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품이냐, 능력이냐? 많은 리더가 현실에서 직면하는 고민의 하나다. 다 갖추면 무엇을 더 고민하겠는가. 하지만 현실에선 늘 무엇을 우선순위에 둘 것인가를 두고 선택해야 하는 ‘운명의 기로’에 서게 된다. 이 같은 딜레마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어디서나 마찬가지다. 능력과 인품을 두루 갖춘 인물을 찾기가 그만큼 어렵기 때문이다. 이 둘을 다 갖추면 최고이겠지만 현실적으론 쉽지 않다. 사냥을 잘한다고 해서 호랑이 새끼를 집 안에 키울 수도 없고, 그렇다고 토끼들을 데리고 사냥을 나갈 수도 없는 딜레마가 늘 존재한다.

공자는 능력보다 ‘가치관’이 더 중요함을 활쏘기와 준마에 비유해 풀어냈다. 먼저 활쏘기 비유부터 살펴보자. “활쏘기에서 과녁 뚫는 것을 위주로 하지 않는 것은 개인의 힘이 각각 다르기 때문이다. 이것이 옛날의 도(道)다. 활쏘기의 기준은 과녁의 중심을 쏘아 맞히는 것이었을 뿐 화살이 쇠가죽 과녁을 뚫었는지는 따지지 않았다. 왜냐하면 사람마다 태어날 때부터 팔 힘이 다르기 때문이다. 사람으로서 행하는 바가 기준에 도달하는지는 단지 정도에 맞는지만을 묻고 그 일의 성취 정도는 크게 문제 삼지 않는다.”(子曰 射不主皮 爲力不同科 古之道也-팔일-) 다만, 명중하는 것을 주로 하고 가죽 과녁 꿰뚫는 것을 주로 하지 않았다. 대저 사람의 힘이란 강약이 있고 동등하지 않기 때문이었다. ‘中’은 배워서 능히 할 수 있는 것이지만 ‘力’은 억지로 이르게 할 수 없는 것이다. 中이란 과녁을 향해 맞추는 것, 즉 목적과 가치관을 같이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力이란 힘으로 역량, 재능 등을 의미한다. 적어도 하나의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것이 과녁을 관통하는 것보다 중요하다고 풀이할 수 있다.

공자는 “준마는 그의 힘을 칭찬하는 것이 아니라, 그의 덕을 칭찬하는 것이다”라고 말한다(驥不稱其力,稱其德也-헌문-). 준마는 빼어난 능력을 갖고 있다. 그러나 칭찬받는 것은 말로서의 조련 과정에 있다. 사람이 아무리 재능을 갖고 있더라도 덕이 없으면 존중받을 수도, 기용해서도 안 된다.

당태종의 ‘멘토’인 위징이 내린 결론은 “난세에는 능력만 있어도 되지만, 태평성대에는 도덕성을 갖춰야 한다”는 것이다. 당나라 2대 황제인 태종 이세민이 신하 위징에게 관리 선발의 기준에 대해 묻자 이렇게 답한다. “인재를 선발하려면 반드시 그들의 품행을 엄격히 살펴야 합니다. 뭔가 잘못해 나쁜 사람을 기용하면 설령 그 사람의 능력이 뛰어나더라도 폐해가 아주 클 것입니다. 천하가 혼란할 때에는 오직 재능만 요구할 뿐 덕행 여부는 돌아보지 않습니다. 그러나 태평성대 시대에는 재능과 덕행을 모두 갖춘 사람만이 기용돼야 합니다.”

시대적 상황에 따라 능력 중시파와 도덕성 중시파는 바통을 주고받으며 각각 나름의 근거로 파도타기를 했다. 능력중시파의 대표적 주자는 조조다. 그는 유재시거(惟才是擧)라고 해 철저한 능력 위주의 인재발탁 정책을 폈다. 조조가 이때 선포한 것이 구현령(求賢令)이다.

“천하가 안정되지 않은 상황은 인재가 시급한 때이므로 재능이 있는지 없는지가 중요할 뿐, 털어서 먼지 하나 안 나오는 사람을 찾기 위해 너무 많이 따질 수는 없소. 만약 도덕적인 품성이 나무랄 데 없고, 모든 면이 완전무결한 사람만을 요구한다면, 제 환공이 어떻게 패업을 이룩할 수 있었겠소. 따라서 나라를 다스리고 병법을 사용하는 재주를 가진 인재라면 설령 좋지 않은 명성이 있고, 사람들에게 비웃음을 받는 행동을 한다 하더라도, 심지어 어질지 못하고 불효자라 하더라도 추천한다면 나는 어떻게든 쓰겠소”라고 천명한다.

신분, 인품 등 모든 것을 따지지 않고 재능만을 보겠다는 것이다. 그래서 환공이나 진평은 빼어난 능력 덕분에 중용(重用)돼 능력을 충분히 발휘할 수 있었고 주군을 도와 큰일을 이뤘다. 만일 인품만 보고 천거했다면 어떻게 등용할 수 있었겠느냐고 반박한다. 조조는 제환공(齊桓公)을 도와 패업을 이룩한 관중이 청렴한 선비가 아니었고, 한 고조 유방이 그 형수와 정을 통한 혐의를 받은 진평(陳平)을 중용, 대업을 완수한 사실을 들어 재능만을 기준으로 사람을 추천할 것을 밝혔다. 한때의 적도 귀순하면 중용했다. 순욱·곽가·가후 등 조조의 책사와 부하들은 원래 심복이 아니었으나, 귀순한 후에는 이들을 성의껏 대우하고 중책을 맡겼다. 이는 승자와 패자, 아니 국가의 존망이 좌우되는 당시 시대적 상황에서 불가피한 선택이었을 수 있다. 냉혹한 승부사로서 죽기 직전까지 전장을 누볐던 조조는 환관 출신의 비주류로 북방의 권문세족 원소를 이겨내고 자신의 시대를 열었다. 그가 아들 조비에 의해 위(魏)나라 창업을 이뤄낼 수 있었던 것은 바로 능력과 효율 중심의 인재관을 견지했기에 가능했다.

아예 대놓고 재능만을 중시한 군주로는 측천무후가 있다. 당나라 고종 황제의 황후였지만 황태자들을 연이어 폐위시키고 자신이 황제가 된 여성이다. 스스로 주나라를 세워 15년간 중국을 다스린 중국 역사상 전무후무한 여황제인 그녀는 강한 능력인사 위주정책을 폈다.

측천무후는 자신이 황후에 오르는 걸 반대했던 관료집단에 속하는 장손무기·우지령·저수량을 좌천시키거나 제거한 후 자신의 옹립을 찬성한 허경종, 이의부, 반대파에서 옹립파로 바꾼 이적 등을 통해 실권을 강화했다. 이의부, 허경종 등은 재능은 있으나 간사하고 바르지 못한 인물들이었다. 측천은 “바르지 못한 재능이라도 잘 다루기만 하면 여러 모로 써먹을 수 있다. 충신에 대응할 수 있는 최고의 무기는 바로 이런 사람이 아니겠느냐. 그는 명예와 이익을 추구하고 나는 명예와 이익으로 그를 부릴 수 있으니, 이런 당근만 준다면 그가 고분고분하지 않을 수 있겠느냐”며 중용했다. 실제로 허경종은 측천의 주구가 되어 열심히 일해 세를 떨치는 데 크게 기여했다.

진(秦)나라 말기 은사(隱士) 황석공은 “지혜로운 자, 용기 있는 자, 재물을 탐하는 자, 우둔한 자를 고루 쓰라”고 말한다. 지혜로운 자는 공을 세우길 즐겨하고 용기 있는 자는 자기 뜻을 행하길 좋아하고, 재물을 탐내는 자는 결단코 이익을 취하며 우둔한 자는 죽기를 마다하지 않기 때문이다. 각자의 성격에 근거해서 사람을 쓴다면 이것이 용병의 기묘한 권도이다. 누구에게나 장점은 있으니 그 장점을 이용하라”고 했다. 성격이 문제가 아니라 ‘규율과 상벌’을 분명히 하면 각각 자신들의 성격의 장점을 살려 목숨 바쳐 일한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잘 쓰면 비상도 약이 될 수 있다’는 나름의 인재론이다. 목적을 위해 소인배들을 잘 사용하는 것도 상황에 따라선 필요할 수 있다. 이들의 욕구를 해소시켜주지 않으면 부려 먹을 수 없지만 이들의 욕망을 채워주면 충직한 개처럼 주인을 잘 따르기 마련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써야 활용해 약이 되게 할 수 있는가. 조조든 측천이든 인품 없는 인재를 써서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인물됨을 알고 기용했다는 점이다. 독약은 극약의 처방이라 조심해서 쓸 수밖에 없다. 독약, 즉 ‘간신’인 것을 알지 못하고 과용하거나 오용하면 그 피해는 클 수밖에 없다. 독약을 독약인 줄 모르고 과용하면 죽음에 이르듯, 간신을 총애하면 배신과 조직패망으로 직행하게 된다.

고건 전 총리는 행정의 달인으로 평가받는 분이다. 고 전 총리는 능력과 도덕성을 가늠할 때 일로써 통제가 가능하다는 현장의 지혜를 터득했다고 한다. 그는 한 언론 인터뷰에서 ‘청렴 무능한 부하와 부패 유능한 부하 둘 중에 누구를 쓰겠는가?’라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전자는 이권이 관련된 루틴한 업무에, 후자는 이권이 없는 새롭고 어려운 과제를 맡기면 된다. ‘수서특혜’ 당시 압력의 하나로 서울시 도시계획국장을 잡아넣는 바람에 새롭게 인선을 해야 했다. 수소문 끝에 기술직 중에서 깨끗한 사람을 찾았는데 김학재 당시 부이사관이 물망에 올랐다. 추천한 사람에게 깨끗하냐고 물었더니 깨끗하다고 했다. 두 번째는 의지가 강하냐고 물었더니 암벽등반을 한다고 했다. 그래서 뽑았다. 현재에 깨끗할 뿐 아니라 미래에도 깨끗할 사람을 뽑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결국 인재를 100% 활용하는 포인트는 리더의 날카로운 知人(지인)의 안목과 적재적소의 용인술임을 알 수 있다.