고 있다고 판단해서다.

IPO를 통해 대규모 자금을 조달하면 2007년 밥캣 인수 이후 눈덩이처럼 불어난 차입금을 상당 부분 줄일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박 연구원은 “중간지주사를 통해 미국과 유럽법인 간에 통일된 회계기준을 적용한 재무제표를 지속적으로 작성할 수 있기 때문에 향후 자금 운용에도 더 유리한 면이 많을 것으로 분석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