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점(獨占, monopoly). 하나의 기업이 한 산업을 지배하는 시장 형태.

독점의 정의는 이렇다. 개인적으로 경제 용어 중 가장 섹시하고 선정적인 용어라고 생각한다.

장래희망이 주지육림(酒地肉林)의 주인공이었던 시절, <허생전>의 주인공 허생 형님은 매점매석으로 독점을 이루어낸 ‘슈퍼 리치’이자 그 부를 이용해 강력한 전투력을 가진 건달들의 두목이 되어 새로운 나라를 건국한 ‘단군’ 레벨의 사나이였기에 나의 위대한 멘토였다. 특히 독점이라는 포인트가 그렇게 좋았다. 뭐, <허생전>이 주는 교훈이 이게 아니지만, 욕심으로 불타오르던 코흘리개 시절의 내겐 그랬다.

고등교육을 받으면서 독점 혹은 독과점이라는 것이 쉽사리 되는 것도 아니며 사회적으로 옳지 않다는 걸 알게 되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생각해보면 독점의 지위를 가진 당사자에겐 그만큼 신 나는 일도 없겠지만, 그 외 시장 참여자들에겐 독점만큼 끔찍한 일도 없을 것이다. 그런데 여기, 독점이지만 이에 대한 문제의식도 없이 돌아가는 시장이 하나 있다.

시마노(島野, Shimano)! 자전거를 구성하는 필수적인 부품들, 예를 들면 변속레버와 크랭크, 변속기, 브레이크 등을 ‘구동계’라고 부르는데, 시마노는 구동계를 만들어내는 글로벌 일본 기업이다. 자전거를 탄다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은 들어봤을 이름이자, 현대의 자전거 등급을 결정짓는 기준을 제시해주는 제품을 가진 브랜드다. 그리고 한국에서 독점적 지위를 가진 ‘슈퍼 갑’이라고 나름 정의해두고 있다.

그럼 ‘시마노’ 말고는 다른 구동계 브랜드가 없냐고? 있다. 이탈리아의 캄파뇰로(Campagnolo), 미국의 스램(SRAM). 그 외에 대만의 마이크로시프트(microshift)나 뭐 군소 업체들. 이런 브랜드들도 대단한 기술력과 전통을 가지고 있고, 세계시장에서는 선전하고 있지만 국내 시장에서만큼은 시마노에 밀려 힘을 못 쓰고 있다.

시마노의 국내시장 점유율을 정확히 알고 있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고급 자전거 시장에서는 최소 90% 이상의 점유율을 가지고 있다는 데 이견을 달 사람도 없을 것 같다. 우리나라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높은 시장점유율을 가지게 된 건 분명히 그들의 피나는 노력 때문이다. 듀얼 컨트롤 레버의 시초가 된 STI 레버, 냉간 단조기술, HG스프라켓, 전동 구동계의 최초 출시 등 정교한 기술을 토대로 새로운 제품을 시장에 선보이고 시장을 선도했다.

그렇다면 다른 구동계 브랜드들은 기술력도 떨어지고 시장을 선도하지 못한 것일까? 절대 아니다. 스램이나 캄파뇰로는 시마노와 견주어 떨어지지 않는 기술과 브랜드 가치를 지닌 기업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 사용자들은 ‘도대체, 왜’ 이상하리만큼 시마노를 선호하는지 철저히 주관적으로만 유추해보자.

일단 너도 나도 다 시마노를 쓰니까 같이 쓰려는 ‘밴드왜건 효과’를 들 수 있다. 유독 자전거는 친구나 동호인끼리 같은 장비를 쓰려는 성향이 강한 듯하다. 네가 타는 차 나도 타고, 네가 입는 옷 나도 입겠다는 심보, 그리고 비싼 제품 사는데 잘 모르니 대세에 묻어가려는 심리도 강하게 작용하는 듯하다. 앞서 말했듯이 이것은 어디까지나 내 생각일 뿐 조사방법론적인 근거는 하나도 없다. 과학적 근거 없이 이런 이야기를 해서 미안하지만, 사과하지는 않으련다.

시장에 자전거를 출시하기 위해 개발회의를 할 때마다 나는 ‘시마노 이외에는 대안이 없느냐’를 깊이 고민한다. 물론 시마노 제품이 전 라인업에 걸쳐 품질도 좋고 부품 수급도 용이하다는 큰 장점이 있지만 이렇게 시장이 일방적으로 한 브랜드만 선호한다는 것이 신기할 따름이다. 정말 ‘밴드왜건 효과’ 때문인지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는 것인지 필자는 소비자들의 머릿속을 너무너무 들여다보고 싶다.

가장 안타까운 점은 국내 자전거 시장의 취약함이다. 순수하게 국내에서 생산되는 부품은 극소수에 불과하고 그것도 핵심부품이라기보다는 액세서리에 불과한 수준이다. 그러니 대부분 부품은 수입할 수밖에 없고, 순수한 'MADE IN KOREA' 자전거는 멸종 수준이다.

국내에서 자전거 산업이 이렇게 황폐화되어버린 이유는 생각해볼 것도 없이 기술력 부족이다. 오늘의 매출과 유행에만 매년 목을 매다 보니 자전거 산업의 근간이 되는 부품 업체는 대부분 사라지고 어느덧 시마노에 목줄을 잡힌 꼴이 된 거다. 한국의 자전거 시장은 일본 기업이 만들어낸 제품을 장착하지 않으면 승부하기 어려운 시장이 되었다는 현실이 너무 슬프고, 시장 발전을 이끌어낼 수 있는 다양성도 계속 사라져간다는 점이 눈물 나게 안타깝다.

여기서 잠깐! 갑자기 이런 발언을 해도 되나 싶지만 나는 일개 소시민이니 눈치 안 보고 하고 싶은 말은 해도 될 것 같다. 일단 한번 들어보시고, 그렇다 싶으면 호응을, 그렇다 싶지 않아도 동조를 부탁한다.

최근 일본 아베 정부와 극우인사들 얘기다. 이들의 행동을 보면 어이가 없다. 독도문제, 위안부, 역사왜곡 등등. 그래서 항의의 뜻으로 나름 일본 제품 불매운동을 하고 있는데, 중국인들도 동참해주는 마당에 국내 소비자들은 조용하다. 자전거 업계와 소비자는 한술 더 떠서 조용하다 못해 충성을 다한다. 불매운동은커녕 오히려 시마노의 출시 예정 신제품에 모두가 촉각을 곤두세우고 기대하고 있는 모양새다. 누구 하나 이런 기형적인 상황에 대해 아무런 고민도, 성찰도 하지 않는다. 그냥 수입해서 많이 팔면 최고라는 식이다. 자전거 업계에서 밥을 먹고 있는 입장이지만 참 답답한 노릇이다.

시마노 제품을 미워하고 쓰지 말자는 것이 아니다. 시장 내 독점적 지위에 더해 정치, 외교적 상황에서 우리나라 소비자들이 일본제품과 기업에 대해 주장할 수 있는 권리를 현명하게 행사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다. 업체와 소비자들의 작은 행동이 큰 변화를 가져올지도 모른다.

브라더 허생의 독점은 매점매석을 통해 인위적으로 독점을 이루었으니 시장에서 욕을 먹어도 할 말이 없는 경우다. 반면에 시마노의 독점은 시장 참여자들이 자발적으로 만들어준 독점이니, 이성적으로 생각해보면 비난받을 상황도 아닌 것 같다. 시마노 입장에서 이렇게 신 나는 일이 또 있을까. 오히려 자전거 시장에 참여하고 있는 업체와 소비자들이 욕을 먹고 반성해야 하는 상황이 아닐까 싶다. 참 바보 같은 한국 자전거 업계와 소비자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